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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Aug 10. 2018

앙코르 제국  달리기 이야기(2)

The 5th Khmer Empire full marathon

  26km 반환점을 돌았다. 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 그래서 달리는 기분도 좋다. 이런 페이스로 계속 달리기를 바랐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반환점을 맞는다. 그게 누구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이고, 누구는 직장에서 명예퇴직이기도 하고, 누구는 예기치 못하게 맞는 가정에서의 위기고... 하지만 그런 turning point를 지나면 또 일상으로 돌아온다. 희열도 분노도 길게 보면 인생에서는 잠깐의 시간이다.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는 나의 인생에서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해줬고 앞으로도 같이 뛰어갈 주자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는 반환점을 향해 오는 맞은편 주자들을 보며 잠깐의 희열을 느낀다. 내가 앞으로 내달리며 만나는 맞은편 주자는 앞으로 내가 달리는  거리만큼 차이가 벌어진다.  출발점 맨 뒤에서 시작한 나는 10km 지나면서  반환점까지 상당히 많이 앞선 주자들을 추월하며 왔다. 26km에서등위가 전체 등위로 거의 정해진다고 봐도 된다. 그만큼 30km 이후에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스피드를 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반환점을 돌아서는 되도록 앞선 주자를 추월하지 않으려고 했다. 잘못하다가는 오버페이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도를 봤을 때 30km 이후부터는 앙코르 유적지를 많이 지나가기에 그 역사를 보며 달리면 남은 10여 km 거리가 그다지 힘들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힘들면 유적지 사진 찍으며 좀 쉬겠다는 생각도 했고.

코스도. 빨간색이 풀코스

   30km 지점에 닿으니 우측에 작지만 정갈한 사원이 보인다. 쁘레럽 사원이다.
   라젠드라바르만 2세( 944-968)의 왕실 사원으로 962년에 건립되었다. 정상에 있는 3개의 탑 중 2개는 이후 자야바르만 5세( 968-1001) 시절에 지어진 것이다. 사원의 이름은 '사체의 변신(turnthe body)'이라는 의미로, 장례의식이 열렸던 곳임을 추측된다. 가까이 달려가 볼수록 아름다운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쁘레럽 사원

     나는 30km 지점을 3시간 2분에 통과했다. 30km까지 매 5km를 30분에 달린 것이다.  주로에서 지금까지 달리며 찍은 사진이 70여 장.. 사진 찍으며 나는 꽤나 잘 달려온 셈이다. 남은 거리는 12.195km. 욕심을 부린다면 4시간 15분도 가능할 거 같다. 하지만 나는 오늘 전코스 마라톤 여정을 사 찍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앙코르 제국의 대표적인 유적인 따 프롬, 따 케오, 바이욘 사원을 지나게 된다. 이곳은 앙코르 톰 지역으로 앙코르 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대의 중심 도시다. 그래서 나는 4시간 반 정도로 목표를 잡았다(하지만 나는 35km 이후는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 걷다 뛰다를 반복한다).

  

   앙코르 제국 (802~1431)

"8세기 후반 자바에 볼모로 잡혀 갔던 첸라 왕조의 푸스카락 왕자가 앙코르 지역으로 돌아와 새 수도를 세운다. 그는 스스로를 “레바라자(신왕)”이라고 칭하고 앙코르 제국을 여는데 그가 바로 자야바르만 2세이다.  

자야바르만 2세(802~834)는 자바 군을 물리쳐 속국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갈라진 첸라를 다시 합치기 위해 힘썼으며 주변 왕족들을 규합하여 앙코르 지역에 수도를 건설한다. 이후 600년간 번영을 거듭한 앙코르 제국은 현재의 베트남 남부, 라오스, 미얀마, 태국의 일부를 포함하는 대제국을 형성한다. 자야바르만 7세(1181~1219) 때 가장 번성한 앙코르 제국은 당시 앙코르 지역에 7개의 도성과 1,200여 개의 힌두, 불교 사원이 지어져 두 종교가 융합된 독특한 앙코르 문명을 꽃피웠으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남겼다"


   34km 지점에 우측에 따 프롬 사원이 보인다. 따 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만든 사원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했던 "툼레이더"에서 나무뿌리가 사원 전체를 감고 휘돌아 하늘로 뻗은 기괴한 모습이 장관인 사원. 나는 따 프롬 사원을 그냥 지나쳐 따 케오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몇 달 전 와서 봤던 따 프롬 사원의 인상이 너무 강열했기에 되도록이면 가까이 붙어서 달려 보고 싶었다. 길가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따 프롬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측으로 돌아야 하단다. 앞에 보이는 담이 따 프롬 담이고.  

따 프롬을 가르키는 아주머니

   코스를 벗어나 따 프롬 쪽으로 달릴 수는 없다. 나는 따 프롬 담과 맞은편 사원 담을 사이에 두고 길게 이어진 길을 달렸다. 달리기에 아주 아름다운 길이다. 좌측의 담 또한 앙코르 시대의 유적일 텐데 잘 모르겠지만 한눈에 봐도 옛 영화가 떠오른다.

따 프롬 맞은 편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사원

     따 프롬 사원 담을 끼고돌며 뛰는 이 길은 35km 지점.  저 앞에 웅장한 사원이 보인다. "따 케오 사원". 나는 그 앞에 섰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벅지에 경련이 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따 케오 사원 안내판 앞 앉아 허벅지를 주무르며 쉬었다. 겸사겸사 여기저기 사진도 찍고. 두 다리 다 안쪽 허벅지 경련은 처음이다. 예전에 뛸 때는 한쪽만 그랬는데.. 그렇더라도 나는 35km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잘 뛰어 왔다. 예정한 5시간 완주는 물론이고 4시간 반도 가능할 거 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좀 편하게 쉬었다 1~2분을.


  따 케오 사원

힌두교 사원이다. 자야바르만 5세(968-1001)가 동(東) 바라이에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서 국왕 사원의 용도로 건립하였다. 시바신을 모시는 곳으로 국왕의 장례를 치르기 위한 곳으로도 사용했다.

따 케오 사원

   이제 7.195 km 남았다. 나는 서서히 걸으며 출발했다. 허벅지의 근육 뭉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느낌이다. 여기서 쉬는 사이 나를 지나쳐 앞서간 주자들이 너댓명은 되는 거 같다. 하지만 나는 맘을 비웠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기록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거기에 만족했다. 서서히 뛰며 보니 저 앞에 가던 주자들도 걸어가고 있다. 나는 다시 그들을 제치며 달렸다. 1km 정도 달리니 허벅지에 다시 경련이 인다. 나는 다시 걸었다. 100m 정도 걸어서 좀 나지면 다시 천천히 뛰고. 나는 남은 거리를 거의 이렇게 뛰며 걸으며 다. 그러니 남은 7.195km 의 기록은 말하나 마나다. 시계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너무 늦게 뛰는 거 같아 5km를 남겨 둔 37km 지점에서 시계를 안 볼 수가 없었다. 3:59:29

37km . 3:59:29

   35km 지나며 허벅지 경련이 있고서부터는 1km를 7분에 뛴 셈이다. 남은 거리가 5.195 km인데 30분 안에 결승선에 닿기는 불가능하다. 나의 두 다리는 많이 지쳤고 허벅지 경련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다짐하며 다시 뛰었다. 그러면서 주술을 외우듯이 두 딸에게 말한다. "아빠 또 뛴다. 울 딸들도 같이 뛰자". 가족은 이래서 힘이 된다. 아내도 나와 함께 뛰기 시작한다.

  많이 지쳤지만 내 눈은 계속 앙코르 제국 역사를 읽으며 달린다. 앙코르 제국이 좌우로 보인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그 당시의 영화가 나에게 앙코르 제국의 이 길을 즐겁게 달리게 만든다. 나는 앙코르 시대 조각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빠져 아픈 걸 잊고 달렸다.

뼈대만 남아 있지만 아름다운 건축물

  몇 km 안 남았기에 주자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걷는 주자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저 앞에 보이는 사원에서 좌회전해서 가는데 앞에 길게 늘어서 가는 주자들과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나도 많이 지쳤다는 증거다. 긴 담이 있는 사원을 앞에 두고 좌측으로 돌면 앙코르 톰의 대표적 사원 바이욘 사원이다.

앞서 달리는 주자들의 무거운 발걸음

    바이욘 사원을 앞에 두고는 걷는 주자가 꽤나 많다. 이때 내가 힘내서 달리면 그들을 제칠수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들보다도 못하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대표적인 사원이다. 바이욘 사원은 출발지로 부터 39km 지점. 바이욘 사원 반을 돌아 앙코르왓 방향으로 나가는 코스기에 나는 바이욘 사원을 돌며 달리는 코스는 걷기로 했다. 다리가 풀렸고 허벅지 경련도 자주 일어났다. 300여 미터를 걸었다. 자연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4시간 반이나 5시간이나 나에겐 큰 의미가 없다.


  바이욘 사원

앙코르 톰은 자야바르만 7세가 1200년경에 세 거대한 도시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km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으며 높이 8m의 성벽과 너비 113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 톰의 중심에 세운 거대한 불교사원으로 왕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제1회랑과 제2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앙에는 높이 42m의 본전이 솟아 있으며, 본전을 포함해 사원 곳곳에서 사면체 관음보살상을 만날 수 있다. 바이욘의 관음보살상은 일명 크메르의 미소라고 하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유명하다.

회랑의 벽화는 오랜 세월을 지나며 훼손된 곳도 적지 않지만 제1회랑 동면과 남면의 벽화는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이곳에는 일반적인 앙코르 유적과 달리 신화나 전투뿐 아니라 당시의 일상생활도 기록되어 있어 흥미롭다.

바이욘 사원

   바이욘 사원을 끼고도는 코스를 지친 다리도 쉴 겸 사진도 찍으며 걸었더니 많은 시간이 허비됐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나처럼 가는 곳곳에서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많은 사진을 찍는 주자는 없다. 나는 나만의 행복감을 느끼며 달리기를 한 것이다. 시간이 좀 지됐다고 내가 불안해할 건 하나도 없다. 나는 나의 목적대로 , 또 사진을 찍은 것이다. 앙코르 톰도 한번 와 봤던 곳이지만 이렇게 달려와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런 맛에 달리기를 하는 거다. 뛰다 가다를 반복하면서 앙코르 톰의 큰 문을 빠져나와 해자 위 다리에 섰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 양쪽에는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 나가(naga) 신의 몸통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54명의 신과 아수라 상이 나란히 서 있는데, 이는 인도의 천지창조 신화를 표현한 것이다. 사진을 찍으며 해자 위 다리를 걸었다.

앙코르 톰 입구의 해자 다리

   해자 다리를 건너니 저 멀리 앙코르왓이 보인다. 점점 다가갈수록 앙코르왓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비친다.

 

  앙코르왓.

앙코르왓 사원은 불가사의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12세기 앙코르 제국의 왕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45)에 의해 세워진 앙코르왓은 힌두교의 비쉬누 신에게 바치는 사원과 왕의 영묘를 한데 묶었다. 앙코르 제국의 옛 수도 안에 있는 앙코르왓은 종교 건축의 황금기에 만들어졌는데 다섯 갈래의 탑으로 이루어진 사원이 산과 회랑으로 둘러 쌓여 있다.  처음에는 힌두, 그 뒤에는 불교의 중심지로서 건축물 전체가 신비스럽다. 이 사원 산의 내부 성소는 나가(naga, 신화에 나오는 뱀) 형상의 난간이 있는 큰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안에는 중앙 사원이 세 개의 단 위에 서 있는데, 이 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며 각각 우주를 이루는 세 개의 요소—땅, 물, 바람—를 상징한다. 중앙 탑과 주변의 보다 작은 탑들은 힌두교 우주관의 중심인 메루 산의 봉우리를 상징한다.

앙코르왓의 해자, 숲 너머의 앙코르왓

   아침 9시를 넘긴 햇살이 뜨겁다. 1km 앞이 finish line이다. 시계를 본다. 4시간 32분..

하지만 나는 여기서도 사진을 몇 번 찍었다. 아니 두 다리가 움직이질 않으니 쉴 겸, 걸으며 사진을 찍은 것이다.

내 앞은 아무도 없다. 뒤에 누가 오는지 알 바도 아니다. 나는 마지막을 향해 천천히 뛰었다. 4시간 40분을 넘기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달려오던 주자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하는지 나를 앞서 나간가. 그의 남은 힘이 대단한다.

finish line이 보이고 나는 10m 앞에 멈춰 섰다. 주로(走路)에서의 마지막 사진 찍다. 4:39:57

finish line의 전광판

  이번 대회는 건타임 방식이기에 가장 뒤에서 출발한 나는 결국 4시간 40분 2초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대회를 완주했다는 기쁨이 밀려왔다. 오늘 나는 35km 지점까지 페이스대로 정말 잘 달렸다. 두 딸과 아내에게 감사의 카톡을 했다. 큰 딸과 아내는 화려한 이모티콘으로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줬다(독일에 있는 작은 딸한테는 밤 시간이라 나중에 카톡을 받았고). 나는 주로(走路)에서만 152장의 사진을 찍었다. 가끔 어떤 사진은 주로를 벗어나서 찍기도 했다. 그렇게 사진 한 장 찍는데 5~10초의 시간이 걸렸다면?? 물론 시간이 단축되었겠지. 하지만 난 더 큰 것을 얻었다. 앙코르 제국 역사의 길에 대한 기록.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그늘에 앉아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며 방금 달려온 시간을 되새겨 봤다. 사진 한장 한장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다가왔. 뿌듯함과 함께. 얼른 이 사진을 정리해서 큰 딸 은솔이, 작은 딸 한솔이, 나의 벗 아내에게 보내주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곤함도 잊고 내가 찍었던 사진을 연신 다시 보며 회상에 젖었다.  200여 장의 사진을 보다가 나의 눈은 한 장면에 멈췄다. 반환점 돌아서 30km 지점 sras srang 호수가 보일 때 호수 한쪽에 앉아 있던 할머니. 페트병 등 폐품을 줍다가 잠시 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주로를 벗어나 10m 정도 호숫가로 가서 할머니를 찍었다. 그는 나의 어머니였다. 23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사랑스런 나의 두 딸과 아내. 그리고 앙코르 제국을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차가 흔들리자 피곤함이 몰려오고 스르르 눈이 감긴다.  하지만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앙코르 제국 역사의 길을 달리고 있었다.

앙코르 제국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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