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삿시를 떠나는 가벼운 발걸음

굿바이 뽀삿. 여유로운 걸음걸이

by 김쫑

이틀간의 105km는 끝났다. 어제는 무척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힘든 과정은 지나고 나면 기쁨이 배가 된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아주 많이 걷는다. 어제처럼 많이 걷고도 오늘 아침 내 두 다리는 다시 걸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아침이 더욱 행복하다.

뽀삿시는 뽀삿주의 주도라서 그런지 새로 오픈한 게스트하우스가 가격도 비싸지 않고 시설도 좋았다. 이틀간의 피로를 푸는데 쉬는 공간이 쾌적하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곳에서는 왠지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다.

오늘부터 3일간은 하루 목표가 35km가 채 안된다. 3일 뒤 깜퐁츠낭주의 주도인 깜퐁츠낭시에서 머물기 위해 일정을 잡다 보니 오늘부터는 여유롭게 걸어도 된다. 출발도 여유로우니 아침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뽀삿 시내는 아침 출근길로 활기찼다. 캄보디아 도시의 아침 모습은 한국의 소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침은 생명력이 있다. 나의 아침 발걸음 또한 그래서 활기차다.

뽀삿시의 아침

캄보디아 중앙 내륙에 위치한 뽀삿주는 약 250만 명이 거주하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뽀삿시는 뽀삿주의 수도로 시내 중심가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3만 명이다. 주도라지만 소박하게 느껴지는 시가지다. 시내 중앙에는 데브라 강이 흐른다. 도로 저 편에 철로가 보였다. 이 철로는 5번 국도와 나란히 프놈펜까지 이어져 있다. 하지만 나는 걸으며 철로를 지나는 기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철로가 개통된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고 운행 횟수도 하루에 한두 편이고 시간도 많이 걸려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뽀삿시 데브라강과 철로

시내를 관통하며 아침을 여유롭게 걸었다. 아침은 밥으로 먹었다. 돼지고기야채볶음밥. 천천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대표 음식은 가격이 정해져 있다. 바이차쌋쭈룩(돼지고기야채볶음밥)은 5,000리엘, 1.25달러다(1달러는 4,000리엘). 캄보디아는 자국 화폐인 리엘과 함께 달러가 같이 사용된다. 시엠립 같은 관광도시는 오히려 달러가 더 많이 사용된다. 그래서 내 지갑에도 달러와 리엘이 같이 있다. 처음 캄보디아 와서는 화폐단위가 헷갈렸는데 지금은 익숙해졌다.

오늘은 급할 게 없다. 34km의 거리는 어제에 비하면 거의 반이다. 시내를 빠져나와 뽀삿을 상징하는 도자기 상징물을 지나니 한적한 도로가 이어졌다. 집도 거의 없고. 띄엄띄엄 있는 집들은 아침을 어떻게 준비하나 싶었는데 오토바이 야채상이 집집마다 다니면 아침을 팔고 있었다. 뭐든 저울에 달아 무게로 판다. 아침을 준비하는 게 참 소박하다. 한국에서는 냉장고에 잔뜩 재워놓고 먹는데..

오토바이 야채상

아침을 밥으로 배불리 먹었는데 길거리 간식이 나를 유혹한다. 이곳은 옥수수가 유명한지 길가에 옥수수를 쪄서 파는 노점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은 데도 하나 사서 먹으며 걸었다. 좀 배불른 게 배고픈 것보다는 낫다. 옥수수가 어찌나 찰진지 한 개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한 개만 먹었다

캄보디아 옥수수

아마도 캄보디아에 처음 온 도보 여행자라면 옥수수를 한 묶음 사서 배낭에 넣었을 것이다. 옥수수는 다섯 개 묶음으로 팔았다. 하지만 옥수수 5개는 무게가 꽤 나간다. 나는 캄보디아를 어느 정도 알기에 배낭 무게를 더 생각했다. 내가 걷는 5번 국도에서 이제 나는 마실 물과 먹는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캄보디아를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캄보디아 도로를 달리는 광경을 보면 소형 차량 지붕에 짐을 잔뜩 올려놓고 끈으로 매어 위태롭게 달리는 풍경이나 화물차에 짐을 가득 실은 그 위에 앉아가는 사 등등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을 많이 본다. 오토바이는 더하다. 어린아이를 뒷 자석에 서너 명씩 태우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린아이를 태운 오토바이는 늘 위험천만하게 보인다. 더 황당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환자가 링거 주사를 꽂은 채 한쪽 팔로 링거를 들고 오토바이 뒷 좌석에 타고 달리고었다. 서커스도 이런 서커스는 없을 듯하다. 환자가 심각한 상태가 아니니 그렇게 타고 가겠지만 쳐다보는 내가 더 맘 졸여진다. 캄보디아의 의술이나 병원 시설은 아주 열악하다. 대도시 큰 병원은 대부분 외국 원조로 지어졌다. 하지만 보건소는 시골 동네 구석구석 다 있다. 간단한 진료를 하는데 비용은 무료다. 그러다 보니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간단한 처방 정도 하는 것 같았다. 보건소에는 보통 간호사 대여섯명과 의사 두세 명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들른 보건소에서 간호사들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간호사의 월급은 300달러. 의사는 500달러. 이 월급이니 의사는 다른 병원에 근무하며 투잡을 하는 것 같았다. 보건소 안에는 환자 네댓 명과 간호사 명만이 있었다.

캄보디아 보건소

더위도 피할 겸 보건소 안에서 간호사와 얘기를 나누는데 31살이라는 그녀는 아이가 셋이었다. 캄보디아 시골은 아직도 20대 초반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 셋을 키우며 작은 마을 보건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그녀에게도 삶의 무게는 녹록지 않은지 대화 도중에 사는 게 힘들다는 표현을다. 그녀에게 꿈을 물었다. 의외로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 셋의 어머니가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나는 그녀가 주는 수박을 받아먹으며 그녀에게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건네고 보건소를 나왔다.

이번 도보 여행에서 결혼식 광경, 장례식 광경을 여러 번 봤다. 나는 처음으로 칠우제(우리나라는 삼우제)를 하는 마을을 만났다. 캄보디아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7일 뒤 동네 사람들을 모아 제를 지내는 풍습이 다. 우리나라의 49제는 캄보디아에서는 100일제다. 어찌 보면 죽음은 생활의 일부분이다. 칠우제에 모인 할머니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한쪽에선 나이 지긋한 스님이 오늘의 제를 주관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을 할머니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쭙리업쑤어"하고 내가 큰 소리로 인사하니 할머니들 모두가 합창하듯이 "쭙리업쑤어"하고 화답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다시 한번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들은 이에 질세라 더 큰 목소리를 냈다. 모두가 파안대소.

칠우제를 준비하는 동네 할머니들

할머니는 나의 어머니였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여기에 다 모여 있었다. 소매를 끌며 앉으라고 한다. 짓궂은 할머니 한분은 내 맨살 허벅지를 만지며 이 다리로 그 먼데를 어떻게 걷냐고 농을 걸었다. 나는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잠시 더위를 피한 후 "쭙리업리어" 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이 또 큰 소리로 합창하듯 화답하였다. 더위를 잊게 하는 따뜻한 맘을 안고 다시 걸었다.

12시가 넘어 점심을 먹기 위해 가게에 들어갔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 꾸이띠우(쌀국수)를 시켰다. 꾸이띠우는 캄보디아의 대표 음식인데 지역마다 조금씩 맛이 틀렸다. 이곳의 꾸이띠우는 마치 국물이 육개장 같이 걸쭉했다. 나는 깔끔한 국물을 좋하해서 건더기만 건져 먹었다. 서너 시에 도착할 목적지까지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배가 불렀다. 이미 20km 넘게 걸었기에 10여 km만 가면 된다. 이틀간 그렇게 많이 걷다가 오늘 여유 넘치게 걸으니 자꾸 곁눈질로 어디 들를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걸죽한 국물의 꾸이띠우

캄보디아에는 "리어할"이라는 작은 고동이 있다. 강에서 채취하여 살짝 데친 후 고추가루양념에 묻혀 파는데 시장 어딜 가나 있다. 땡볕에 그대로 놓고 파는데 우리는 그걸 먹으면 바로 배탈이 날 것 같아 먹을 엄두가 안나는 그런 종류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잘도 먹는다. 강이나 저수지 같은 곳이 오염이 많이 되어 있고 수질도 좋지 않은데 어디서 잡은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리어할은 대개 아침 일찍 내오고 오전에 팔아 치운다. 아마도 야외에 오래 있으면 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학생들도 좋아하는지 학교 앞에서 남학생들이 쪽쪽 빨며 맛을 보고 있었다.

리어할

학교 안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배구를 하고 있었다. 오늘 여유가 많다 보니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학생들과 한참 놀았다. 배구는 캄보디아에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가 있다. 동네 맨땅에 목재를 세우고 얼기설기 줄을 단 배구코트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등학생과 함께 하는 한가한 오후

길가 가게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한국인 임을 알고 한국말로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근로자로 한국 가서 돈 벌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짧은 시간의 만남 속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욕심인지 서투른 한국어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내가 성의껏 대답하며 기회가 돼서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 오라고 말하면 그들은 너무나 기쁜 얼굴로 연신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한국에 근로자로 가고 싶어 혼자 공부한다는 이 남자는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게 보였다.

한국에 근로자로 가기 위해 한국어 공부하는 젊은 아빠

목적지 끄라커에 도착하니 세시 반, 이른 시간에 도착하니 괜히 소도시를 기웃기웃한다. 태국으로 일하러 떠난다는 차량에 사람이 가득하여 말을 붙여 보았다. 더위에 잠시 쉬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새것을 먹어보라고 주기에 괜찮다고 하며 아주머니가 먹던 아이스크림 다른 쪽을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쳐다보던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꼈는지 와~ 하면서 어찌나 기쁘게 환호성을 지르는지 나도 놀랬다. 아주머니는 외국인인 나를 생각해서 새 것을 준 것인데 먹던걸 먹으니 너무 좋았던 것이었다.

태국으로 일하러 가는 노동자

교감한다는 것은 간단하다.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캄보디아를 내 이웃이라 생각하며 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을 내 친구, 내 부모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나를 기꺼이 형제로 받아준다. 그래서 나는 캄보디아를 걷는 것은 위험하다는 누군가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5일 차까지 아주 즐겁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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