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로 보는 극심한 가뭄

가뭄의 열기를 안고 걷는 6일 차

by 김쫑

뽀삿주 뽀삿시를 떠나 깜퐁츠낭주 깜퐁츠낭시까지 가는 길은 캄보디아의 내륙 중앙으로 큰 도시가 없다. 그래서 나는 100km의 이 길을 3일간 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가 크라꺼와 폰레이라는 소도시(읍단위 규모)에 있기 때문이다. 어제 크라커에서 묵었고 오늘은 폰레이라는 또 다른 소도시를 향해 걷는다. 는 길에는 집도 별로 없고 좌우 눈에 보이는 것은 광활한 논이다. 올해 캄보디아의 가뭄은 더 심한 듯하다. 나는 걸으며 온 국토가 메말라 가는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이러한 풍경은 가뜩이나 더운 날씨를 더욱 덥게 느끼게 만든다. 요즘 한낮의 온도는 35도를 웃돈다. 자외선도 강해 마치 사막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걷는다고 하니 캄보디아 친구가 말했다. 이렇게 걷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그만큼 아무도 도전해보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나는 출발 전 한국에서 걸을 때보다 더 많은 준비를 했다. 한낮에 10km, 20km를 달리며 더위에 익숙해지게 했고 오랜 시간 햇빛에 노출되기에 옷이나 모자, 배낭도 그에 맞게 준비했다. 물이나 식사를 위해 거리별 보급에 문제가 없는지 인터넷을 뒤지면 사전에 조사도 충분히 했다. 준비가 완벽하면 두려움이 덜하다.

6일 차 크라꺼를 떠나는 걸음

오늘은 32km. 짧은 거리다 보니 느긋하게 출발했다. 크라꺼를 빠져나가기 전 아침을 먹기로 했다. 두리번 거리며 걷고 있는데 놈반쪽 국물 항아리와 국수 야채를 어깨에 짊어지고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놈반쪽은 캄보디아의 대표적 전통음식이다. 꾸이띠우(쌀국수)와 비슷하지만 국물에 독특한 향이 있어 한국 사람의 입맛에 썩 맛있지는 않다. 약간 걸죽한 국물에 삶은 국수와 다양한 야채를 가득 넣고 자작하게 해서 먹는데 영양분도 풍부하여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주 좋아한다. 국물에 따라 놈반쪽썸러크마에, 놈반쪽썸러까리 두 종류가 있다. 아주머니가 파는 것은 놈반쪽썸러까리, 카레국물같이 만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격은 3,000리엘(0.75달러). 한쪽에서 쭈그리고 앉아 먹는데 아주머니가 나의 모습을 보고 신기한 듯 계속 쳐다본다. 대개 처음 보면 할 말이 없으니 나는 어른들에게 자녀가 몇 명이냐, 결혼했냐 이런 말을 한다. 아주머니는 7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아침에는 이렇게 동네를 돌아 다니며 장사하고 오후에는 들에 나가 일한다고 했다. 고생의 끝이 안보이는 것 같지만 웃는 모습 한켠에는 희망이 있었다. 투박한 그 손이 우리네 어머니의 손이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캄보디아 전통음식 놈반쪽

이런 소도시에는 대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하나씩 있다. 먼 곳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기에 학생수도 많은 편이다. 캄보디아는 수업이 아침 7시 반에 시작한다. 그리고 10시 반에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 수업은 1시에 시작한다. 모든 학교는 매일 7시에 국기 게양식을 한다(대학교는 대개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

나는 등교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기 위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6시 50분, 교문을 들어오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대도시에는 오토바이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곳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전거로 등교한다. 그만큼 소득격차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교문 앞에서는 자전거를 내려서 끌고 다. 그리고 7시에 국기 게양식이 진행되는 동안은 운동장에 모이지 못한 학생들은 가깝던 멀던 그 자리에 서서 부동자세로 같이 국가를 불렀다. 국기가 게양되고 국가가 끝나면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강제된 애국심인지는 모르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등굣길 중학생

이곳 중학교의 학생수는 590명, 나는 교장선생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작별 인사를 한 후 본격적인 오늘의 걷기를 시작했다. 교문까지 쫒아나오는 몇몇 학생들과는 사진을 같이 찍었다.

크라꺼를 빠져나오니 길게 뻗은 도로만이 보인다. 이 구간은 캄보디아 시골 그대로의 모습이라 가게가 많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 하루 일정이 짧은 거리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걸어도 걸어도 생수를 파는 조그만 가게조차도 없었다. 나는 긴장해야 했다. 10km 정도는 버틸 물과 먹을거리를 생각해야 했다. 캄보디아 한낮 더위를 너무 가볍게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도로 좌우에 보이는 광경은 메마른 논, 황량한 들판뿐이다. 가뭄의 현장이 길게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바싹 타들어가는 캄보디아

도로 옆의 들판이나 논은 도로와 턱이 없어 우기에는 이 도로가 또 잠겨서 말썽이다. 비가 많이 와도 문제, 비가 안 와도 문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캄보디아에 우기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가 일 년간 고르게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작은 마을이나 학교는 시설이 보잘것없다. 캄보디아 대도시와 비교하면 딴 나라 세상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 지하수를 끌어 담아 논 수돗가가 있는데 가뭄으로 인해 물에 이끼가 가득했다.

시골 초등학교의 수도

물소들은 맨바닥을 드러낸 강줄기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걷는 길의 좌측으로 10여 km 들어가면 돈레샵 호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강가나 호수가에는 가끔 물소가 보였다. 비가 오려면 아직도 한 달 반이나 남았는데.. 5월 우기까지 이 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랐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

캄보디아 가뭄이 건기와 우기의 명확한 구분으로 발생하는 것은 맞지만 앞으로 캄보디아의 물부족이 더 심각할 거라는 것은 중국 때문이다. 중국에서 발원한 메콩강은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흐른다. 우기 때 넘쳐나는 메콩강 물은 프놈펜 왕궁 앞에서 돈레삽과 만나 돈레삽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때 돈레삽 호수는 4배로 불어나며 메콩강의 수위 조절 역할을 한다. 하지만 중국이 자국 내 메콩강 발원 지역에 크고 작은 7개 댐(미아오웨이,궁궈차오,샤오완,만완,다차오산,눠자두,징홍댐)을 건설하면서 아래로 흘러 내리는 메콩강의 수량이 대폭 줄어 들었다. 수량의 부족은 캄보디아 젓줄인 돈레삽 호수의 환경을 바꾸고 있고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시엠립 강에서 들어오는 오염까지 겹쳐 수자원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건기 가뭄 현상과 더해 온 국토를 메마르게 만든다. 외부 환경으로 인한 원인을 모르는 시골 촌부들은 그저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나는 메마른 5번 국도를 6일째 걷고 있는 중이다. 캄보디아의 모든 차량은 이길로 다닌다. 그러다 보니 태국 국경 포이펫에서 프놈펜을 왔다 갔다 하는 버스는 도로를 걷고 있는 나를 여러 번 보게 된다. 어떤 기사는 아는 체 하며 손을 흔들기도 한다. 12시를 넘기니 아스팔트 지열로 대지는 더욱 후끈했다. 어차피 걸어야 하는 거니 수도자처럼 걸었다. 그때 승객을 가득 태운 대형 버스가 내 옆에 섰다. 기사는 이 길을 하루에 한두 번씩 왔다 갔다 했을 테니 나를 여러 번 봐서 아는 듯했다. 문을 열고 타라고 한다. 내가 프놈펜까지 걸어가는 중이라고 했는데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감사의 말을 전하며 버스를 보냈다. 왠지 모를 뿌듯함. 그 기사는 이후에도 오고 가며 나를 보면 버스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이번 도보 여행에서 캄보디아의 착한 마음을 많이 만났다.

5번 국도는 지금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낯익은 한글 간판이 보였다. 뽀삿에서 캄뽕츠낭의 일부 구간을 한신공영에서 깔고 있었다. 반가운 맘에 현장사무소로 향했다. 입구에서 물어보니 한국인이 6명 있다고 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공사는 일본의 원조로 하는 거라고 했다. 4년 뒤 완공되고. 한적한 시골마을 현장사무서에서 힘들게 일하지만 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코리아 한국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 진출한 한신공영

오늘 묵을 곳은 폰레이라는 소도시다. 사전 조사한 것에서 유일하게 숙소를 정하지 못한 곳이라서 걸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혹시 케스트하우스가 없다면 어디서 자지? 약국이나 병원, 학교 교무실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누군가의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질까? 그것도 안되면 노천 평상에서 잘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골집 마당의 해먹이나 길거리 가게 옆의 평상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나는 여러 상황을 준비해야 했다. 게스트하우스가 없다면 민박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어렵다는 걸 조금 뒤 알게 되었다. 폰레이 목적지를 5km 앞두고 나는 오늘의 잠자리에 온통 신경을 쓰며 걷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도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3시면 도착할 것 같았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저 앞의 길가에 SUV 차량 한 대가 계속 서 있는 것이었다. 내가 다가가니 차량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나와 얘기하고 싶어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내가 걸어서 프놈펜까지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마침 나는 오늘 잠자리 문제가 머릿속에 있던 터라 그 남자에게 폰레이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 처갓집에 일이 있어 들렀던 길이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나의 사정을 얘기하며 오늘 잘 곳이 마땅치 않으면 모르는 사람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캄보디아에서는 그게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잠자리 도움을 못줘서 미안하다며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잠자리 걱정을 하며 다시 걸었다. 저 앞에 탁발을 하러 다니는 스님 두 분과 꼬마 예비스님이 보인다. 그들은 맨발이다. 불교에서 머리는 가장 신선한 곳이고 발은 가장 더러운 곳이다. 그래서 더러운 발의 나쁜 기운이 잘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맨발로 걷는다. 뒤에서 보는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평안한지 나도 맘편히 걷자며 걸었다. 맘을 비우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맨발로 탁발을 하러 다니는 캄보디아 스님

나는 폰레이에 도착하여 다행히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찾았다. 시설이 좋고 나쁘고는 차치하고 8일간의 숙박지 중 가장 고민스러웠던 숙박 문제가 해결되다 보니 게스트하우스가 5성급 호텔 같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폰레이 거리 모습

오늘은 32km라고 점심을 거른 채 걸었다. 폰레이는 소도시라 식당도 허름했다.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기에 허겁지겁 먹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어제 못한 빨래를 했다. 옷이나 양말이 땀에 절어 매일 빨아야 한다. 저녁에 빨아 방안에 널어 놓으면 빨래가 다 마르지 않고 특히 양말은 두꺼워 다른 양말로 신어야 했다. 오늘은 게스트하우스 마당 햇볕에 빨래를 널었다.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나를 초대하겠다던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의 처갓집에 가서 처음으로 캄보디아 전통 가옥의 구조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낯선 사람에게 방을 내줄 게 없다는 게 캄보디아 가옥 구조 때문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캄보디아 전통 가옥은 나뉘어진 방 자체가 없다. 2층은 큰 방 하나고(큰 마루바닥) 그곳에서 각자 편한 대로 아무 데다 자는 것이었다. 1층 필로티 구조에는 넓은 마루가 있고(어떤 집은 평상) 이곳에서도 잠을 자며 거실 겸 주방으로 사용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인심이 사나운 게 아니라 오히려 낯선 사람이 불편할까 봐 같이 자는 걸 꺼려하는 것이었다.

전통 가옥 1층
전통 가옥 2층 방

전통 가옥 2층이 궁금했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자기들의 사는 모습인 2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우연히 만난 소중한 사람 덕에 전통 가옥을 자세히 보게 되었고 1층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캄보디아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게스트하우스가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이런 집 1층 평상 마루에서 잠을 잤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봤다. 숙소를 걱정했던 폰레이에서의 하룻밤은 이렇게 편안하게 흘러갔다.

전통 가옥 1층, 거실 겸 침실 겸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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