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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Oct 08. 2018

캄보디아 두 번째 큰 도시 바탐방

캄보디아 추석인 프춤번 기간에 바탐방을 뛰다

   바탐방.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서부 지역의 중심도시다. 바탐방 주 인구는 110만 명 정도며 바탐방 시내에는 약 20만 명이 살고 있다. 11세기에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바탐방 지명은 지팡이 왕 크란홍이 지팡이를 잃어버렸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바탐방은 곡창지대로서 넓은 평야와 쌀로 유명하여 캄보디아의 밥그릇이라고 불린다. 

   캄보디아에는 우리나라와 비숫하게 설과 추석이 있다. 다만 그 날짜가 달라 캄보디아 설날인 쫄츠남은 4/14~16, 추석인 프춤번은 음력으로 8월 그믐이다. "프춤"은 "모으다", "번"은 '쌓아놓은 밥(공양하는 쌀)"을 의미하는 말로서 우리나라의 제사와 같이 조상을 기리며 후손의 건강과 안녕을 빈다. 프춤번 기간 공식적인 휴무는 3일이지만 대개 일주일 정도 쉰다. 나는 프춤번 휴식 기간에 하루 바탐방에 가서 인근 지역을 뛰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반티민쩨이에서 바탐방까지는 76km. 도로가 좋지 않아 차로 한 시간 반 이상 걸린다.

  8월 초 씨엠립 앙코르왓 마라톤 대회 참가 이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 달려본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집을 나섰다. 작은 미니밴 안의 분위기는 사뭇 흥겹다. 프춤번의 명절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탐방 가는 미니밴

  한참을 달려 바탐방을 상징하는 동상이 보인다. 캄보디아는 각 도시 입구에 도시의 유래가 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바탐방은 지팡이 유래를 따라 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이 동상은 프놈펜에서 들어오는 쪽에 세워져 있고 그 반대인 내가 출발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는 입구에는 팔이 8개 달린 여인이 뱀을 쥐고 있는 동상이 있다. 나는 지팡이 동상의 유래는 알지만 이 여인의 유래는 알지 못한다. 시내 정류장에서 내려 나는 200여 미터 이 동상까지 걸어 돌아와 이곳을 출발점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팔이 여덟개 달린 여인이 뱀을 쥐고 있는 모습

   시계를 보니 9시 10분. 바탐방 여행은 대개 시내, 뱀부 트레인(bamboo train), 박쥐 동굴, 바난 사원의 코스가 있다. 도심에서 뱀부 트레인은 8km, 바난사원은 23km, 박쥐동굴은 25km 떨어져 있다. 뱀부 트레인과 바난 사원 방향이 비슷해서 오늘 나는 뱀부 트레인까지 달린 후 거기서 10km는 톡톡이를 타고 이동한 후 13 km를 달려 바난 사원까지 갈 예정이다 그렇게 달리면 대략 21km. 하프코스 정도를 오늘 일정으로 잡았고 그에 맞는 간식(삶은 계란, 스니커즈 초콜릿)을 준비했다. 여행을 겸해 달리니 시간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바탐방 시내는 꽤 번잡했다. 프춤번 기간이라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지만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바탐방 중심가 골목길

  나는 뱀부 트레인 방향으로 달리며 사전에 조사한 목적지인 시장, 쌍커 미술관, 사원을 경유해서 달리기로 했다.

어디나 시장은 활력이 넘친다.

바탐방에서 가장 큰 시장 봉촉시장

  시장에서 기웃기웃 잠시 흥에 겨운 명절 분위기를 느낀 후 나는 바탐방 시 한쪽을 흐르는 쌍커 강 방향으로 달렸다. 쌍커 강은 바탐방을 끼고 흐르며 이 물줄기는 내가 뛰어갈 바난 사원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이 강줄기를 따라 바탐방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 같다. 인류 역사는 물 있는 곳에서 부터 시작되니까.

쌍커 강 다리

  쌍커 강을 건너면 도시 외곽의 느낌이 들 정도로 중심가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쌍커 강을 건너며 돈을 구걸하던 두 아이의 맨발이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맨발의 두 소녀

  쌍커 강을 건너서 우측으로 돌아 달려도 뱀부 트레인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심을 관통하며 달려 여행의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 되돌아왔다. 두 블록 시내로 들어가서 달렸다. 멋진 사원이 보였다. 불교 대학 도서관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불교 도서관

  이곳을 지나 계속 앞으로 달렸다. 그다음 목적지가 미술관이다. 바탐방 구글 지도에 미술관이라는 표식이 나오는 걸 보고 나는 자못 궁금했고 이런 도시에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한참을 왔다 갔다 헤매다 미술관 간판을 발견했다.  프춤번 기간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간판을 보고 웃음이 났다. 하지만 작은 딸에게  얘기가 생겼으니 기뻤다. 어디 갈 때 내가 미술관을 찾는 것은 아작은 딸이 생각나서다. 지금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작은 딸은 나에게는 미술 선생이고, 예술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는 좋은 친구다. 감성이 풍부한 작은 딸이 독일에서 더 큰 꿈을 이루길 바라며 아빠는 늘 맘속에 작은 딸을 품고 산다.

바탐방 쌍커 미술관. 쌍커는 도심을 흐르는 강의 이름

  미술관을 보고 약간 실망했던 나는 조금 더 걷다가 나도 모르게 작은 딸의 이름을 불렀다. "한솔아!! 저기 봐". 그라피티. 작은 딸 미대 3학년 때인가 그라피티를 어디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것이 과제였었다. 큰 , 작은 , 나, 우리 셋이는 몰래 그릴 곳을 물색하다가 집 근처 한강변 자전거 길을 택했고 잠실 철교 밑 자전거 도로 바닥과 강가 수자원공사 건물 벽에 작은 딸이 몰래 그렸었다. 한국에선 그런 것이 불법이기에 잘못하면 벌금을 물 수도 있다. 그 뒤로 나는 강변을 뛸 때마다 작은 딸의 그라피티를 보며 웃음 짓곤 했다. 허름한 담벼락에 있는 그라피티에 나는 바탐방이 새롭게 느껴졌다. 아주 수준 높은 도시로 느껴졌다.

그라피티

   바탐방 시내는 사원이 꽤나 많고 규모도 컸다. 한쪽은 시아누크라자 불교대학이. 덤라이써라는 사원은 무척 화려했다.

시아눅빌라자 불교 대학교

  캄보디아는 불교도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그런지 부자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게 덜하다. 하지만 오히려 죽어서는 차별이 존재하는 곳이다. 한쪽 장례식을 준비하는 단을 보니 어마어마하다. 공사 인부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죽은 사람이 무척 부자라고 한다.

부자의 장례식

  캄보디아에서는 부자들이 사원에 조상을 모셔 두는데 탑이나 무덤이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는 듯했다. 이곳에도 많은 무덤이 있었다. 바탐방 시내의 사원에 무덤을 조성할 정도면 꽤나 잘 사는 사람일 것이다.

사원 안에 조성된 묘지

  바탐방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중요한 행정기관이 있던 곳으로 프랑스식 건물이 많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유럽풍이 느껴지기도 다. 촘촘한 시내를 달리며 그러한 느낌을 느껴보지 못했던 나는 잘 정비된 관공서를 보며 잠시 발길을 멈췄다. 바탐방 정부 건물이나 통신사 건물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프랑스 식의 고풍스런 건물

  주정부 건물과 이어져 있는 역사박물관은 더욱 아름다웠다. 프랑스와 캄보디아를 연결하며 상념에 잠겨 보았다.

바탐방 역사 박물관

  시내의 끝자락인 이곳까지는 약 3km. 나는 천천히 달리며 바탐방 시내를 맘껏 즐겼다.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 나는 빨리 뛰기로 했다. 천천히 시내를 뛰면 준비 운동도 충분히 한 셈이다. 시내 외곽의 도로는 한적했고 날씨 또한 구름이 덮여 뛰기에 좋았다. 눈에 익은 철길이 나온다. 태국 국경 포이펫에서 내가 살고 있는 반티민쩨이를 지나 이곳 바탐방까지 이어진 철로다. 올해 개통된 철로.

포이펫~ 반티민쩨이~ 바탐방~ 뽀삿 행

   구름이 걷히고 다시 태양이 뜨겁다. 오전의 태양이지만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11시경의  32도의 날씨가 꽤나 덥다. 내 옷은 이미 흥건히 젖었다. 온몸이 땀으로 살이 쓸리면 쓰라리다. 그래서 나는 뛰기 전 겨드랑이, 사타구니에 바셀린을 듬뿍 바른다. 특히 아무 쓸모없는 남자의 젖꼭지는 땀에 젖어 옷에 쓸리면 무척 쓰라리고 아프다. 그래서 나는 뛰기 전 일회용 밴드를 십자 모형으로 붙여 젖꼭지를 없애 버린다.
  쨍쨍하던 날씨에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는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가 멈추기도 한다. 나는 길가의 사원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마침 이곳에선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명절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어르신을 대접하는 것 같았다. 어찌나 나의 소매를 끌고 밥을 먹으라고 하는지 억지로 한수저 먹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직도 순수함이 그대로다.

프춤번 동네 잔치

  비가 그치고 나는 다시 뛰었다. 바탐방 시내에서 걸었다 되돌아왔던 싸커 강을 건너 달려야 한다. 그곳이 뱀부 트레인 가는 방향이다.

바탐방 시내로 부터 5km 흘러 내려온 쌍커 강

   강을 건너자 완연한 시골길이다. 쭉 뻗은 길이 시원스럽다. 달리는 기분이 난다. 5km를 천천히 달려왔기에 힘들지 않았다. 쭉 뻗은 길을 즐거운 맘으로 달렸다. 뜨거운 태양은 밉지만 하늘은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냈다.

바탐방 시골 국도

  2km 정도 쭉 뻗은 길을 달리다 뱀부 트래인 방향으로 우회전했다. 어떤 표지도 없고 다니는 사람도 없어 긴가민가 할 정도였다. 길가의 소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래도 나는 구글 지도를 믿고 달렸다

소야! 이 길이 뱀부 트레인 가는 길 맞니?

  뱀부 트레인에 도착한 나는 먼저 헛웃음이 나왔다. 관광객이 많지 않고 철로와 평상 같은 게 덜렁 몇 개 바닥에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배낭을 메고 뛰어 온 내 모습이 관광객처럼 보이지도 않았는지 일하는 사람들 조차 아무 말도 안 걸었다. 한가로이 앉아 잡담을 나누는 그들(뱀부 트레인을 모터로 운전하는 운전사)에게 이곳이 뱀부 트레인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러면서 다시 날 쳐다보지도 않고.

뱀부 트레인 출발역(?)

  뱀부 트레인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900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설치된 철도 폴 포트 정권 시절에 파괴되었다. 파괴된 철도는 한동안 방치되었고 주민들이 탱크 바퀴 위에 대나무 평상을 대고 간이식 차량을 만들어 바탐방에 뽀삿까지 운행하게 된 것이 유래다. 나도 처음에는 철로가 대나무로 만들어졌나하고 의아했었다. 대나무는 철로를 달리는 평상의 바닥 대쪽뿐이었다. 내 상상과 너무 차이가 나서 어이가 없만 이게 의외로 재미있었다. 10여 km 넘는 철로를 시속 30~40km로 달리는데 안전장치는 앞의 나무손잡이뿐이다.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연을 그대로 받으며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신선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게 마치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뱀부 트레인과 콜라

  먹다 만 콜라를 바닥에 놓고 잠시 한눈을 파니 콜라가 바로 엎어진다. 그만큼 진동이 심했다. 하지만 몸과 자연이 하나 되는 것 같은 느낌에 나의 기분은 무척 up 되었다. 나의 up 된 기분과 달리 너무나 무덤덤한 뱀부 트레인 운전사와 그 아들의 표정이 재밌다.

뱀부 트레인 운전사와 아들

  10여 km를 달려 도착하면 다시 되돌아온다. 나는 돌아올 땐 철로를 달려 보고 싶었다. 그래서 2km 정도 철길 옆을 달려 보기도 했다.
  외길 철길이기에 뱀부 트레인 두대가 마주치면 한대는 옆으로 들어 내리고 길을 비켜줘야 한다. 옮겼다 제자리에 놓는 작업은 마주친 두 사람의 운전사가 하는데 너무나 신기한 풍경이기에 사진으로 남겨 봤다. 철로 위 뱀부 트레인을 받치고 구르는 쇠를 운전사 한 명이 가뿐히 드는 걸 보고 나도 들어봤더니 꿈쩍도 안 한다.

뱀부 트레인이 마주 했을 때 하나를 옆으로 내려 길을 비켜준다

  내가 온 뒤에는 꽤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보였다. 관광상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편의 시설이 없어 배가 고팠던 나는 매표하는 아줌마에게 밥을 청해 맨밥에 계란 프라이로 점심을 했다. 한낮 더위에 빈속에 뛸수는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바난 사원까지가 23km이고 나는 중간 지점까지 톡톡이로 이동한 후 13km를 뛰어서 가야 한다. 간식으로 싸온 계란 3개와 스니커즈 3개는 이미 다 먹었다.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줌마에게 밥값을 지불한 후 나는 톡톡이로 이동했다.

뱀부 트레인 터미널의 아줌마

   오후 시의 태양은 뜨거웠다. 톡톡이를 타고 가며 잠깐 유혹에 빠졌다. 이걸 타고 목적지 끝까지 갈까? 장거리를 달릴 때 가끔 이런 유혹에 빠지긴 한다. 걷고 싶고, 앉아 쉬고 싶고, 심지어 어떤 대회 때는 가로질러 가고 싶은 유혹. 하지만 나는 그런 때마다 그냥 천천히라도 달리자, 이번에 포기하면 다음에도 또 그런다, 그럼 습관이 된다하며 유혹을 뿌리치곤 했다.

  나는 중간 지점에서 톡톡이에서 내렸다. 톡톡이 기사는 아마도 내가 요금을 아끼려고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선크림을 다시 바르고 뒷목까지 모자를 내려쓰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달리는 총거리는 약 21km. 나는 이제야 반환점을 앞에 두고 달리는 셈이다.

  바난 사원으로는 꽤 많은 차들이 지나갔다(도착해서 알았지만 그곳은 사원으로 보다는 유원지로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금방 땀으로 옷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나의 달리기 취미로 보면 이 정도 거리는 크게 어렵진 않다. 차량과 톡톡이가 계속해서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바난 사원 가는 길

  길가의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니 달리기도 좋다.

톡톡이를  쫒아 달려 바난 사원으로.

  바난 사원의 입구 표지를 보고 꺾어 들어가니 저 멀리 산이 보인다. 바난 산. 캄보디아 내륙 지방은 산이 많지 않아 낮은 산이라도 금방 눈에 뜨인다. 산은 높지 않아 해발 200m 정도 되어 보였다.

바난 산

  이곳 산 정상 못 미쳐 바난 사원이 있다. 바난 산 밑은 유원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땀이 말라 소금이 피부에 덕지덕지 붙었고  몸이 끈적거리기에 씻고 싶지만 어디 씻을 곳이 없었다. 사실 뛸 때 힘든 거보다 뛰고 나서 씻지 못하고 그 상태로 오래 있어야 하는 게 더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익숙해져야 한다.

   사원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산 아래 쌍커 강(바탐방 시내를 흐르던 강)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바난 산 쌍커 강 유원지 풍경

  바난 사원. 수리야바르만 1세의 아들 인 Udayadityavarman 2세(1050~1066)에 의해 세워졌다가 자야바르만 7세(1181~1219) 때에 완성되었다. 바난 산 정상 근처에 중앙 탑을 중심으로 네 개의 탑이 둘러싸고 있다.

나는 산 정상으로 가는 358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 계단 경사가 무척 가팔라서 옆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바난 사원 오르는 계단

   이렇게 높은 곳에 사원을 짓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더 높이 오르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게다. 하물며 대제국 앙코르 시대에는 어땠으랴. 산 정상에서 바라본 사원은 뭔가를 정복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방이 다 보이고 마치 저 아래 세상을 호령할 듯한 기세다. 다섯 개의 탑을 만들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을까?

때때로 역사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록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게 후대에 더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바난 사원 탑

  벽의 부조들이 정교하다. 부조의 아름다운 여인은 지금이라도 금방 벽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앙코르 제국의 조각이나 벽화는 매우 섬세하다. 그건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고 맘이다. 맘이 함께 있을 때 손이 따라간다. 나도 가끔 느낀다. 달릴 때 마음과 두 발이 함께 하는 느낌,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의 지시로 손이 움직이는 느낌들.

  정상에서 30분간 쉬는 것으로 오늘의 여정을 마쳤다. 바탐방으로의 외출은 힘들지도 않고 여유 있게 뛰고 즐겼던 하루였다. 나는 오늘의 기억을 천천히 머릿속에 새기며 한 걸음씩 가파른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오늘 바탐방의 시간에 아내와 큰 딸, 작은 딸과의 추억을 내려오는 계단 하나하나에 한 장 한 장씩 더했다. 모두 358장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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