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ទៅ ភ្នំពេញ

성큼 다가 온 프놈펜, 8일 차

by 김쫑

이틀 남았다. 오늘은 54km. 50km 넘는 거리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일찍 출발했다. 4시 반에 일어나 방에서 어제저녁에 사둔 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지난 3일간은 거리가 짧았기에 출발 후 맨 처음 보이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하지만 오늘 같이 먼 거리를 걸을 때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출발해야 한다. 5시에 호텔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아침 바람이 선들선들 불었다. 해가 뜨기 전에 최대한 빨리 걸어보자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3km 정도 걸어 시내를 빠져나오자 시내 가로등도 없고 사위가 캄캄했다. 손전등을 비추며 계속 빠르게 걸었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오고 가는 차량이 적어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어두운 길을 한참 걸어가는데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오더니 내 앞에 멈춰 섰다. 깜짝 놀라 멈칫하는데 헬멧을 벗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앳된 학생이었다. 프놈펜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 페이스북에서 나의 소식을 접하고 어젯밤에 깜퐁츠낭 시내에서 잤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나를 만나기 위해 내가 걷는 이 길을 따라왔던 것이었다 (나는 페이스북에 가끔씩 나의 소식을 올리며 걷는 루트를 공개했다). 오늘은 3월 8일 여성의. 캄보디아는 휴일이다. 학교도 쉰다. 학생이 배낭에서 2리터 물을 꺼내며 나에게 주었다. 고맙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2리터 물은 빠르게 걸어야 하는 지금 배낭에 넣기에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다 (나의 배낭은 평균 4kg의 무게). 학생의 성의를 거절하는 나도 몹시 당황스러웠다. 다시 받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배낭에 물이 많다고 핑계 대고 다시 한번 친절히 설명했다. 받아도 되지만 다 먹지 못하고 무거워 중간에 버리면 이 학생의 성의를 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학생도 이해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캄캄한 도로에서 얘기를 나눴다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걸으세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

"나는 걸으며 많은 걸 생각해요. 걸으며 생각하면 생각의 깊이가 있어요"

"......."

"학생도 꿈이 있죠?"

"네"

"그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안전하게 걸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학생은 뭔 답을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정말 나도 내가 걷는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른다. 학생과의 대화는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왜 걷는 지를 알고 싶어 나를 찾아온 고등학생

나는 어두운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봤다. 나는 지금 왜 걷는가? 이번 도보 여행은 캄보디아로 파견이 결정되었을 때 이미 맘속에 두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캄보디아라는 나라에서 동서 횡단으로 하루에 40km 이상을 걷기로 결정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을 했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나 걱정스럽고 위험한 말들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캄보디아 생활도 익숙해지고 캄보디아어로 말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실행하기로 했고 지금은 잘 걷고 있는 중이다. 해외에서 혼자서 낯선 길을 걸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체력? 돈? 아니다. 그 나라 언어다. 나는 캄보디아 언어 소통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기에 큰 두려움이 없이 결정했다.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주민들에게 얘기해서 방법을 찾으면기 때문이다.

내 평생의 꿈은 서울에서 파리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한국을 걸었고 그다음은 중국이다. 중국의 동쪽 베이징에서 히말라야 티베트를 지나 파키스탄 국경까지가 두 번째 목표다. 이 길은 5,600km. 나는 6달의 기간을 예상하고 있다. 그다음이 그곳에서 출발하여 이란, 터키를 거쳐 파리까지 가는 것. 서울에서 파리까지는 17,000km 정도. 두번쩨, 번째 도전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늘 맘속에 있다.

나는 중국 5,600km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 중국어를 잘하기 때문이다. 13년 전에 나는 이미 산동성 칭다오에서 쯔보까지 270km를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현지인들과 웃고 즐기면 아주 즐거운 도보 여행을 했다.

캄보디아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도보 여행을 가능케 했다. 지금 나는 걷다가 가게가 없거나 먹을 곳이 마땅찮아도 큰 두려움이 없다.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고 안되면 현지인 가정에 그들이 먹는거로 식사를 부탁할 수도 있다. 이번 도보 여행에서 많은 현지인들이 나를 반겼다. 대화가 되먹을 것, 마실 것 등 거저 얻은 것도 많다. 외국의 시골은 영어가 안 통한다. 영어는 대도시용이다. 외국의 장거리 도보 여행에서는 현지 언어가 력보다도 우선하는 이유다.

상념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둠은 걷히고 아침이 열렸다. 캄보디아에서는 아이들도 일을 많이 한다. 부모를 거들며 아침을 여는 아이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줄에 매달린 고기가 이 집의 생계다.

부모를 도와 장사하는 아이들

캄보디아는 중고차 수입이 많은 나라다. 승용차도 거의 다 중고다. 거의 일본 차량이다. 버스나 승합차, 화물차는 한국에서 많이 수입한다. 도색하지 않고 한국 글자 그대로 탄다. 오히려 한국 수입차라는 것을 자랑하기에 좋다고 한다. 소방서 차량을 개조해서 화물차로 이용하는 것을 보니 캄보디아 사람들 손재주가 좋은 것 같다.

한국 소방차를 개조한 화물차

걸으며 보는 가뭄은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비가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바짝 마른 논은 풀 한 포기 없다. 내 맘까지 메마르는 것 같다.

극심한 가뭄

모든 걸 집이나 동네에서 해결해야 하는 캄보디아 시골은 없는 게 없다. 옷을 만든다던가 수선하는 집들도 차량 먼지를 뒤집어 쓰고 국도변 길가에 있다. 옷이라 함은 새로운 것, 깨끗한 것이 연상되는 데 가게의 모습을 보니 참 소박하다.

옷 수선 가게

무척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한 시간에 5.5km 정도로 걸은 것 같다. 10시인데 20km 넘게 걸었다. 이제 30여km 남았으니 한숨 돌려도 될 듯했다. 어제 걸은 거리만큼만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아침의 긴장감이 확 풀어진다. 참 우습다. 환경이 생각에 따라 바뀌니까. 출발할 때의 중압감은 사라졌다. 생각에 여유가 생기니 발걸음도 늘어지면 여유를 부린다. 가게가 몰려 있는 작은 동네에서 쉬고 가자며 가게 안의 해먹에 드러누웠다. 잠이 스스로 왔다.

여유

10분을 누워 잤다. 화들짝 일어나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지치지 않고 걷는다면 마지막 숙박지 캄퐁스페우 "우동시"에 5시 전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오늘 마지막 밤을 일찍 자려한다. 내일 마지막 날 43km를 아침 5시에 출발하여 프놈펜 왕궁에 오후 3시 전에 도착하려 하기 때문이다.

목표가 뚜렷하니 다시 빠르게 걸어야 했다. 이곳부터는 터번과 히잡을 쓴 사람들이 보인다. 히잡은 왠지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큰 회교 사원이 보인다. 불교 사원만 보다가 회교 사원을 보니 사원 자체가 예술이다. 건물의 색상이나 건축미가 불교 사원과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회교 사원은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져 큰 중앙 홀에서 예배를 본다.

이슬람 사원

캄보디아에서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5% 정도 차지한다. 무슬림의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 사는지 나는 이곳에서부터 우동을 거쳐 프놈펜 시가지로 들어가는 60km의 길에서 많은 회교 사원을 보았다. 한국 사람들은 무슬림에 대한 오해가 있다. 기독교의 영향이기도 하다. 오전 예배를 위해 들어오는 무슬림의 표정이 착한 이웃 아저씨 모습이다.

캄보디아 무슬림

프놈펜이 가까워 오자 공장도 많이 보였다. 대부분이 중국 회사다. 봉제공장, 피혁공장... 캄보디아에 고용을 창출하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월급이 150~200달러라니 누굴 위한 공장인지... 일자리 없는 캄보디아 현실에서는 한 달 150달러를 받고도 일해야 한다.

거대한 중국 공장

반면에 일본의 캄보디아 진출 역사는 오래됐고 지금은 금융, 소비 같은 분야에서 캄보디아 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승용차나 오토바이도 거의 일본 제품이다. 고급 우유나 분유 등 건강을 생각하는 식품 중에서도 일본 상품의 인기는 좋다. 나는 이번에 걸으면서 일본의 저력을 많이 보았다. 일본은 상품 시장으로서 캄보디아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무상 원조를 통해 캄보디아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캄보디아인들이 일본에 호의적인 이유가 있었다. 곳곳에 일본의 원조를 알리는 표지판을 보았다(한국 정부의 지원 표지판은 프놈펜 다 가서 하나 보았다). 도로 확충 및 수로 개선, 농업 종자 개발 등 캄보디아의 SOC 분야에서 원조를 많이 한다는 것이 더우 놀라웠다. 앙코르톰 등 앙코르 유적지의 상당 부분을 일본이 맡아 연구, 보수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캄보디아에 진출하는 중국과 일본의 비교되는 모습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무상원조 사업을 알리는 표지판

캄보디아는 외국의 원조에 힘입어 연평균 7%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캄보디아는 계속 앞으로 나갈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도시와 농촌의 차는 더 벌어지니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 건지 GO라고 쓴 공사 현장 팻말이 나에게 묻는 듯했다.

앞으로만 달리는 캄보디아

콜라를 먹고 싶어 가게에 들렀다. 꼬맹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더위에 지쳐 한번 먹어봤다(나는 지금까지 가게에서 파는 캄보디아 아이스크림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무척 맛있게 먹는데 내 입에는 안 맞았다. 한 개 500리엘이니 한국돈 130원이다. 그 가격에 맛을 논하는 내가 우습다. 나는 콜라를 사서 목을 축였다. 코카콜라. 2,000리엘 한국돈 500원. 여기서는 꽤나 비싼 가격이다. 현지인들도 많이 먹는다. 걷는 9일 동안 차가운 콜라는 내 더위를 식혀주는 좋은 친구였다.

아이스크림과 아이들

40km 넘게 걸었다. 이제 다 왔다는 느낌이다. 시간은 한시 반. 오늘은 무척이나 계속 빠르게 걸었다. 내일의 피날레를 생각하며 걸은 것도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나의 도전은 서서히 환희로 변하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보니 우동 시내는 멀지 않다. 이곳 시골장의 모습도 다른 곳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오후인데 돼지고기를 걸어 놓고 팔고 있는 것이 조금 달랐다. 캄보디아에서는 돼지를 그날 새벽에 잡아 오전에 다 팔아 치운다. 시장에 냉장고는 없다. 그래서 나는 고기는 되도록이면 아침 일찍 사서 냉동고에 너 놓는다. 야외에서 판다고 상한 고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네 눈에는 이런 시장 풍경은 고기가 위생적이지 않게 보여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다.

시장의 돼지고기 판매점

캄보디아는 후식의 종류가 많다. 아이스크림이나 커피가 아니다. 아마도 과일 천국이기 때문일 게다. "벙하엠"이라고 하는데 재료가 다양해서 십여 종도 넘는다. 달고 맛도 괜찮다. 다만 시장 한편에서 통에 놓고 파니 보기에는 그냥 그래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비싼 커피숍에 가면 예쁜 그릇에 담겨 꽤나 우아하게 나오고 맛도 좋다.

캄보디아 후식, 벙하엠

내가 걸어온 길은 좌측 안쪽으로는 돈레삽 호수를 끼고 있다. 캄뽕츠낭은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북동쪽은 돈레삽 호수와 맞닿아 있다. 이 길은 우동시(캄뽕스페우주의 주도)을 지나서 10여 킬로 가면 그때부터는 돈레삽 호수를 길 옆에서 보며 걷는다. 이렇게 걸으면 바로 이 길이 프놈펜 왕궁까지 이어지고 그 앞은 돈레삽과 메콩강이 만나는 지역이다.

2019년 3월 8일, 8일 차의 여정

강의 축제를 한다는 아치가 보이면서 우동 시내가 가까워졌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우동 시내 입구 돈레삽 강 축제를 알리는 아치

우동 시내에 들어선 시간은 오후 4시 반. 우동 시내는 의외로 컸다. 나는 인터넷으로 알아봤던 게스트하우스를 지나쳐 2km를 더 걸어 시내 끝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프놈펜에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깜퐁츠낭을 향해 걷는 7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