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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Nov 04. 2018

무너진 앙코르 도시 반티츠마

도시 전체가 무너져 내린 앙코르 유적 도시 반티츠마를  달리다

  나는 올 5월부터 코00 단원으로 캄보디아 반티민쩨이주 지역에서 근무하며 건강도 지킬 겸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반티민쩨이주 세레소폰 시, 서쪽으로는 45km 떨어져 태국 국경과 인접한 도시 포이펫이 있고, 동쪽으로는 앙코르 왓의 씨엠립, 북쪽으로는 태국 국경과 인접해 있는 반티츠마(세레소폰 시에서 70km 떨어져 있으며 그곳에서 30여 km를 더 가면 태국 국경. 그러나 그 너머는 길은 없고 숲과 산으로 되어 있어 이쪽으로 태국 가는 길은 없다)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캄보디아 제2의 도시 바탐방이 있다. 나는 이미 세 곳의 도시는 뛰었다. 반티츠마는 무척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반티츠마는 오지에 있어 교통편이 없으며 유적지 대부분이 무너져 있어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흥미 있는 곳은 아니다. 내가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차량을 빌려야 한다. 반티츠마의 무너진 도시를 보고 싶은 욕망은 드디어 이번 토요일에 나를 그곳으로 가게 했다.

  반티츠마. 앙코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1181~1219)가 참파(지금의 메콩강 삼각주의 남베트남)와의 전쟁을 하다가 죽은 아들에게 헌정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캄보디아 내에도 기록이 없어 확실치 않음). 앙코르 톰과 같은 모양으로 지어졌으며 앙코르톰,앙코르왓,쁘레칸과 함께 앙코르 4대 유적 중 하나이다. 하지만 반티츠마 지역의 유적은 다 무너져내려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더 가고 싶었다. 무너져 내린 도시에는 뭔가 모를 깊은 아픔이 느껴진다.

  반티츠마는 자야바르만 7세 시대에 태국 지역까지 국가가 확대되는 과정에 형성된 도시라고 한다. 그 당시 앙코르 제국은 베트남, 라오스, 태국 일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대 제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티민쩨이주 소속의 자그만  동네다. 반티츠마를 두발로 뛰며 느껴보기 위해 나는 하루 톡톡이를 빌렸다. 오늘의 코스는 반티츠마 도착하기 전 8km 지점에서 내려서 뛰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티츠마 작은 도시는 반티츠마 사원을 중심으로 멀게는 8km, 짧게는 2~3km에  많은 사원이 분포되어 있다. 어떤 곳은 밀림 속에 있거나 길도 엉망이어서 오히려 달려서 가는 것이 더 낫다.

톡톡이를 타고 반티츠마로 가는 길

   반티츠마를 8km 앞두고 나는 톡톡이를 내렸다. 우측으로 돌아 "반티도프 사원"으로 달렸다. 반티도프 사원까지는 4.5km, 톡톡이는 오후에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이제부터는 무조건 달려서 가야 한다.

반티도프 가는 허허벌판 길

  허허벌판 길을 한참을 달리니 집이 몇 집 보이고 좌측에 큰 호수가 보인다. 800여 년 전의 화려한 역사를 떠올리며 달려왔다. 인류의 역사는 물이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듯이 이곳의 호수를 보며 사원이 근처일 거라고 짐작했다. 지도를 보니 역시나 사원은 우측으로 돌아 500m 지점이다. 이 호수는 그 당시 이곳 주민들의 중요한 생활 터전이었으리라.

반티토프 사원 근처의 쓰라뜩 호수.

  호수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사원을 향해 달렸다. 아침 9시 반의 햇빛이지만 30도의 날씨가 따갑다. 4.5km는 반티츠마에서 처음으로 만날 반티도프 사원에 대한 기대로 힘들지 않고 달려왔다. 숲길에 접어드니 작은 길이 나있지만 숲이 울창하여 아무것도 안 보인다. 길을 잘못 들었나 두세 개 길을 드나들다 숲 건너편 보일듯 말듯 거대한 탑을 보았다. 순간 나의 몸은 얼어붙은 듯 정지되었다. 반티츠마에서 처음 만나는 앙코르 유적이었다. 800여 년 전에 이곳에 살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곳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웅장한 모습에 전율이 느껴졌다.

반티도프 사원

  반티츠마 및 주변 사원은 대부분이 무너져 있고 전혀 복원이 안된 상태다. 그래서 사원의 유래, 목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는지 등 정확한 자료는 없다고 한다. 반티도프는 반티츠마 사원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반티도프라는 말은 "군대의 요새"를 의미한다.

반티도프 사원 중앙탑

  반티도프 사원 앞에 섰다. 높이가 15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탑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탑의 모양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했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반티도프 탑을 바라보았다. 무너져 내린 모습이 뭔가를 얽기 설기 쌓아 놓은 듯 지만 천천히 둘러보니 정교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머리속에 사원 전체를 그려봤다. 나의 상 속에 화려한 사원이 그려졌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반티도프 세개의 탑

  사원의 탑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하고 출입을 금지하는 줄 하나가 이곳이 800여 년 전에 지어진 사원이란 걸 말하고 다. 나는 최대한 가까이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무너져 내린 모습에 나의 상상을 더하니 이곳은 내게 아주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너져 내린 기단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며 마음속에서 하나씩 돌을 다시 쌓아 세 개의 탑을 복원했다.

무너져 내린 앙코르 제국

  위태롭게 세워져 있는 탑을 뒤로하고 나는 발길을 돌렸다. 역사란 돌보지 않으면 잊히나 보다. 나중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아쉽지만 오늘 뛰어서 가야 할 곳이 많아서 천천히 뛰어 내려 반티도프 사원을 빠져나왔다.

  차길에서 한참을 안쪽으로 들어온 이곳은 정말 시골이다. 집도 띄엄띄엄, 사람도 거의 없다. 호수를 벗어나 다음 행선지인 반티츠마로 달리는데 물소 떼가 지나간다. 호수를 집으로 생활하는 물소다.

물소 떼

  옷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고 나의 두다리도 더위에 익숙해졌다. 이런 시골길에도 가끔씩 가게가 있어 먹는 물을 파니 다행이다. 이런 더위에 뛸 때는 물을 많이 먹는다. 물배가 차지만 금방 땀으로 배출된다. 나는 간식으로 바나나와 고구마를 배낭에 담아 왔다. 달리면서 먹기엔 최고의 탄수화물 보충제다. 뛰어 올 때 봤던 시골학교 교실로 가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50년 전,우리나라도 무척 가난했다. 그때 국민학교에서 미국 원조 밀로 만든 옥수수빵을 배급으로 받아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난다.

낡은 교실의 시골 초등학교

  뛸 때 향수를 자극하는 게 있다. 나에게는 특히 낡은 모습의 초등학교가 그렇다. 초등학교를 보면 설렘이 있다. 아직도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꿈은 늘 나를 신선하게 만든다.

   시골길을 벗어나 차길에 닿았다. 왕복 9km를 달린 셈이다. 반티도프 사원에서 10여  감상했고 초등학교에서도 잠깐 쉬었기에 휴식은 충분했다. 이제 반티츠마 사원까지 8km 달려야 한다. 쭉 뻗은 도로가 달리기에 좋다. 갓길도 넉넉해 안전하고. 다만 그늘은 없다. 하지만 나는 태양이 작열하는 캄보디아 길에 이미 익숙하다.

반티츠마 가는 56번 국도길

  56번 국도 길은 달리기에 좋다. 바닥도 편편하고 길도 반듯하다. 이 길은 10년 전에 한국 정부의 원조로 한신공영이 도로를 깔았다고 한다.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달렸다. 달릴 때 체력을 기본으로 갖춰야 하지만 정신상태도 매우 중요하다. 즐거운 맘이면 두발이 가볍다. 반면에 억지로 달리는 듯하면 두발이 천근 만근이다. 오늘 나는 반티츠마 무너진 앙코르 유적을 볼 거라는 기대감이 크다. 그래서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4km 달려 삼거리에 닿았다. 좌측이 반티츠마 가는 길이다. 이 길은 포장된 시골길이나 다름없다. 한적해서 달리기는 더 좋다.

반티츠마 가는 길.좌측

   반티츠마는 잊힌 듯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다만 주말에는 인근 지역에서 여행객들이 온다. 화물차 한대가 뒤에 사람을 몇몇 태운 채 지나간다. 아마 반티츠마 사원에 놀러 가는 것 같다.

   반티츠마 사원 닿기 1km 전에 따프롬 사원이 있다. 나는 뛰어서 가볼 곳을 미리 정해놨기 때문에 두 번째 목적지 따프롬 사원을 향해 꺾어 들어갔다. 앙코르 톰 뒤편에 있는 따프롬과 같은 이름이다. 이곳 따프롬 사원에도 바이욘의 얼굴이 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캄보디아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쨍한 하늘에서 갑자기 세찬 비가 쏟아지고,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해가 뜬다. 나는 울퉁불퉁한 길을 재빨리 뛰어 안으로 달렸다. 숲길이라 쉴만한 곳이 없기도 했고 1km 정도니 빨리 뛰어 바이욘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따프롬 가는 길

 잠깐 사이지만 비가 더욱 세차게 내렸다. 따프롬을 앞에 두고 나무 밑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따프롬 앞의 작은 호수에 빗줄기와 그 너머 따프롬 바이욘의 얼굴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다.

따프롬 사원

  지금은 무척 외진 곳이지만 800여 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원을 중심으로 살았으리라. 따프롬 바이욘 4면 얼굴은 그 당시의 미소 그대로다.

바이욘의 미소

  바이욘의 미소("바이욘의 얼굴"이라고도 말함)는 앙코르 톰 바이욘 사원에 있는 모습과 똑같았다. 자야바르만 7세의 모습이라고 얘기하는 바이욘의 미소는 앙코톰의 상징이다. 반티츠마와 인근 사원에는 모두 바이욘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자야바르만 7세 시대의 영광을 상상할 수 있다.

  따프롬 사원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무너질 위험에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얼기설기 줄을 매단 탑 안쪽으로 들어가서 잠시 비를 피했다. 순간 나는 800여 년 전의 크메르인이 되었다.

    시간이 어느덧 12시. 이제 반 뛴건데  맘이 급하다. 오늘 11월 3일 토요일, 캄보디아 우기는 10월 중순에 끝났다. 3~6월 폭염의 날씨에 비해서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지만 한낮은 여전히 30도의 날씨다. 비가 갠후의 한낮은 더욱 뜨겁다. 반티츠마 사원을 향해 달렸다. 방금 쏟아진 비에 운동화가 많이 젖었다. 뛰기에 불편했지만 그냥 달린다. 달리 방법도 없다. 달리면서 운동화는 저절로 마른다.

   조금 달려 나는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입이 쩍 벌어졌다. 앙코르 톰이 이곳에 옮겨온 착각이 들었다. 해자에 둘러 쌓인 반티츠마 사원은 내가 상상했던 규모 보다도 훨씬 컸다.  반티츠마 사원을 잠깐 보고 주변 사원을 다 보려던 나의 계획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1,9km*1,7km의 해자에 둘러싸인 반티츠마 사원은 엄청냔 규모였기 때문이다( 앙코르톰 해자 3km*3km, 앙코르왓 해자 1.5km*1.3km)

반티츠마 사원 해자 다리


   나는 한시에 만나 돌아가기로 톡톡이 기사와의 약속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 보이는 해자의 다리를 건너 반티츠마 사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해자의 길이는 100m는 안되지만 넓은 폭에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원 도시로 드나들었을 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입구 좌우의 조각상들은 앙코르 유적에서 봤던 것과 같은 나가(신)를 끌고 있는 아수라와 그의 용사들의 모습인데 모두 머리가 잘려 나가고 훼손, 방치되어 있었다.

해자 난간의 아수라와 그의 용사들

  하지만 무너진 반티츠마는 이것이 시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무너진 거대한 도시를 보며 나는 뛰는 걸 멈추고 천천히 걸었다. 이렇게 큰 도시가 한순간에 무너져 없어져 버린 모습에 나는 연신 카메라를 눌렀다. 나는 사진 속 너머에 누군가를 찾아 이 도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무너진 탑에서 미소 짓는 바이욘의 입은 미소만 짓고 있지 아무 말도 없었다.

무너진 반티츠마 사원의  바이욘의 미소

   사원은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는 흔적이 많이 남이 있었다. 규모가 어찌나 큰지 나는 이곳저곳으로 뛰다가 길을 잃었다. 1.5km * 1km의 성안 무너진 이곳은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뛰다 보니 나는 밀림에 갇힌 듯 나갈 길을 못 찾아 당황스러웠다. 여기를 보고 뛰어가야 할 곳이 세 군데나 더 있기에 맘이 급해졌다. 지금까지 나는 20km를 달렸다. 반티츠마 사원 안에서 걷다 뛰다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2km는 족히 뛴 것 같다. 반티츠마 사원 내부를 전부 다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넓기도 하고 어떤 곳은 무너진 돌과 밀림 숲 속에 있어 접근도 어려웠다. 마치 해리포터의 신기한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나갈 문을 찾아야 했다. 사람도 드물고 이리저리 헤매다 넓은 광장이 있는 쪽으로 나가는 문을 발견했다. 그곳은 성벽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한쪽에서는 보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반티츠마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이었다. 무너진 돌들을 보며 나는 중국에 근무할 때 가 보았던 베이징의 "원명원"이 생각났다. 원명원은 청나라 황실 정원인데 1860년 아편전쟁 때 프랑스 군과 영국 연합군에 의해 파과되고 약탈당했다. 중국은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그 당시 무너진 그대로 두고 있다. 하지만 이곳 반티츠만는 왜 무너진 그대로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앙코르 유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벽의 조각은 정교하고 섬세하여 그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부조에 있는 그들이 무얼 말하려는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반티츠마 사원 성벽의 정교한 부조들

   한편의 무너진 성벽은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폐허다. 한 시대의 역사가 이렇게 무너져 내려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게 나의 맘을 더욱 아프게 했다.

무너진 반티츠마 도시


   반티츠마 성을 빠져나온 나는 반티츠마 바레이를 향해 달렸다. 바레이(baray)는 인공호수를 말한다. 바레이는 우기 때  물을 가두며 홍수를 조절하고 건기에도 활용하는 수로 시설이다. 도시가 형성된 곳은 바레이가 많다. 바레이는 크기가 큰 것은 몇 km 가 넘는다. 반티츠만 사원 안을 이리저리 뛰며 나는 많이 지쳤다. 점심을 준비해 오지 않고 가져온 간식은 다 먹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나는 나머지 목적지를 한 시간 정도  후에 밥을 먹을 생각이다. 중간에 식사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더위에 지쳐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배고픈 것도 잊었다.

   하지만 반티츠마 바레이로 뛰는 길은 나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지도에는 있지만 이곳은 오래전에 메꿔져 일부는 집들이 지어져 있고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1km면 간다는 바레이를 찾기 위해 나는 거의 3km를 헤맸다. 물어물어 도착한 바레이는 실망 그 자체였다.

반티츠마 바레이 흔적

   굉장히 컸다는 바레이는 지금은 메꿔져 작은 논이 되어 있었다. 괜히 왔다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오후 2시가 넘어가고 점심도 거르며 24km 정도를 뛰었더니  많이 지쳤다. 바레이를 찾느라 2km를 헤맨 것이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런 때 특히 힘이 빠지고 쳐진다. 하지만 나는 계획대로 2km 더 달려서 타넨 사원과 거기서 1km 더 가서 있는 삼낭 사원 보는 걸 마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가 이 두 사원을 가야 하는 이유는 그곳은 뛰어서 가는 나의 두발이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두 사원은 밀림 속에 있다. 오토바이도 간신히 들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사원이다. 한마디로 버려진 사원이다. 나는 남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두 사원을 두발로는 갈 수 있으니 당연히 그곳으로 가는 발걸음이 기다려졌다. 남들이 가기 어려운 곳에 나의 두발은 거침없이 갈 수 있다. 내가 지금 달려야 하는 이유다.

   타넨 사원에 닿았다. 밀림 속에 있어 한참을 찾아야 했다. 저 멀리 바이욘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나는 단숨에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글 속 타넨 사원의 바이욘의 미소

  정글 속에서도 바이욘의 미소는 똑 같이 온화한 모습이었다.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나는 삼낭 사원을 향했다. 삼낭 사원은 더 깊은 정글 속에 있다. 가는 길도 험하고. 하지만 나의 두발은 숲길도 산길도 잘 달릴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삼낭 사원 가는 길은 유쾌하다. 캄보디아 변방의 반티민쩨이주에 근무하면서 달리기를 즐기는 나였기에 얻을 수 있는 나 만의 행복이다. 

삼낭 사원 가는 정글 숲길

  정글 속의 작은 숲길을 헤치며 달렸다. 아무도 안 가는 길을 달릴 때 느끼는 기분, 나는 흙길을 신나게 달렸다. 내가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을 와보지 못했을 것이고 정글 숲길을 달리는 쾌감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달리는 이유에 대해 감사했다.

   삼낭 사원은 깊은 숲 속에 있어 진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바이욘의 미소는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삼낭 사원이 마지막 방문지다. 나는 정글 숲을 헤치며 바이욘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자야바르만 7세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이곳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오랜만에 만나는 인간인 나를 그는 무척이나 반기듯 미소 지었다. 나도 그의 미소에 화답했다.

삼낭 사원의 바이욘의 미소

   나는 바이욘의 얼굴에 미소로 작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늘의 달리기를 마쳤다.
  삼낭 사원을 빠져나오며 톡톡히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시간은 3시를 넘기고 있었다. 아침 9시 반부터 뛰기 시작한 나는 무너져 내린 도시 반티츠마 이곳저곳을 달리며 대략 30여 km를 달렸다. 반티도프에 만난 바이욘의 미소를 시작으로 빗 속에서 만난 허물어져 가는 따프롬의 바이욘의 미소, 그리고 반티츠마 사원 안의 수많은 바이욘의 얼굴들, 밀림 속 타넨 사원과, 삼낭 사원의 바이욘의 미소... 바이욘의 미소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바이욘의 미소는 마치 살아서 웃는 모습처럼 생생했다.

   독일에서 일하며 공부하는 작은 딸의 미소는 바이욘의 미소와 같이 순수하고 아름답다. 큰 딸의 미소는 해맑고 유쾌하다. 아내의 미소는 은은하며 따스하다. 나는 오늘 바이욘의 미소에서 우리 가족의 미소를 보았다. 달리기에 만날 수 있었던 미소들. 내가 달리는 이유다.
   돌아오는 길에 톡톡이에서 나는 나의 두발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맙다 이놈아.

고마운 나의 두발


* 반티츠마 사원은 다행히도 현 세계유산기금(GHF) 및 헤리티지 워치(heritage watch)와 캄보디아 정부가 사원의 복원과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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