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동서 도보횡단, 하루 58km 걷다

9일간의 캄보디아 동서 횡단 중 가장 많이 걸은 하루

by 김쫑

4일 차, 가장 힘든 하루가 될 거라고 예상했기에 그만큼 맘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 어젯밤 8시 쯤에 억지로 참을 청했다. 충분히 자고 아침 4시에 일어났다. 오늘 저녁 6시 반 전에 목적지인 뽀삿주 주도인 뽀삿시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50km 지나면 현격히 걷는 속도가 떨어질 거로 예상되기에 평소 출발보다 1시간 반을 당겼다. 아침은 어저녁에 사 온 밥으로 방에서 간단히 먹었다.

사위가 깜깜하니 걸음걸이가 조심스럽다. 갓길을 손전등을 비추며 걸었다. 캄보디아 아침을 여는 것은 개들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걷는 나를 보고 어찌나 짖어대며 쫒아 오는지 그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무시하고 모른 체 걷는 것이다. 개들은 한참을 짓어대며 쫒아오다가 자기 구역을 벗어낫다 싶으면 다시 돌아갔다. 캄보디아는 개를 놔 기르고 크기도 크다.

새벽을 여는 또 다른 사람들, 길거리 가게 주인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

내가 묵었던 작은 도시는 "몽류쎄이", 여기는 바탐방주에 속하는 작은 도시다. 우리나라 금융회사가 이러한 지역까지 진출한 것을 보니 "우리은행"도 대단해 보인다. 소매금융을 취급하겠지만 5번 국도를 따라 크고 작은 도시에 많은 지점이 있는 거로 봐서는 우리은행의 캄보디아 진출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우리은행 캄보디아 소매금융점포

캄보디아 사람들도 커피를 꽤나 즐겨한다. 아침 5시 이른 시간에 불빛이 비치는 가게들이 보이는데 이 가게들은 아침 식사를 팔기 전에 커피를 판다. 노인들이 주 고객으로 커피에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중국식 튀김(차크와이)을 같이 곁들인다. 커피는 커피가루를 넣고 냄비에 끓여 걸렀다. 다 해서 가격은 400원. 맛은 둘째치고 캄보디아 어른들이 여유로운 아침을 만나는 공간이다.

아침을 여유롭게 맞는 어른들
캄보디아의 차크와이와 아침 커피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밖은 아직도 깜깜하다. 시계를 보니 5시 반. 먼 거리에 대한 부담도 있고 커피가 내 입에는 많이 썼기에 남은 커피를 두고 일어났다. 오전에 최대한 빨리 걸어야 오후가 부담 없고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오늘은 주변 경관을 찍고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두 번째 순위다. 한참을 걸으니 동이 트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어둠이 가시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니 걷는 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침 태양은 한낮의 더위를 예고하는 것이지만 희망을 말하기도 한다. 9일간 매일 아침 나는 걷기 시작하며 만나는 아침 태양을 보며 9일간의 여정은 물론 일년 후 한국 돌아가서의 삶, 그리고 인생에 대해 스스로와 얘기하곤 했다.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

오늘 같은 장거리 도보에서는 먹는 곳이 보이면 무조건 먹어야 한다. 배가 안 고프더라도 자주 먹어야 계속 걸을 수 있다. 어디 먹을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었다. 한적한 시골 국도라 딱히 먹을 곳이 보이질 않았다. 연기가 나길래 가까이 가봤더니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숯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도자기를 굽는 것처럼 숯을 만들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어디 갔는지 노인들만이 일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경계심이 없다.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친절히 답해준다. 할아버지의 이는 거의 다 빠져 없다. 웃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프놈펜까지 걸어간다는 말에 노인 부부는 못 믿는 표정이었다. 자꾸만 뭘 타고 가라고 권했다.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숯 만드는 가마

8시가 돼가는데 먹을 곳을 못 찾았다. 전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 조바심없이 걸었다. 스니커즈 초콜릿을 꺼내 먹었다. 스니커즈는 오늘을 위해 준비했다. 이런 길가는 몇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이라 음식을 파는 곳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심코 지나가려는데 집 앞마당에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침에만 동네 장사하는 간이음식점이었다. 꾸이띠우(쌀국수)를 팔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고 나는 빈자리에 끼어 앉아 넉살 좋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주변은 온통 논이다. 여기는 전부 아줌마, 아이들 뿐이다. 나는 캄보디아 남자들이 여자를 돕는 모습을 좀처럼 본 적이 없다. 아저씨는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사원(절)에 기도하러 갔단다. 농사철 되면 남자들이 논에 나가 일 많이 한다는데 여기선 여자들도 논에서 똑 같이 일하는 거 같았다. 남편 원망 없이 인심 좋게 웃는 주인아주머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침을 국물 있는 쌀국수로 먹으니 속도 편했다.

동네 간이음식점

없이 뻗은 이 길을 좌우로 삶의 모습들이 펼쳐져 있다. 작은 도시를 벗어나면 다시 시골 모습으로 돌아간다. 몇 km를 가도 좌우에 집 한 채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논만 보인다. 그러다가 띄엄띄엄 집들이 몇 채 모여있고. 이런 곳에도 생수나 음료수를 파는 허름한 가게는 꼭 있어서 갈증을 해소하는데 문제는 없다. 이런 가게 안을 들여다보면 대부 조잡한 물건들이다. 싸구려 과자류도 태국이나 중국에서 온 것이 많다. 나라의 발전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수입해서 다 해결되는 듯 하지만 자국에서 만들어 내는 상품이 없으면 갈수록 수입량이 늘어나 외국에 의존도가 커진다. 그러다 보면 자국의 발전은 요원해진다.보디아는 태국의 가장 좋은 소비시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음식도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과 퓨전 성격을 띤 것도 많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태국식 파스타를 선전하는 시식 차량이 보인다. 태국 국경 포이펫에서 부터 프놈펜까지 두대의 선전 차량(오토바이 개조 차량)으로 보이는 동네마다 들러 선전한다는데 10일 정도의 일정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공짜로 시식하니 즐거운 듯 모여들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치열한 판매 전쟁을 느낄 수 있었다. 태국 브랜드이기에 이렇게 마케팅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의 미래가 안 보여 씁쓸했다.

태국 파스타를 선전하기 위한 시식 차량(오토바이 개조차)

요즘 캄보디아의 가뭄은 심각하다. 건기인 11월부터 4월까지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하여 온 땅이 메말라 쩍쩍 갈라졌다. 돈레삽 호수는 건기에는 우기 면적의 1/3로 줄어든다. 캄보디아가 2모작 3모작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 캄보디아는 1모작이다.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벼를 심고 수확시기도 비슷하다. 걸으며 보는 논들은 가뭄으로 황량했다. 온 들판이 황토 먼지로 풀풀 날렸다. 이러한 가뭄은 전기 공급에 영향을 주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요즘은 정전이 잦다. 관공서에서 가뭄으로 전기 공급에 어려움이 있으니 단전을 미리 예고하기도다. 이러한 가뭄은 이상기후 현상이지만 돈레삽 호수의 물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메콩강과도 연관이 깊다. 원래 돈레삽 호수는 메콩강이 범람하여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로 내려오며 프놈펜 왕궁 앞의 교차지점에서 돈레삽으로 역류하여 흘러 우기에는 돈레삽이 3배로 불어나며 메콩강의 수위 조절 기능을 한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중국이 자국 메콩강 상류에 7개의 댐을 건설하면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량이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돈레삽도 수량에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다. 가뭄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수질의 악화로 질병을 유발하고 전기 공급 등에 차질을 빚어 캄보디아 국내 사정을 여러모로 어렵게 만든다. 캄보디아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외부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아 이렇게 된다. 요즘 지구촌은 하나다. 힘이 없는 나라는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캄보디아의 가뭄은 아마도 중국의 메콩강 댐과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발생하는 이상 기후 등이 원인일 수 있다. 무지한 캄보디아 농민들은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캄보디아의 심각한 가뭄

사방이 타들어 가는 모습에 한낮에 내려 쪼이는 태양에 내 몸도 타들어갔다. 보이는 주변 환경이 그렇다 보니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물을 너무 많이 마시기에 나는 가끔 물 대신 코코넛을 먹었다. 물보다는 영양분이 많으니 먹고 나면 왠지 기운이 솟는다. 코코넛 껍데기를 깔로 쳐내서 가볍게 만든 후 얼음통에 넣고 파는데 맛이 좀 찝찌름하여 평소에 잘 안 지만 이렇게 걸을 때 차가운 코코넛은 갈증을 풀기 다. 보통 한 개의 량이 500L는 넘어 한번에 다 먹기는 벅차다. 그렇다고 들고 걸으면서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코코넛을 먹을 때는 다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다.

나는 이미 30km를 넘게 걸었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그래도 아직 멀었다. 점심 먹을 곳을 찾지 못한 나는 코코넛 두 개를 다 마시며 한참을 쉬었다. 배가 출렁거려서 바로 걸을 수도 없다. 많이 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정신없이 걸었던 나는 잠시 모든 걸 잊고 코코넛과 함께 30분 정도 쉬었다.

코코넛과 휴식

대개 35km 정도를 걸으면 이제 얼마 안 남았네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걷는다. 하지만 오늘은 매번 새롭게 다짐하며 걸어야 했다. 아직도 많이 남았다. 나의 두 다리는 이미 벌겋게 익어서 출발하며 무릎까지 덮고 있는 타이즈 허벅지에 붕대를 감았다. 붕대를 고정시키기 위해 일회용 밴드를 붙였는데 지금보니 밴드가 붙은 맨살에 밴드 비닐이 녹아 화상을 입었다. 엄청난 쓰라림. 나는 캄보디아의 더위를 실감했다. 체력이나 모든 걸 준비했지만 한낮의 캄보디아 더위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강했다. 비상약을 두루 챙겼기에 마데카솔을 바르고 탄력붕대로 다시 단단히 감았다. 쓰라림이 더하니 걷는데 무척 신경이 쓰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직도 갈길은 먼데...

벌겋게 익은 허벅지

그래도 걸어야 했다. 작은 시골마을 시장에서 늦은 점심으로 억지로 밥을 물에 말아 배를 채웠다. 먹고 난 자리에서 쉬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가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며 과일을 깎아줬다. 땀에 전 내 모습에 건너편 샤워장에서 목욕을 하라고 손으로 가리키는데 나는 캄보디아 전통 야외 목조샤워장을 처음 봤다. 물론 돈을 받는 곳이다. 캄보디아는 물이 귀하니 그에 맞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다.

힘들면 주변을 감상하는 여유가 없어진다. 그저 앞만 응시하며 걸었다. 마치 멍 때리고 걷는 것 같이. 이때가 진정으로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찍고 뭘 적는 것도 귀찮아진다. 오로지 걷는 것에 충실해진다. 나는 지금 서서히 이 경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캄보디아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사원이 있다. 사원의 규모는 사람이 사는 동네, 도시의 규모와 비례한다. 캄보디아의 사원은 주민들과 함께 한다. 그들은 사원에 가서 나라와 가족의 안녕을 빈다. 그리고 돈이 많은 집안은 사원 안에 탑을 사서(시주) 그곳에 조상 유골을 모신다. 걸으며 보는 사원은 나에게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사원 앞을 지나면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곤 했다. 나의 가족과 딸들을 위해. 그러면 독일에 있는 작은 딸 한솔이는 나에게 외친다 "아빠 힘내요!" 덩달아 큰 딸도 아빠에게 힘내라고 응원하고. 그 옆에서 아내는 미소 짓고. 가족은 나에게 힘이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두 딸, 아내와 함께 걷고 있다.

두 딸, 아내와 함께 걷는 길, 길
캄보디아 사원

얼마나 걸었을까? 남은 거리가 멀다 보니 일부러 시계를 보지 않았다. 나는 오기가 발동하여 뛰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고 허벅지 화상이 쓰라려 자꾸 신경 쓰이기에 잊고자 뛰었다. 오후 3시를 넘겨 태양이 작열하는 끝없이 펼쳐진 도로가를 배낭을 멘 한 남자가 뛰고 있다. 그는 틀림없이 미쳤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외국인 여행객 부부가 내 옆을 지나가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우쭐하여 땡큐 하며 계속 달렸다. 3km 정도를 그렇게 달렸다. 땀이 비 오듯 했지만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평소 달리며 느꼈던 쾌감을 다시 느꼈다. 3km밖에 안되는데 무척 거리를 당겨놓은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걷는 사람이 되어 새로운 기분으로 빠르게 걸었다. 40km를 넘기면서는 10km만 더 빨리 가보자며 더 빠르게 걸었다.

빠르게 걸으면서는 자꾸 아스팔트 차도 안쪽으로 걷게 된다. 아스팔트 갓길은 흙길이고 울퉁불퉁해서 길이 안 좋기 때문이다. 사실 캄보디아의 교통질서는 엉망이다. 오토바이, 경운기 등이 승용차와 함께 한 길로 다니고 1차선밖에 안되니 어쩔 수 없다. 차량 지붕에 짐을 얻히거나 그위에 올라타거나, 정원을 초과해서 타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이게 정상은 아니다. 이번에 걸으며 교통 단속을 하는 광경을 여러 번 봤다. 벌금을 매기는 것 같았다. 태국에서 일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데 승합차에 사람이 빼곡했다. 경찰이 세워 모두 내리라고 하기에 내가 사람을 세어보니 36명이 타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국경을 넘어 일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안쓰럽게 보였다.

36명이 탄 승합차

내리는 승객을 보니 어린아도 있다. 집을 떠나 태국에서 일할 때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데리고 간다고 한다. 아이들은 공사장 한쪽의 가건물에서 같이 숙식한다고 했다. 그렇게 일해도 한 달에 700달러 정도. 캄보디아보다는 많아서 태국으로 가긴 하지만 결코 많지 않은 돈이다. 고단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이기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캄보디아의 서글픈 모습은 학생들을 보면 희망으로 바뀐다. 대부분의 학교가 국도변에 있어 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1차선 도로가를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다니는 학생들이 위험해 보였다. 하교하는 학생들은 캄보디아의 미래인데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하길 기원했다.

하교하는 학생들

오늘 나는 뽀삿주의 뽀삿시에서 숙박할 계획인데 사전 조사할 때 40km 지나서 작은 마을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없었다. 그래서 58km 걷는 것이다.

뽀삿은 도자기로 유명하다. 뽀삿시를 얼마 안 남겨두고 도자기 파는 가게들이 보였다. 생활용 도자기라 그런지 소박하다. 여기는 48km 지점이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예정보다 늦게 7시는 넘어야 도착할 거 같았다. 6시 넘으면 어두워진다. 가로등도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걷기에 위험하다. 그렇다고 어찌할 방법은 없다. 그저 빨리 걷는 수밖에. 지금 도자기를 보며 여유 부릴 상황이 아니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자기로 유명한 뽀삿의 가게

내가 사는 집 주변도 그렇고 캄보디아의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큰 도시가 가까워 오자 국도변에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자연을 보다가 쓰레기를 보면 내 맘도 더러워지는 느낌이다. 비닐 종류가 많아서 썩지도 않는다. 일부는 태운 흔적도 있고. 당장 먹고살기 힘들기에 쓰레기 문제는전이다. 프놈펜 대도시의 뒷골목이나 개울가에도 쓰레기가 천지다. 이대로 간다면 캄보디아는 쓰레기에 묻힐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 나라가 쓰레기 천지인데 이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전국이 쓰레기 천지인 캄보디아

50km 지나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남은 8km가 무척 멀게 느껴졌다. 지루함은 체력 고갈에 버금가게 걷기에 방해가 된다. 이제부터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뭔 생각을 하며 걸어야 한다. 하지만 머릿속은 빨리 걸어 도착지에 도착하여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지금의 신체 상태가 빨리 걷는다고 빨리 걸을 수 있는 그런 상태는 전혀 아니다. 이런 때는 노래를 부르며 걷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노래에 딸들의 이름을 넣어 부르며 걸었다. 가족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딸들과 같이 걷는 것처럼 대화하면서도 걸었다. 남들이 들으면 완전히 미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의 마지막 어려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딸들과 계속 대화했다.

"아빠 힘들지?"

"괜찮어 걸을 만 해. 아빠 딸들하고 걸으니까 기분좋네!"

"다 왔어 아빠. 파이팅 !!"

"오케이 우리 같이 파이팅! "

아무리 딸들과 함께 걷는다지만 다리 피로까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다리의 피로가 절정에 달했다. 허벅지 안쪽이 뻐근하고 저렸다. 이런 상태는 다리가 꼭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다. 다리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쉴 수는 없다. 걸으며 풀리길 바래야 한다. 다행히 나는 이러한 신체 상태를 많이 경험했기에 두렵지는 않다. 평소에 꾸준한 운동과 장거리에 단련된 체력이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신체는 의외로 강하다. 나는 나를 믿고 계속 걸었다.

석양 노을이 보이는 저 앞에서 오토바이에 짐을 잔뜩 실은 아저씨가 보인다. 오토바이 개조 차량에 이것저것 잔뜩 싣고 동네를 다니는 아저씨인데 그는 이게 삶이었다. 이런 오토바이는 속도를 낼 수도 없어 도로를 아주 천천히 달린다. 내가 그에게 인사를 하자 그가 잠시 오토바이를 멈추고 나를 맞았다. 그가 말하는 것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캄보디아어로 서로 얘기했지만 그도 나의 말이 그럴 테고) 우리는 충분히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오토바이 뒷석 작은 평상 의자에서 먹고 잔다고 했다. 그 안을 들여다 보고 나는 나의 호사가 부끄러웠다. 내가 이 정도에서 힘들다고 하는 것은 그의 삶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삶의 터전 오토바이 가게

54km 지점에 이르니 사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6시 30분. 지금의 속도로 걷는다면 나는 7시 반에 숙소에 도착할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골 국도 밤길 이제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야다. 도착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안전이 더 문제인 어두운 밤길이다. 차들이 휙휙 지나가는 어두운 길에 땅바닥과 앞을 번갈아 보며 걸어야 하기에 빨리 걸을 수 없었다. 느림보 걸음걸이로 이렇게 4km를 걸어 7시 반에 숙소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와 배낭을 침대에 집어 던졌다. 정신없이 걷느라 잊었던 화상 자국이 붕대에 딱 붙어 떼내는데 비명이 절로 나온다. 아프거나 말거나 나는 샤워기로 온몸을 적시며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58km의 , 안도감. 이번 도보여행에서 가장 힘든 이틀을 걸은 나는 오늘 밤은 맘껏 쉬겠노라고 다짐하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샤워기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굿바이 바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