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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May 19. 2018

캄보디아 국경 도시 반티민쩨이

반티민쩨이의 생활을 두 발로 읽는다

   두 달의 프놈펜 생활을 마치고 캄보디아 국경도시 반티민쩨이로 온 지 2주가 되었다. 캄보디아는 25개 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티민쩨이는 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주 전체의 인구는 68만 명이며 내가 거주하고 있는 반티민쩨이주 수도인 시소폰에는 대략 8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8만 명이면 적지 않은 인구지만 시소폰 중심가를 반경으로 3~4km 정도로 도시가 넓게 퍼져 있어 사람이 많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리고 캄보디아는 더위 때문에 아침을 일찍 시작하고 한낮에는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어 북적대는 서울의 생활에 익숙한 나의 눈에는 가끔은 유령의 도시로 비친다. 더위에 상관없이 필요하다면 한낮에도 걸어 다니는 내가 이상할 정도다.

태국 국경도시 반티민쩨이

  2주간 살면서 어느 정도 이곳 지리에도 익숙해졌다. 임지인 학교 가는 길에 여러 갈래 길을 주의 깊게 봤고 가끔은 아침 일찍 짧게 뛰기도 했다. 내가 근무할 대학은 이곳 시내에서부터 5.5km 떨어진 도시 외곽에 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나는 톡톡이(캄보디아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출퇴근한다.

  반티민쩨이는 프놈펜에서 380km 떨어져 있다. 태국 방콕이 더 가깝다. 그래서 이곳은 태국으로 가는 버스 편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시소폰에서 태국 국경까지는 47km. 나는 이곳으로 임지가 결정된 후 언젠가는 반티민쩨이에서 태국 국경까지 뛰어갈 날을 기대하고 있다.

  반티민쩨이는 프놈펜에서 보았던 도시 풍경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프놈펜에서 생활하며 도대체 이 나라가 국민소득 1,600달러의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모든 부가 집중되어 있다. 해외 자본의 투자도 대부분 프놈펜에만 집중되어 있어 프놈펜에 살다 보면 캄보디아의 실상을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반티민쩨이는 국민소득 1,600달러에 딱 맞는 도시다. 시소폰 시내를 살짝만 벗어나도 빈곤의 그늘은 여기저기 보인다.

  오늘은 천천히 뛰며 반티민쩨이 시소폰의 일상을 담기로 했다. 나는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마라톤 배낭 대신 허리쌕에 핸드폰과 약간의 돈을 넣고 출발했다. 핸드폰은 사진을 찍을 용도요 돈은 물을 사 먹기 위해서다. 시내를 외곽으로 돌다 중심가로 들어 "Z"자로 뛰다가 다시 외곽으로 돈다면 오늘 대략 10km를 달리게 될 것 같다.

집 앞을 나서니  태양이 오늘의 강열함을 예고한다

  아침 6시의 날씨지만 태양은 서서히 달궈지고 고 대로변에 진입한 나는 등줄기에 금세 땀이 흐른다. 반티민쩨이 중심가는 프놈펜-시엠립(앙코르왓의 도시)-반티민쩨이-포이펫(태국 국경도시)으로 가는 6번 국도가 자리 잡고 있다. 아침을 시작하는 차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좌측 포이펫, 우측 씨엠림의 표지판

  6번 국도를 달리다 보니 우측에 내가 매일 산보하던 공원이 보인다. 공원의 담이 두 세력이 줄다리기하는 씨엠립의 앙코르왓의 조각을 따와 만든 것이라 이채롭다.

앙코르왓 조각의 공원 담

  6번 도로를 계속 달리면 씨엠립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씨엠립까지는 110km, 만약 뛰어서 간다면 단단히 맘먹고 이틀은 뛰어야 한다. 나는 반대편으로 가는 태국 국경 도시 포이펫까진 47km를 언젠가는 하루 몇시간 동안 뛰어갈 생각이지만 씨엠립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캄보디아 대부분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길가 도로 사정이 좋지 않기에 장거리로 도로를 뛰는 건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낮의 온도가 35도를 넘나 들기에 아침 5시에 출발하여 10시 전후에 마치는 계획으로 마라톤 풀코스 연습을 생각해 볼순 있지만 아침 7시 반만 돼도 금방 온도가 30도를 넘기에 오전이라고 뛰기가 쉽지 만은 않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평소에는 10km 정도로 하고 장거리를 고려할 때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하며 생각해 보기로 했다.

씨엠립 가는 6번 국도

  어차피 좀 많이 뛰려면 국도를 달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씨엠립 방향으로 2.5km 정도를 더 달렸고 되돌아 시소폰 시내로 다시 왔으니 6번 국도에서만 5km를 달린 셈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 식사를 쌀국수 등으로 밖에서 간단히 한다. 나도 허기가 느껴졌다.

길거리 식당에서 아침 식사하는 사람들

  나는 길거리 식당 옆에서 쩨앙과 물을 사서 먹었다. 쩨앙은 바나나를 밥으로 싸고 그걸 바나나 잎으로 감싼 후 불에 구운 간식이다. 프놈펜에서도 먹어봤지만 달리며 간단히 먹기에는 최상의 메뉴다. 울트라마라톤 대회 때 50km 지점에 김가루로 밥을 뭉친 걸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영양분이 많은 게 틀림없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밥과 바나나니까.

쩨앙 파는 아줌마

  잠시 삼거리에서 서서 지난 2주간의 이곳 생활을 생각해 본다. 나는 프놈펜 같은 번잡한 도시보다는 이런 소박한 도시가 좋다. 이곳은 사람들 인정도 많고 여유가 넘쳐 프놈펜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소매치기나 강도도 없다. 그래서 사람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맘이 푸근한 도시다. 사는 게 힘들다고 맘까지 박할 순 없다. 오히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맘은 더 순수하다. 이곳에서 생활의 불편함은 나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많은 걸 겪었고, 많은 걸 보았고, 많을 걸 해봤기에 지금 여기서 나는 최소한만 갖고 생활을 하려고 한다. 손에 쥐려면 먼저 손에 많이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있다. 손에 있는 것을 다 내려놓으니 내 맘도 편하다.

활기찬 시내 아침 거리

  그러나 이곳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하루 먹고살기 바쁘게 움직이는 시장의 모습은 우리네의 모습이다. 아침의 모습은 활기차다. 표정이 밝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루의 고된 일과도 보인다. 이곳 공무원의 한 달 월급이 300달러이니 이곳의 생활을 대략 짐작하게 한다. 아무리 물가가 싸더라도 그 정도의 돈으로 풍족함을 논하긴 어렵다. 나는 그들에 비해 너무나 많이 가졌다. 그래서 손에 쥔 것을 내려놓았음에도 내 손에는 아직 그들보다 많은 것이 남아 있다.

세레소폰 시장의 아침

   시장은 시내 중심가에 있어 늘 붐빈다. 시내를 삼각형으로 감싸며 도심이 형성되어 있는데 외곽으로 꽤 많이 퍼져 집들이 분포되어 있어 도시가 크게 느껴진다. 시내 중심가를 달리니 차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꽤나 번잡한 길이다.

시내 중심가 도로

  길가 문방구에 매달린 장난감에 먼지가 덕지덕지 쌓였지만 정겹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아이들이 뛰어나올 것 같다.

시내 문방구의 모습

  나는 오늘 시내에서 좀 떨어진 초등학교를 최종 도착지로 삼고 있다. 반티민쩨이 시소폰 시내에서 2k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중학교와 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내가 도착한 다음날 코00 현지 단원의 소개로 톡톡이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며 들렀던 곳이다. 하지만 그때의 강열한 인상이 오늘 나를 그곳으로 뛰게 했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빈약한 시설에 남루한 옷차림의 아이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이 학교는 시내의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멀찍이 마주보고 있지만 두 학교 다 허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학교를 가려면 철길을 따라 달려야 한다. 캄보디아에는 철로가 거의 없다. 철길을 따라 달리는 이 철로는 반티민쩨이에서 태국 국경 도시 포이펫까지 연결된 것으로 개통된지는 두서너 달 되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기차가 다닌다. 철로 앞이 대합실이고 위험한 철로는 평화롭기까지 하다.

반티민쩨이 역

  철길은 누군가에는 생계를 따라 걷는 길이다.

철길을 따라 물건을 팔러 나가는 아주머니


  학교는 철길을 건너면 직선거리로 500m 정도 거리에 있다. 하지만 나는 철길 옆으로난 도로를 길게 돌아 달려 학교로 향했다. 멀리서 보는 학교는 마치 영화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이 학교는 비만 오면 교실 앞의 웅덩이가 넘쳐나 아이들이 학교에 올 수도 없으며 교실의 책상은 나무가 삭아 거의 부서질 정도의 모습이다.

아침 조회를 마친 초등학생들

  실상은 이렇다. 이런 환경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름다운 모습을 연상한다면 이는 아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학교 교실 입구에 걸린 자동차 휠이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나의 마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서너개의 교실이 전부인 중학교. 100명의 학생이 있다
타이어 휠 "종"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해맑음이 그대로 있어 그나마 아이들 얼굴에서 희망을 본다. 50여년 전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그때의 한국도 지금 여기의 모습과 똑같았다.

조회 시간 한켠에 앉아 선생님 말씀를 듣고 있는 1학년

  나는 캄보디아의 꿈을 믿는다. 개구쟁이 모습에서  많은 희망을 본다. 1학년 수업시간 크메르어를 열심히 받아 적는 이 아이들이 이 나라의 꿈이고 희망이다.  

1학년 국어(크메르어)시간

  책상이 낡고, 교실의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아이들의 옷이 남루하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희망은 맘 속에 있다. 나는 교실 창가에서 아이들의 수업을 보며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 같이 꿈을 꿨다. 이 학교에서 꿈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교실이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하는데 그나마 교실이 모자라 어느 반은 합반을 한다. 50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1~2학년 땐가 우리는 책상도 없이 맨 마룻바닥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한편에서 다른 학년이 수업하고. 배우는 곳이 어디 건, 환경이 좋건 나쁘건, 꿈을 얘기하고 희망을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족한 교실에서 합반으로 수업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나의 어린 시절은 추억이 되었지만 여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교복 흰옷은 때가 꼬질꼬질하여 누렇게 변했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은 내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뛰는 걸 포기하고 아주 천천히 걸으며 학교를 빠져나왔다. 아마도 뛰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멀지 않게 저 쪽에 보이는 산밑 시내에 있는 학교와는 차이가 크다. 학교 시설은 물론 아이들의 남루함이나 생활 방식 등등. 여기 학생들의 부모는 대개 도시로 돈 벌러 나가 할머니가 키운다는 어느 어른의 말을 들으니 이해도 된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시내를 보며  천천히 걸어 학교를 빠져나왔다. 풍경만큼은 수채화 그림처럼 아름답다. 운동장도 아닌 학교 앞 공터에 펄럭이는 캄보디아 국기가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시내

  학교를 빠져나온 나는 빠르게 달렸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볕이 강열했다. 선크림도 안 바르고 모자도 안 쓰고 가볍게 나온 나였기에 빨리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다. 시내에 들어오니 갈 때 봤던 여신상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기서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 젊은 여성 셋이서 여신상 앞에서 제를 올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간 나는 그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보며 뒤에서 기도를 했다. 학교의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며..

  

  반티민쩨이의 나들이 달리기는 이렇게 마쳤다. 나는 반티민쩨이가 좋다. 시골스러움이 좋다.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이 좋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의 모습은 나의 맘을 아프게 한다. 가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과 어머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악착같이 일하며 아이들을 뒷바라지한다. 많은 아이들은 맨발이지만 마냥 즐겁다. 가엽다는 표현은 외지인의 눈으로 보는 시각이다. 여 어머니와 아이들은 행복하다. 아이들이 배우는 학교나 노는 환경만큼은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동정은 답이 아니다. 맘뿐이니 여러 가지로 생각만 많다. 을 먹고 상념에 잠겨 잠시 낮잠을 잤다. 학교 복도에 매달린 타이어 휠 "종"이 아무리 때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나는 그 학교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수채화 같지만 현실은 슬픈 학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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