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이틀간 여유 있게 걸었다. 오늘도 34km. 나는 오늘 깜퐁츠낭주 주도인 깜퐁츠낭 시에 일찍 도착하여 남은 이틀을 준비할 계획이다. 3, 4일 차보다힘들진 않겠지만 마지막 이틀은 97km를 걸어야 한다. 깜퐁츠낭 시에 도착하면 프놈펜에 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오늘 도보를 마치며 나의 컨디션은 마지막을 위해 최상의 준비 상태가 될 것이다. 4일 차 입은 화상도 많이 나았다. 나는 화상 입은 그날 저녁 압박 붕대를 잘라 밴드형으로 바느질하여 허벅지에 두 개씩 감고 걸었는데 흘러내림도 없는 최상의 밴드였다. 덕분에 화상을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오늘은 40km 이상의 일정처럼 6시 되기 전 출발했다. 빠르게 걷는다면 두세 시면 도착하는 거리다. 그래서 먹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다. 캄보디아 아침으로 쌀국수를 많이 먹지만 젊은 사람들은 "놈빵바떼"도 많이 먹는다. 바케트 빵의 가운데를 갈라서 그 안에 다양한 야채와 돼지고기(어떤 곳은 캔참치 같은 생선을 넣기도 함)를 넣은 일종의 햄버거 같은 빵이다. 오늘 이른 도착을 예상하기에 아침을 밥이 아닌 놈빵바떼로 했다(가격은 3천 리엘, 한국돈 750원). 바게트 길이가 35센티 정도 되기에 반은 먹고 반은 나중에 먹으려고 배낭에 넣었다.
놈빵바떼
이번에 걸으면서 많은 결혼식 광경을 봤다. 폰레이 이곳 결혼식장은 오늘부터 시작인지 이른 아침에 신랑 신부, 가족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나는 사진 찍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결혼식장 내부를 찍었다. 캄보디아 전통의상이 시엠립 민속촌에서 봤던 것과 거의 같았다. 아이들이 입은 옷은 무척 귀엽고 아름다웠다.
캄보디아 결혼식
결혼식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결혼을 하면서 두 사람은 희망을 얘기하고 꿈을 얘기한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서는 그 두 사람은 아이를 위해 헌신한다. 힘들지만 그게 행복이라고 느낀다. 결혼식 광경을 보니나의 그때가 생각났다. 어느덧 30년이 가까워온다. 아내의 내조와 두 딸이 잘 자라줘서 행복하다.
나는 신랑 신부 가족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고 본격적으로 오늘의 걷기를 시작했다. 걷기 시작하며 나의 결혼식 광경을 떠 올려 보는데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히려 두 딸의 모습이 보인다. 결혼해서는 아내와 살지만 애들 낳고는 애들과 산다고 한다. 나는 아내가 내게 너무 잘해줘서 그런지 늘 두 딸 생각이 먼저다. 아내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한다든가 한류에 빠졌다든가 하는 말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걸으며 만난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막연히 알고 있는 외국, 돈 벌러 가는 나라 이 정도다. 거기에 한류를 붙이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할 수 있다. 그 나라를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다분히 주관적이라 언론 매체는 때론 객관성을 잃기도 한다. 돈 벌기 위해 가는 나라 한국. 한국에는 캄보디아인들이 4만여 명 거주하고 있다. 그중에 4천여 명은 결혼으로 간 여자고. 한국에 근로자로 가서 일하는 캄보디아인들은 꿈을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가족을 생각하는 캄보디아인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70년대 중동에 가서 일했던 것과 같다. 한국에 간 캄보디아 근로자들은 가족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가족을 위해 매달 꼬박꼬박 돈을 부치고 몇 년간 모은 돈으로 고향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현대식 새집을 짓고 남는 돈으로 가게를 연다고 한다. 여기 월급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에 근로자로 가려면 EPS한국어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런 작은 도시에서 한국어학원을 운영하며 돈을 버는 게 쉬지 않을 텐데 한국어학원이 있다. 학생이 60여 명, 선생은 한 명. 그도 한국에서 근로자로 2년간 일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모은 돈으로 이 학원을 세웠다. 기숙사 포함 학원비는 일년에 100달러. 내가 머리셈을 해봤지만 그다지 돈벌이가 되는 사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즐겁게 이 사업을 하고 있었다.
폰레이 작은 도시에 있는 한국어학원
학원 운영자이며 선생인 그는 열정이 대단했다. 그는 한국에서 좋은 사장을 만났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한국어를 가르치며 발전된 한국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교실 벽면 한쪽에는 그가 가르쳐 근로자로 한국에 보낸 학생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 친구야 말로 한국 홍보대사였다.
나는 어제 저녁에 캄보디아 집에 초대를 받았었다. 그 자리에는 친척 몇 사람도 같이 있었다. 폰레이를 빠져나와 8km 정도 걸어가던 즈음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옆에 섰다. 어제저녁식사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척 중 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꼬마가 나를 기억하는지 쌩긋 웃는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온 가족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아주 위험해 보였다. 그들에겐 이게 일상이지만 나는 천천히 가라고 몇 번을 신신당부했다.
위험해 보이는 오토바이 자가용
다시 한낮의 더위속으로 끝없이 이어진 길로 걸어 들어간다. 그 길에 크메르 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캄보디아 국기가 길을 따라 이어졌다.
크메르 제국의 부활
펄럭이는 국기 사이에 "소"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이색적이다. 걷다보면 국도에서 심심찮게 소들을 보기도 한다.
"소" 표지판
지루하게 이어진 아스팔트 길이다. 가게도 별로 없다. 나는 배낭의 물을 점검했다. 충분하진 않지만 힘들지 않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진 길의 상태를 보며 우측 길로 걷다가, 좌측 길로 걷다가, 아스팔트 위로 걷다가 큰 차가 빵빵거리면 길가 흙길로 걸었다. 대개 이런 걸음걸이는 여유로우니 하는 행동이다. 그렇게 20여 km 지날 때 좌측 길가에 한국 글씨가 선명한 교문이 보였다. 학교는 300여 미터 안쪽에 있었다. 주변에는 집이나 마을, 허름한 가게조차도 없다. 이런 곳에 학교를 세운 것이 궁금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신축 교사. "지구촌공생회"라는 불교 NGO단체가 현 초등학교 옆에 중학교를 지어준 것이었다. 신축 교사 표지석에 설명이 쓰여 있었다. 도보여행을 마치고 나는 지구촌공생회를 검색해보고 중학교를 세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곳 주변에는 중학교가 없다. 중학교를 가려면 8km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옆에 중학교를 세운 것이었다. 올 2월에 완공되었다. 중학교는 9월에 신입생을 받기에 지금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지구촌공생회(불교NGO단체)에서 지어 기증한 중학교 신축 교사
놈빵바떼 남은 거로 간식을 먹고 입이 궁금하던 차에 학교 앞에서 할머니가 수박을 팔고 있어 잠시 천막 그늘 할머니 곁에 앉았다. 5일 차 보건소 들렀을 때 간호사가 주어 맛있게 먹었던 수박이 생각나기도 했다. 뜨거운 수박은 괜찮다. 하지만 할머니가 자르려고 든 칼을 보니 차마 그 칼로 수박을 자르게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지저분하고 도마는 파리가 득실거렸다. 나는 칼끝으로 살짝 칼집만 낸 후에 평상에 내려쳤다. 수박 물이 없어 반만 먹었다. 캄보디아 위생에 무덤덤해진 나지만 눈으로 보는 비위생은 차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수박과 칼
또 걷는다. 한적한 도로가에 인적도 드문데 식당 하나가 보였다. 너무나 한적하여 왜 이런 곳에 식당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맛을 의심하게 된다. 캄보디아 서민들이 먹는 식당은 대개 큰 통에 음식을 담아 식당 앞에 놓는다. 그럼 손님들이 뚜껑을 열어 음식을 확인하며 먹고 싶은 걸 얘기한다. 대여섯 개의 음식통이 있다. 그중에는 국도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점심을 먹을까 아니면 참고 두세 시간 더 걸어 목적지인 깜퐁츠낭 시내에서 맛있는 것 먹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캄보디아 길거리 식당
3일간 짧은 거리를 걸으면서는 먹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좀 배고파도 목적지에 닿아서 먹자는 생각이 있어서다. 그만큼 아주 많이 배고프지는 않다는 증거기도 하다.
파란 습지가 보인다. 메마른 땅만 계속 걷다가 물을 보니 더위가 좀 가시는 듯하다. 물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파란 습지와 강물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의 맘을 탁 트이게 했다.
깜퐁츠낭 습지
강가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도로 맞은편에 허름한 가게가 보였다. 물을 사려고 건너려는데 가게 옆의 평상에 앉은 일가족이 나에게 손짓을 하며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은 터라 평상에 같이 앉았다. 가족은 바탐방의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약간 배고프기도 해서 염치없이 밥 몇 수저와 오리알 두 개를 먹었다. 그리고 고마움의 표시로 물을 사서 건넸다. 삼대가 같이 앉아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삼대의 도시락 만찬
프놈펜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목적지인 왕궁까지는99km. 나는 그동안 계획대로 잘 걸었고 이제 목적지를 얼마 안 남겨놨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정도 거리는 나의 경험으로는 이미 도착한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안전을 다짐하며 캄보디아의 날씨, 환경을 끝까지 우습게 보지 말자고 다짐했다.
성큼 앞으로 다가 온 프놈펜
깜퐁츠낭은 도자기의 도시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돈레삽 호수를 끼고 있다. 시내가 가까워질수록 도자기, 목재 조각품, 동물 모양의 자기 등을 파는 큰 가게들이 보였다. 사원의 규모도 크고. 역시 도시 규모와 사원의 규모는 정비례한다.
깜퐁츠낭 목재 조각, 도자기 판매점
시내로 들어서니 도시는 깔끔했다. 가끔 프놈펜 오가며 보던 시가지의 모습을 두발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역시 내가 걷는 이유다. 학교 시설도 좋고 아이들의 모습 또한 지나며 봤던 시골 학교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가난한 아이들도 꿈은 이 아이들과 같으리라.
깜퐁츠낭의 어린이들
시내 중앙에는 프놈펜에 있는 독립기념탑과 같은 모양, 크기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
깜퐁츠낭 시내의 독립기념탑
중앙 공원 앞에는 주청사가 있다. 관청 건물이나 시가지가 깨끗이 정돈되어 나는 어슬렁거리며 시가지를 천천히 걸었다. 오후 세시 반. 할 일 없이 시가지 이곳저곳을 걸으면 구경하다가 숙박지인 호텔로 향했다. 오늘의 숙박지는 저렴한 호텔. 깜퐁츠낭시는 꽤 큰 도시기에 호텔도 많은 편이다. 내일은 54km. 나는 숙박지를 프놈펜과 가까운 곳으로 하기 위해 깜퐁츠낭 시내를 관통하여 끝나는 지점의 호텔로 정했다. 저 앞에 호텔이 보이고 그 맞은 편에는 프놈펜, 시엠립에서봤던 "커피투데이"라는 커피 체인점이 보였다. 나는 호텔이 아닌 커피숍으로 향했다. 이번 도보 여행에서 에어컨이 있는 커피숍은 처음이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그윽한 커피 향내가 내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