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바탐방을 떠나 장거리 도보의 시작
이번 도보 여행에서 오늘내일이 가장 많이 걷는 구간이다. 나는 이틀간 47km, 58km를 걸어야 한다. 잠자리 문제 때문이다. 하루에 58km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건 아니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40km까지는 그다지 힘들지 않다. 그리고 50km까지는 마지막 10km다 생각하며 걸으면 된다. 하지만 50km 넘어서는 다리가 아픈 것도 그렇고 지루함에 더 녹초가 된다. 이번 도보 여행에서는 두 번 50km 넘는 구간이 있다.
오늘 47km 보다는 내일을 위해 일찍 출발했다. 아침 5시에 숙소를 나왔는데 어제 저녁에 확인했던 식당에서 밥이 아직 없다고 했다. 난감하다. 인근 빵집이 문을 열었기에 퍽퍽한 빵을 억지로 씹어 삼켰다. 더위에 장거리 도보에서 빈속으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당장 배가 고프지 않더라고 속을 채워놔야 한다.
바탐방은 상커강이 시내 중심가를 흐른다. 상커강 다리를 건너는데 초승달이 아름답다.
바탐방 시내를 빠져나가려면 3km는 더 가야 한다. 어둠이 걷히며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로터리에 바탐방을 상징하는 지팡이(탐방)를 든 상징물이 보였다. 몸체가 왜 검은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욱 이채롭게 느껴졌다.
각 지역의 초입에 있는 상징물은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신성시되는지 동상 앞에서 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도 잠시 그들 곁에서 안전한 도보 여행을 빌었다. 조금 걸으니 바탐방 대학교가 보이고 나는 서서히 바탐방 시내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바탕방 대학교는 캄보디아 3개의 국립대학 중 하나로 한국에서 교육 지원을 하고 있다)
바탐방을 완전히 빠져나오면 아침을 제때 먹기가 곤란할 수 있기에 나는 시내 마지막 지역의 식당이 몰려있는 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미 여기까지 5km 걸었다. 캄보디아 식당은 대부분이 집과 밖을 이어 얼기설기 천장을 만든 공간이다. 그래도 밥과 얼음물, 생수, 콜라가 있으니 나에겐 안식처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밥 먹으며 보는 아침의 길거리는 분주했다. 바탐방 시내로 출근하는 오토바이, 차량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제부터는 진짜 걷는 것이다. 나는 빠르게 걸으며 오늘의 목적지를 향했다. 배도 부르고 아침 바람까지 산들산들 불었다. 시내를 완전히 빠져나오니 다시 시골, 논의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보는 광경은 때론 나를 50여 년 전의 기억으로 필름을 돌려놓았다. 도로를 달리는 것은 차량만이 아니다. 경운기, 오토바이, 개조한 여러 형태의 운송 수단들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1차선 도로에서 그들이 천천히 달리면 차들은 그냥 추월해서 간다. 느리면 느린 대로 가는 게 캄보디아다. 느리게 가는 경운기는 차량에 아랑곳없이 자기만의 길을 간다. 경운기에 숯을 가득 싣고 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집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숯불구이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경운기에 몸을 싣고 이곳저곳 다니고 있었다. 아들은 학교에 안 다닌다고 했다. 캄보디아는 아직도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부모 일을 돕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당장은 지식이 아니라 돈이 더 필요하다. 그걸 뭐라 할 수는 없다.
손재주가 좋은 아저씨는 뭐든 고칠 수 있는지 만물상 도구들로 가득하다. 가게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린 아저씨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씽긋 웃는다. 어찌나 해맑은 웃음인지 덥썩 안아주고 싶었다.
작은 마을 길거리에는 온갖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그중에서 옷을 파는 곳도 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가 가게에 걸린 옷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보기엔 그저 그런 옷이지만 누군가 잘 입고 맵시를 뽐낸다면 이 옷의 생명도 다시 태어나겠지...
우리의 눈에는 이해가 안 되고 지저분해 보이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일상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한다. 캄보디아는 캄보디아의 삶을 사는 것이지 한국과 같은 삶을 살 필요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나는 어느덧 캄보디아를 그들의 시각으로 보며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번 도보 여행에서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 만나서 그들이 하는 말은 "왜 걷느냐"는 말이었다 (내가 국토종횡단 할 때 들었던 질문과 똑같다). 한낮의 더위가 기승 부리면 나는 더위를 잊으려고 일부러 빨리 걸었다. 34도를 웃도는 더위에 잡생각이 많으면 걷는 속도도 더디다. 그래서 잡념이 나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려 할 때 나는 1,2km는 뛰곤 했다. 뛰고 나면 잡념은 멀리 사라지고 없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걷는 게 아닌 뛰는 나를 보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헬멧을 벗으며 말을 거는데 예쁘장한 자매였다. 이 땡볕에 걷는 내가 하도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어서 섰다는데 나도 왜 걷는지 딱히 답을 말해 줄 수 없었다. 왜 걷냐고 물으면 "나도 이유를 잘 몰라요" 하는 대답을 해 준다. 그러면 그들은 대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난 그저 미소로 답하며 또 길을 걸었다.
오늘은 일요일. 작은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대형 스피커에서 노래가 울려 퍼졌다. 결혼식. 캄보디아의 결혼식은 야외 천막에서 이뤄지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더 흥이 나는지 멀리서도 들릴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 나는 오늘 47km를 걸으며 대여섯 군데의 결혼식 모습을 봤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때문에 먼 데서부터 알 수 있었다. 캄보디아 결혼식은 남자가 비용을 다 부담하고 축의금 또한 여자가 다 가져간다. 캄보디아도 허례허식이 심해 요즘 결혼식은 돈도 많이 든다. 돈 없는 젊은이는 결혼할 수가 없다. 결혼식 축하연은 대개 2~3일 지속된다.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드니 축의금도 엄청 부담된다. 친척은 100달러, 가까운 친구는 50달러, 그냥 참가해도 30달로는 내야 한다. 하긴 야외 피로연장에 음식이 대단해서 1인당 20달러 정도가 된다(캄보디아의 한 달 월급은 200~300달러 정도다). 이렇게 변한 게 10년도 안된다고 한다. 이젠 결혼식이 하나의 품앗이가 되었다.
사진 찍기 위해 결혼식장을 기웃거리다 보면 식사를 하라고 손짓을 한다. 하지만 나의 차림이 결혼식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기에 나는 정중히 거절한다. 생수를 건네주면 그건 받았다.
12시를 넘기며 나는 밥 먹을 곳을 찾아야 했다. 허름한 가게는 물과 음료수는 많으나 배를 채울 만한 것은 없다. 이곳 길거리 가게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오토바이용 기름을 팔고 잡화를 판다. 주인은 장사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해먹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갖고.
12시 전후해서 밥을 먹지 않고 서너 시까지 걷게 되면 나중에 초주검이 된다. 그래서 배가 안고프다고 참고 계속 걷다가는 늦은 오후에 서서히 탈진하게 되고 그때 먹을 곳을 못 찾으면 정말 큰일 난다. 그래서 나는 정해진 시간에 입맛이 없더라도 꼭 밥을 먹어야 했다. 1시가 조금 넘어 작은 밥집을 발견했다. 반찬은 상관없다. 쉬지 않고 7시간 정도 걸으면 입맛이 없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나는 이런 때 밥에 물을 말아먹는다. 나는 물을 말아 밥알을 단숨에 집어넣어 속을 채웠다. 이렇게 밥을 먹으면 그게 몇 시간을 든든하게 해 준다.
늦은 점심을 먹고 20여분 정도 쉬다가 나는 다시 한낮의 더위로 나갔다. 어차피 가야 할 길 더 쉰다고 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쉬면 다시 걷기 더 힘들다. 이번 도보 여행에서 나는 거의 쉬지 않고 끊임없이 걸었다. 정 쉬고 싶을 땐 천천히 걷는 방법으로 걸었다.
캄보디아 전통 가옥은 필로티 구조로 1층이 주방, 휴식 공간이다. 이러한 구조는 뱀이나 쥐 등 위해 동물로부터 접근을 방지하고 1층에 그늘에 있어 시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새로 짓는 집들은 필로티 구조를 없애고 현대식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집은 아마도 에어컨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캄보디아의 생활이나 주거 환경도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캄보디아 작은 도시나 시골마을에서의 삶은 단순하다. 농사일 외에 특별히 일자리가 없으니 남자들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캄보디아는 여자들이 더 많이 일을 한다. 동네 어귀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큰 쇠구슬을 굴리며 게임을 하는데 앙꼰이라는 전통놀이다. 웃고 있는 얼굴 한편에 나른함은 캄보디아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역시 한 나라의 경제, 한 가정의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고용, 일자리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고.
40km 걸었다. 아침 5시부터 걸어서 어느덧 오후 4시. 약간의 휴식을 빼고는 계속 걸었다. 이제 서서히 지쳐가며 나의 두 다리도 쳐진다. 7km만 걸으면 된다 하며 마지막 힘을 다해 걸었다. 이때 나는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저 앞 길가 나무 그늘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가는 나에게 헬멧을 벋고 영어로 인사를 했다. 손바닥에 쪽지에 쓴 영어를 서툴게 읽으며 말하는데 앳된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20대 초반의 이 여성은 근처 동네에 사는 데 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다가 물과 먹을 것을 주기 위해 기다렸던 것이다. 그녀는 한국어를 오래전에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낭 뒤에 써진 꼬레라는 캄보디아 글씨를 보고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았다며 생수 두 개, 박카스 하나, 빵 두 개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로 당황하며 받기를 주저하였다. 시골 살림에 이것도 적지 않은 돈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녀의 간곡한 청으로 나는 봉투를 받았다. 사진을 찍으려니 수줍어 얼굴을 피했다. 대신 저 멀리 가는 오토바이를 찍었다. 목적지를 앞두고 이런 선물을 받으니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지친 상태에서 선물로 받은 봉투 무게 또한 무겁게 느껴졌다. 배낭에 넣기도 그래서 나는 걸으며 억지로 생수 하나와 박카스를 마셨다. 그리고 빵 두 개와 생수 하나는 가다가 만난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녀에게 좀 미안했지만 지금은 배낭에 무게가 더해진다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길을 걸으며 한글이 쓰여 있는 차량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캄보디아는 승용차나 화물차의 대부분이 중고차다. 승용차는 일제고 승합차나 화물차는 한국에서 들여온다. 한글이 그대로 쓰여 있는 게 외제차라는 인식에서 그대로 둔다고 한다. 걷다가 이런 차량을 만나면 여기가 지금 한국인가 하는 즐거운 착각에 빠진다. 국력이란 게 그만큼 자부심을 준다. 걸으며 만난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한국에 가서 돈 벌기를 원했고 몇몇 사람들은 친척 중 한두 명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꿈이었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캄보디아인은 4만 명이 넘는다. 캄보디아는 어느덧 우리와 많이 가까이 있다.
일찍 출발하니 오후 5시 반, 예정대로 일찍 도착했다. 47km를 마쳤다. 오늘 즐거운 기억, 추억을 많이 담고 걸었다. 이젠 내일 58km를 위해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나는 내일 아침 4시에 일어날 예정이다. 그래서 밤 8시도 안된 시간 억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