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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Jan 01. 2019

2019년 첫날, 한해 소망을 안고 달리다

캄보디아에서 처음 맞는 새해, 첫날 달리기

  00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작년 3월에 캄보디아에 와서 오늘 새해 첫날을 맞았다. 어제의 다음날인 오늘에 특별함이란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 소박한 의미를 부여하며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침 5시 반.

  캄보디아에서 혼자 생활하며  여기 온 목적을 잊은 적이 없지만 2년 차이며 마지막 해인 올해도 변함없이 나의 의지를 실행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년에 내가 떠나오고 곧이어 작은 딸이 독일로 떠났다. 대학교 졸업 후 일 년간 알바한 돈을 모아 새로운 예술의 세계를 배워 보겠다고 떠난 작은 딸이 대견하면서도 낯선 땅이니 걱정도 조금 있다. 그리고 언제나 의젓한 딸의 사회  모습.. 둘이 떠나고 휑한 집안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아내. 나는 올해 첫날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하게 자기 꿈을 만들어 가기를 소원하며 뛰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앞으로의 나의 10년도 청년과 같은 도전 정신과 꾸준한 달리기로 체력 또한 왕성하게 살고자 하는 각오를 다지고 싶었다. 그만큼 달리기는 나의 정신이나 체력을 젊게 유지해 준다. 달리며 얻는 이점은 말로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나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달리는 건 아니다. 매번 달릴 때마다 최소한 10km 이상은 달리고 속도를 내며 체력을 다 써 버릴 정도로, 입에서 단내가 나게 쉼 없이 달린다. 그럴 때 나의 두뇌는 역동적으로 반응하고 몸속은 핏줄이 터질 듯이 용솟움 친다. 두뇌가 굳어지면 꼰대가 되고 창의적 사고는 없어진다.나이가 들어가며 경험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에 함몰되어 있고 새로움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험은 창의력과 조화를 이룰 때 가치가 있다. 경험 그 자체는 그리 내세울 것 없는 단순한 과거일 뿐이다. 나는 과거를 내세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달린다. extream 한 달리기는 나의 두뇌를 끝없이 흔든다. 창의력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다.

시소폰 공원의 새해 첫날 아침

  오늘은 시내 중심가 공원에서 출발했다. 내가 사는 곳은 태국 국경과 접한 반티민쩨이주의 주정부가 있는 시소폰시. 변방의 도시지만 인구 6만의 이곳도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고급 인테리어의 커피숍이 생기고. 시내 중심가에는 새롭게 단장한 공원이 있어 저녁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아침 6시 반의 공원은 사람이 없다. 나는 30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몇 번 뛰어본 적이 있는 반티츠마 방향의 도로를 따라 뛰려 한다. 어둠이 걷히며 솟아 오르는 태양에 캄보디아 국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은 하프코스 거리를 두 시간에 달리기로 했다. 이곳에서 연습하며 하프코스는 컨디션에 따라 두 시간 십 분에 달렸다. 하지만 오늘은 새해 첫날, 내가 목표하는 시간에 달리고 싶었다. 나는 정확히 7시에 출발했다.

  대회 참가가 아닌 달리기에서 2시간에 하프코스를 달리기 위해서는 평균 속도 및 5km당 정해진 시간에 닿아야 한다. 페이스메이커가 없기에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나는 이때 절제와 균형을 배우곤 한다. 과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달리며 정해진 시간에 5km 구간 구간을 주파하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

  2.5km 달리니 시내의 풍경이 사라졌다. 이후 가끔씩 만나는 길가의 마을은 나의 어린 시절 동네 그 모습 그대로다. 길가에 띄엄띄엄 허름한 판잣집 가게는 많아 물을 사 먹을 수 있기에 캄보디아에서 급수대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발소

  양철 지붕을 이은 허름한 이발소에서 누군가 이발을 하고 다. 이 사람도 새해라고 새로운 맘으로 이발을 하나보다. 나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명절 전날에는 어머니가 뜨거운 물을 큰 대야에 붓고 나를 번쩍 들어 그 안에 집어넣고 때를 벗기고 머리도 다듬어 주곤 했다.

  이발소의 허름한 외양과 달리 캄보디아 사람들의  머리 손질 기술은 좋다. 이발하고 나면 누구나 기분이 좋다. 이발은 새로움이고 새로움이란 희망이란 뜻을 담고 있. 그렇게 생각하니 허름한 이발소가 달리 보였다. 나의 희망인 작은 딸, 큰딸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달렸다. 우리 가족에게 작년은 새로움이 많았던 한 해였다.

"작은 딸! 작년에 독일 가서 잘 해냈구나. 올해도 파이팅이야!"

"큰 딸아~~. 올해도 사회생활 잘할 수 있지? 우리 딸들이 최고네요!!"

달리는 박자에 보조를 맞추며 이렇게 외치며 뛰면 내 두 다리는 흥이나 지칠 줄 모르고 내딛는다.

  5km 지점을 28분에 통과했다. 2~3분 늦은 셈이다. 나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셈해봤다. 10km, 15km 지점까지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낼 수 있을지를 나의 몸에 물어봤다. 하지만 5km밖에 안 달린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무리하지 않고 지금의 페이스대로 달리기로 했다. 10km 지점을 앞에 두고 작은 마을 가게에 주렁주렁 달린 길거리 빵이 정겹게 느껴졌다. 이 빵을 반으로 갈라 그 안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먹는데 "놈빵"이라고 한다. 캄보디아식 샌드위치다.

시골 길거리 가게 모습

 구글 지도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도움이 된다. 캄보디아에서도 나는 구글 지도로 거리를 알 수 있고, 모르는 곳을 뛰어가기도 한다. 지금 내가 달리는 이 길은 이미 여러 번 하프코스 거리를 달렸던 도로다( 부담 없이 달릴 때 나는 이 거리를 2시간 10분에 달리곤 했다)

  10.5km 반환점 지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하늘을 쳐다봤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다. 기록은 1시간 2분. 1시간 이내로 들어와야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2시간 이내로 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못 뛴 건 아니다. 나는 꾸준히 내 페이스대로 잘 달려왔다. 그래서 조바심은 없다. 나는 2시간 5분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새해 첫날 꾸준히 성실하게 뛴다면 그것으로도 오늘 내 목표는 달성이다. 기록은 그다음으로 따라올 것이다.

캄보디아 들녘에 떠오른 아침 태양

  올 때에 비해 갈 때는 좀 지루했다.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가는 건 지루함이 있다(그래서 나는 마라톤 왕복코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때는 생각을 바꾸면 좀 낫다. 나는 다시 두 딸을 불렀다. 두 딸과 함께 얘기하며 달리면 지루함이 없다. 나는 달리며 두 딸에게 쉼 없이 얘기했다. 작은 딸의 독일 이야기, 큰딸의 직장 및 결혼 생각 이야기 등. 신기하게도 두 딸의 음성이 들렸다. 어린 시절의 두딸이 재잘거리며 아빠를 뒤쫒아오고 있었다.

 16km 지점에 오니 아침인데도 태양이 제법 뜨겁다. 캄보디아 하늘은 이제 완전히 커튼을 제치고 파랗게 변했다.

 아침 햇살의 파란 하늘

  여기쯤 오면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피로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느낌은 나에게는 일상이 되었기에 "이 정도에서 힘들다면 어떻게 풀코스를 뛰나?" 하면서 나를 채찍 하며 달렸다. 익스트림한 상태를 이겨내면서는 희열이 온다. 이게 젊음이고 도전이고 그 정신에서 창의력도 나온다. 나는 계속 뛰면서 시내로 접어들었다. 시내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장례식 운구차량을 지켜보며 잠시 상념에 젖었다. 새해를 다짐하며 뛰는데 이분은 세상을 떠나고. 어쩌면 이승과 저승은 같이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겸손해져야 한다며 다시 뛰었다.

장례식 운구 차량

  캄보디아의 새해는 쫄츠남(4/14~16)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작은 도시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기고 송년 모임이 많다. 그만큼 도시화돼가는 모습이다. 일부 가게는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시내는 분주하다.

시소폰 시내 모습

  캄보디아 맥주 광고에 이민호가 나온 플래카드가 많이 보인다. 언젠가 캄보디아 지인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대답이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 연예인이 인기가 있지만 그것도 젊은 층 일부의 이야기다.

  내가 출발했던 공원을 앞에 두고 나는 시내 시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2시간이 넘고 있었다. 시장은 늘 분주하다. 오토바이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순수함은 시장에서 많이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시장 길을 천천히 뛰며 눈이 마주친 상인과 눈인사도 했다. 주름진 얼굴에 해맑은 웃음은 내 어머니 아버지의 그것과 많이도 닮았다.  

시소폰 시장의 새해 첫날 모습

  시장을 끼고돌아 공원을 향해 달렸다. 시주를 얻으러 다니는 어린 스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캄보디아는 불교 국가라 그런지 스님을 존경한다. 어린 스님이라도 절대로 하대하면 안 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절하고 공양한다. 가게 앞에서 시주를 받으며 불경을 읊어주는 세명의 어린 스님들 뒤에서 나는 오늘 내가 달리며 기원했던 새해 소망을 다시 한번 빌었다. 몇백 미터 앞에 공원이 보였다. 다 왔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고 눈부신 햇살이 사위에 내려 쪼였다.

  나는 오늘 모두에게 감사하며 달렸고, 우리 가족의 한해를 소망하며 달렸,  60살 후기 청년 시대의 시작이라고 외치며 달렸다. 그리고 새해 첫날 아침 2시간 5분은 작은 딸 한솔이와 큰 딸 은솔이, 사랑스런 아내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달렸던 시간이었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달리면서 사랑하는 내 가족을 떠올릴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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