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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ug 07. 2018

앙코르 제국  달리기 이야기(1)

The 5th Khmer Empire full marathon

  내가 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곳일수록 더욱 나를 흥분시키고 그러한 흥분과 도전은 충분히 나를 젊게 만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을 처음 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흥미로움을 두발로 뛰며 몸으로 받아들이는 기쁨이 있다. 그래서 그러한 기쁨을, 흥미를, 진지하면서도 오래 느껴보고 싶어 나는 처음 뛰는 곳은 무조건 풀코스를 뛰는 편이다.

  올 초 000 국내 교육 기간 중 파견지가 캄보디아로 결정되고 구글을 통해 나는 캄보디아의 마라톤 대회를 검색해 보았다. 캄보디아가 더운 나라라 그런지 대회도 많지 않고 풀코스는 없었다. 매년 12월 앙코르왓에서 개최되는 하프마라톤대회가 23회로서 가장 오래된 대회였다. 대회를 찾던 나는 앙코르왓에서 8월에 풀코스 대회가 있고 올해가 5회째라는 걸 알자마자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 후로 7개월이 지났다.    

   000단원으로 캄보디아 반티민쩨이에서 근무하는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8월 5일의 앙코르왓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10km를 뛰었다. 캄보디아가 워낙 더운 나라기에 아침 이른 시간 출근길을 뛰어서 간다든가(집에서 근무지인 학교까지는 직선으로는 5.6km, 좀 돌아서 달리면 10km), 가끔씩 주말에는 15km를 뛰었다. 그리고 대회를 40여 일 앞두고는 40km LSD(long slow distance) 훈련으로 집에서 태국 국경의 도시 포이펫까지 뛰기도 했다(브런치 "태국 국경까지 뛰어가다")

  나는 준비과정의 뛰는 시간을 대회를 준비한다기보다는 늘 나의 생활 속 일과로 생각한다. 매일의 지루한 일상생활이나 때론 나태해지기 쉬운 나에게 깨어있는 사고와 열정을 심어주기에 달리기만 한 것이 없다. 내가 달리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는 캄보디아에서의 첫 대회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큰 딸 은솔이와 작은 딸 한솔이, 그리고 나의 벗 아내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철저히 체력을 관리하고 싶었다. 

  큰 딸은 늘 든든한 놈이지만 올해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잘 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둘째 딸은 얼마 전 시작한 독일 생활에서 공부 시작하며 새로운 자기 목표를 한 걸음씩 잘 다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영원한 벗 아내는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내가 귀국하면 그간 못했던 남편의 도리를 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맘속에 담고 달리고 싶었다. 아마도 헤어져 지낸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더 주고 싶은 사랑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이번 대회를 앙코르 시대를 달린다는 의미 외에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고자 했다.

  4,000여 명의 참가자들 중 풀코스는 400여 명 정도. 그것도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특히 중국인들이 많고 그 다음으로는 일본인. 그리고 미국, 뉴질랜드, 태국...

파이팅을 외치는 중국 참가자 들

풀코스는 아침 4시 40분에 출발하고 한 시간 간격으로 하프코스, 10km가 출발한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뛰어보기는 처음이다. 캄보디아 한낮 더위가 35도를 넘나드니 이른 출발도 이해는 된다. 나는 3시 20분에 앙코르 왓 해자 앞 출발지에 도착했다. 앙코르 왓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해자 다리 건너 저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앙코르왓

  사위는 어둡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진행요원들만이 듬성듬성 보인다. 조금 지나니 한두 명씩 풀코스 주자들이 모여들었다. 하프코스나 10km 주자는 한두 시간 뒤에 출발하기에 아직 오지 않아 출발지는 붐비지 않았다. 나는 이번 대회는 처음으로 핸드폰을 갖고 뛰기로 했다. 앙코르 유적을 뛰면서 앙코르와 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주로(走路)에서 뛰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호흡을 가다듬는 것도 그렇고, 더욱이 기록을 의식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회를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5시간 안으로만 들어오기로 했다(대회 제한 시간은 6시간).  핸드폰을 넣은 허리쌕을 점검하고 가져온 떡과 바나나로 아침을 먹었다.  

   한 시간을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기다렸다. 조금 지나니 어둠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스타트 라인에 모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나는 천천히 출발 대오에 섰다. 어차피 주로(走路)에서 달리다 사진도 찍어야 하기에 맨 뒤에 섰다.

   딸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울 딸들 은솔이, 한솔이~~ 아빠 잘 뛰고 올께요~~".

  총성 소리와 함께 주자들이 쏜살같이 앞으로 내 달린다. 마치 어둠의 커튼을 젖히고 달리듯이. 맨 뒤의 나는 앞의 주자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린 후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스타트 라인의 주자들

  풀코스는 무척 오랜만이다. 2016년 10월 철원 비무장지대 마라톤대회가 마지막이었다. 그 대회에서 나는 4시간 29분을 기록했다. 몇 달만 있으면 60살인 나는 기록을 당기려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4시간 30분 정도의 목표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디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늦어진다. 가로등이 있지만 그저 앞의 주자를 보고 달린다. 오늘 목표는 5시간,  조급함은 없다. 주자들의 표정을 보니 어둠속에서도 다들 밝다. 즐기기 위한 달리기 대회란 게 실감이 난다.

출발 지점을 나서 힘차게 달리는 주자들

   달리는 내 마음은 한껏 상쾌하고 두 다리는 경쾌하다. 그렇게 기다리던 대회를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많은 활력을 얻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 내 맘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오늘 달리는 이유를 나는 이미 충분히 얻었다. 맨뒤에서 달리지만 나는 꾸준한 페이스로 5km 지점까지  달렸다. 후미의 주자들이 원체 여유롭게 달려서 그런지 나는 전혀 달린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뛰었다. 일부러 시계는 보지 않았다. 지금의 페이스가 너무나 좋았기에 이대로 쭉 달리는 게 날 것 같았다. 7km 지점은 씨엠립의 중심가 팝스트리트 거리 앞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영화 "툼레이더"로 앙코르 톰은 더 유명해졌고 그녀가 팝스트리트 거리에서 맥주를 마셨다는 "The Red Piano"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팝스트리트 거리 입구에서 U턴하여 1~2km 달려 시내 중앙도로 방향으로 진입하니 어둠은 걷히고 아침을 준비하는 시장의 모습이 분주하다. 10km의 안내판이 보여 시계를 보니 59분. 후미에서 시작하여 그 페이스 그대로 지치지 않고 달려왔는데 이 시간이라니 나도 놀랐다. 내 기록이 아주 좋을 때 10km가 52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오늘 예상한 시간는 충분해 보였다. 맘에 여유가 생기며 나는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달릴수록 주자들의 대오는 점점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다.

시엠립 중앙대로에 길게 늘어선 주자들

  나의 컨디션은 출발 때와 변함없이 가볍다. 나는 이런 페이스로 계속 달리자는 생각으로 무리하지 않고 달렸다. 나의 속도는 꾸준했기에 10km를 지나서는 지친 주자들을 한 명씩 제치기 시작했다. 이곳부터는 다시 차선 시골길이다. 중앙도로를 벗어나 이런 도로를 달리면 기분이 더 좋다.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주자들

  나는 맨 뒤에서 출발했기에 한 명씩 제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15km까지 달렸다. 시계 보는 욕망을 억누르다 15km 지점에서 시계를 보니 1시간 29분. 다시 5km를 30분에 달렸다. 이런 속도로 40km 달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페이스대로 달린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느라 잠시 멈춰 섰던 시간들을 감안하면 지금의 페이스는 상당히 양호한 것이다. 나는 좋은 컨디션으로 자신감에 충만하여 달렸다. 두 딸들과 아내와 함께 하고 싶었던 이번 대회는 15km 지점의 결과로 보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두 딸과 아내가 더욱 정겹게 내 맘에 와 닿았다. 어려운 때에도 늘 아빠를 믿고 지지해준 고마운 나의 가족.  어느덧 나는 두 딸, 아내와 함께 뛰고 있었다.

15km 지점 통과.01;29:18

  16km 지점에서  우측으로 돌아 달리니 아이들이 나와서 "헬로 헬로"하며 손을 내민다. 주자들이 아이들에게 손뼉을 마주쳐주면 무척이나 좋아한다. 천진난만함에 주자들은 아이들과 손뼉을 마주치고 멈추어 같이 사진 찍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1분 정도 머물며 아이들과 함께 악수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의 마음과 아이들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이 대회는 캄보디아 조직위원회와 국제기구 NGO단체가 함께 주관하고 참가비는 전액 캄보디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사용된다. 사실 그들에게 주는 것보다 내가 얻은 게 더 많은데...

주자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즐거워 하는 아이들

  이제 완전히 도심을 벗어났다. 울창한 숲 속에 간간히 집들이 보이고 주자들은 앞으로 계속 내 달린다. 저 앞 우측에 앙코르 시대의 유적이 보이는데 길가에 나와 있는 아이들에게 사원 이름을 물어보니 뭐라고 했는데 금방 잊어버렸다. 이 근처에는 워낙 유명한 사원들이 많기에 작고, 관리가 안 되는 사원은 누구에게 묻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앙코르 시대의 흔적을 느낀 것 만으로 만족하며 몇 장의 사진만 찍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사진을 찍다 보면 멈춰서 있는 나를 지나치는 주자들이 많다. 그렇게 앞서간 주자들을 보고 다시 뛰려면 조급증이 생겨 괜히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하지만 오버페이스를 조심해야 하기에 사진 찍느라 멈춰섰다 출발할 때 나는 서서히 스피드를 냈다. 앞서간 주자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나는 나보다 난 사람을 인정하는 걸 배우기도 한다.

이름 모를 앙코르의 역사

   조금 달리니 앙코르 유적으로 많이 들었던 사의 이름이 적혀있는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따 프롬, 따 께오, 앙코르 톰 사원, 우측으로는 쁘레 럽, 반티 세리 사원. 나는 쁘레 럽, 반티 세리 사원 방향인 우측으로 돌아 7km를 더 가 26km 지점에서 반환점을 돌아야 한다.

앙코르 대표 유적 표지판

  우측으로 도니 큰 호수가 보인다. 많이 지친 건 아니지만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지고 아침 햇살의 더위도 있는데 드넓은 호수(본래는 농수용 저수지)를 보니 시원함이 느껴진다. sras srang 호수. 라젠드라바르만(944~968) 시대에 축조되었다가 자야바르만7세(1181~1219) 시대에 새롭게 보강되어 다시 만들어졌다는 호수. 농경 사회에 필요한 물의 공급을 위해 저수지로 활용하려고 만들었다는데 뛰면서 보이는 호숫가의 제방 돌계단만 보아도 정교함이 눈에 보일 정도다. 앙코르 제국의 앞선 문화와 뛰어난 측량기술을 짐작하게 한다.

sras  srang 호수 (저수지)

  나는 잠시 이 길을 걸었다. 바로 앞에 20km 급수대가 있기도 해서다. 이번 주로에는 2km마다 급수대가 있고 4km마다 에너지 음료와 바나나가 있다. 그래서 충분히 마시고 충분히 먹을 수 있다. 급수대에서 나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잠깐의 여유를 가졌다. 그때 호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앙코르 제국 시대에 가장 위대한 왕인 자야바르만7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호수 가운데 우뚝 서서 캄보디아 나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옛 영화는 간 곳 없이 최빈국으로 살고 있는 지금, 자야바르만7세는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호숫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나마 나는 급수대의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캄보디아의 미래를 보며 위안을 삼았다.

급수대의 자원봉사자

  급수대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시계를 봤다. 20km 지점에서의 시간은 풀코스 마라토너에게 매우 중요하다. 예정된 시간에 들어왔다면 나머지 22km는 좀 더 여유를 갖고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1시간 59분. 아주 양호하다. 15km 이후의 5km도 30분에 달린 것이다. 나는 출발에서부터 20km까지 매 5km를 30분으로 똑같은 페이스로 달려왔다. 지금까지 나의 컨디션도 아주 좋은 편이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지친 기색을 느낄  없었다.

  사실 나는 이번 대회를 위해 연습을 많이 한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 와서 뛰는 환경이 썩 좋 않고 맘먹고 장거리를 뛰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짧은 거리라도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캄보디아에서 마음이 아주 평온한 상태로 있다. 000 자원봉사자로 나와 있기도 하지만 캄보디아에서 무슨 욕심을 부릴 일도 없고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로 살고 있다. 이러한 생활 태도는 은연중 나를 절제하게 만들며 많이 갖는 것보다는 적게 갖는 것이 행복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뛰기 운동을 하면 마음은 더욱 상쾌하고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서울에서 달리는 환경(주로 집 근처 한강변)에 비해 이곳 캄보디아 달리기 환경(도로 환경은 아주 좋지 않음. 매연, 흙먼지 등)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이곳에서 달리며 얻는 결과가 큰 것은 그만큼 마음에서 얻는 풍요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호숫가에서부터 반환점까지 가서 다시 그 길을 돌아와야 한다. 왕복 12km. 나는 이 길을 달리며 맞은편의 주자를 최대한 늦게 만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환점을 돌아오는거기에 나보다 얼마나 먼저 앞서 뛰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22km 지점에서 반환점을 돌고 나오는 첫 주자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8km를 먼저 달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나의 기록을 볼 때 1등 주자인 그의 기록은 아주 좋은 건 아니다. 외국인이 대부분인 풀코스 대회에서 작년 1~10등이 3~3:30분대 라는 걸 홈페이지 기록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 그래 내 앞에 1명... 그런데 몇백 미터 가다 보니 맞은편에 주자들이 마구 나타난다. 두 명, 세 명... 나는 세는 걸 멈췄다. 잠시 나는 오늘의 목표를 잊고 있었다. 오늘 사진도 찍으며 달리기에 5시간을 목표로 했다는 사실을. 내가 이렇게 잠깐이나마 기록이나 등수에 욕심을 부린 것은 20km를 1시간 59분에 통과했기 때문이다. 사진 찍느라 지체한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꽤나 잘 뛰어온 셈이다. 하지만 만용이나 과욕은 늘 화를 자초한다. 나의 인생에서도 그런 적이 있다. 나의 능력을 과신하며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며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갖는 것.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나는 나중에 그런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것도 달리면서...

  우리는 살면서 나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간 뒤다. 후회해도 소용없을 나이. 지금 나는 나를 알아야 하는 싯점이다. 본래의 나로 돌아와 나는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반환점을 향해 뛰었다. 반환점을 돌아 먼저 간 주자들이 70여 명은 넘는 듯하다. 내 뒤로는 아직 삼백 여명의 주자들이 있고.

26km 지점 반환점을 도는 주자들

 (다음에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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