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의 마지막 날은 늘 흥분이 있다. 곧 맞이 할 피날레에 대한 흥분, 기쁨, 뿌듯함이다. 아침 4시에 일어났는데도 피곤함 없이 몸이 가볍다. 나의 맘은 이미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우동 시가지를 벗어나서 십여 키로를 걸으면 좌측에 돈레삽강을 끼고 걷는 길이다. 돈레삽과 프놈펜. 600여년을 번성했던 앙코르 제국은 14세기경 타이 아유타야족의 칩입을 받고 프놈펜 에서 가까운 이곳 우동으로 수도를 옮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레삽강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아침 일찍 방에서 어제저녁에 사두었던 바이차쌎쭈룩(돼지고기볶음밥)을 먹었다. 프놈펜이 가까워지면서 길거리 가게나 식당이 많아 먹을거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에 억지로다 먹지는 않았다. 43km의 거리는 아침 6시에 출발하면 네다섯 시면 도착하는 거리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일찍 출발하여 오후 3시쯤 도착, 완주의 기쁨을 일찍 누리려 한다.
5시에숙소를 나왔다. 50km 이상 걸을 때의 출발 시간이다. 캄캄한 우동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역시 아침을 여는 것은 개들이다. 여기저기 짓어대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개는 쫒아오기까지 한다. 개들에게는 반응하지 않는 게 최고의 대응이다. 무시하며 걸었다. 개 짖는 소리가 멀어진다. 우동 시내를 빠져 나와 1시 방향으로 완만하게 굽은 도로를 5~6km 걸으니 삼거리가 나오고 다시 직진 도로가 나왔다.
깜퐁스페우주 주도인 우동 시내 이른 아침
마지막 날이니 빨리 걷고 싶은 맘뿐이다. 해가 뜨기 전이라 날씨도 걷기에 좋아서 나는 계속 빠르게 걸었다. 돈레삽강은 좌측에 있을 거 같은데 걸어도 걸어도 강이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주위가 밝아지고 있었다. 연한 황톳빛 색깔의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예배 중인 이슬람 사원
나는 아침 예배로 북적대는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예배를 마친 무슬림들이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앉으라며 차와 먹을 것을 권했다. 나는 앉아 캄보디아 무슬림에 대해 물어보며 같이 얘기를 나눴다.
캄보디아 이슬람 사원 무슬림의 아침
어찌나 친절하게 대해주는지 앉아서 한참을 얘기했다. 그들은 캄보디아 내 무슬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한 노인은 사우디아라비아 성지순례에 다녀왔다며 핸드폰 안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이에 관계없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좋았다. 한쪽의 젊은 무슬림은 커피를 마시고 있어 왜 차를 안 마시냐고 했더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며 수줍어했다. 무슬림의 예배시간은 아침 5시, 오전 11시, 오후 3시, 저녁 6시, 저녁 7시 5번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걸으며 불교 사원에 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사원의 스님들은 일반인들과 같이 앉거나 얘기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스님은 일반인들과 같이 식사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스님에 대한 존엄이 대단하다. 지금 안에서 예배를 집전하는 성직자는 모르겠지만 이슬람 사원의 무슬림들은 격의 없이 반겨주고 친절했다. 나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도 없지만 이런 만남이 이슬람을 좋게 보게 될 것은 틀림없다.
사원을 빠져나와 조금 걸으니 4차선 큰 도로가 펼쳐졌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1차선 도로 갓길을 걸을 때는 늘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부턴 넉넉한 갓길 아스팔트 길이다. 이곳저곳 쳐다보며 걸어도 된다. 그만큼 도보 환경은 걷는 데 영향을 많이 준다. 도보 여행은 두다리로 걷는 게 아니라 맘으로, 느낌으로 걷는 것이다. 얼마를 걷다 보니 어마어마하게 크고 멋있는 이슬람 사원이 보였다. 이 지역에 얼마난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크고 화려한 이슬람 사원
좌측이 돈레삽강이기에 좌측 갓길로 계속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돈레삽 강을 건너 6번 국도(시엠립 방향)로 향하는 고가도로 틈 사이로 삐쭉 강물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교각 밑을 지나 좁은 길을 뛰어서 갔다. 50여 미터밖에 안되었다
살짝 보이는 돈레삽 강
돈레삽강에 닿은 나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돈레삽. 캄보디아의 젖줄이며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명수. 돈레삽 호수에서 흘러내린 이 물은 프놈펜 왕궁 앞에서 메콩강과 만나 거대한 바다를 이룬다(폭이 바다와 같이 넓기에 바다라고 표현했다)
아침 햇살의 돈레삽 강
돈레삽 강가로는 길이 없다. 5번 국도는 강에서 대개 백미터 바깥 쪽에 있다. 그 사이에 집이나 가게, 학교, 사원이 들어서 있어 강을 보면서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맘만 먹으면 골목을 지나 강가로 갈 수 있다.
한 초등학교는 학교 건물 뒤쪽으로 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도 보고 강의 모습도 볼 겸. 꼬맹이들이 어찌나 반갑게 달려드는지 개구쟁이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을 덥석 덥석 안아 주었다.
돈레삽 강을 끼고 잇는 초등학교의 학생들
돈레삽강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나오며 배웅을 한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교문에 서서 한참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이상한 차림의 사람(?)을 만난 것이 마냥 즐거웠던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줬다면 나는 큰 일을 한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손을 흔들며 아이들과 작별했다.
나를 배웅하는 아이들
캄보디아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를 도와 함께 일하는모습을 많이 본다.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소녀 두 명이 장사하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하니 수줍어서 고개를 돌린다. 사람을 촬영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나는 촬영하려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 같으면 찍지 않았다. 그게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동물이나 자연은 괜찮다. 길가에서 잠시 휴식하는 소를 보니 정겹다. 하지만 소도 무척이나 힘든 발걸음일텐데 우직한 모습의 소를 보면 배울게 참 많다.
소달구지 행상
프놈펜이 20km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걷는 곳에서부터는 제법 도시 냄새가 난다. 얼기설기 엉킨 전기줄이 도시의 번잡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프놈펜 외곽
캄보디아에서 프놈펜 시내를 제외하고는 시내버스가 없다 (캄보디아 시내버스도 일본의 원조로 운행되는 것이며 생긴 지 오래되진 않았다). 교통수단은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경운기 버스(?). 경운기 뒤를 나무판자를 대어 의자로 만들어서 시내 외곽을 다니는데 학생들 등하교나 일반인들 외출 시 길에서 서서 기다리다 손을 들면 서서 태운다.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대중교통의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다.
캄보디아 경운기 버스
캄보디아 여기저기 흐르는 강의 지류는 오염이 심각하다. 바닥은 오니로 쌓여 있고 물은 진한 회색빛이며 강가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다. 프놈펜 외곽 길가에서 한국 정부 지원 ODA 사업을 설명한 표지석을 보였다. 강의 지류에 보를 설치하여 자연을 재생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표지석 일부는 뜯겨 나갔고 보안의 물은 썩은 물과 쓰레기로 가득 찼다. ODA 사업은 완공 후 관리가 안되면 하나마나다. 캄보디아는 원조만 받지 관리가 안 되는 나라다. 이미 부패한 정부는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캄보디아의 부패지수는 전세계에서 꼴찌 수준이다. 해외 원조나 중국의 투자로 돈은 넘쳐 나는데 대다수 국민들은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수중보
프놈펜 외곽이라지만 도로가의 빽빽한 건물과 도로에 꽉 찬 차량의 매연이 한낮의 더위를 더 느끼게 한다. 사방이 막힌 이런 길을 걷을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보이는 광경이 사방이 막힌 답답함이 있어 눈도 매우 피곤하다. 30km 넘게 걸었으니 이제 두 시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12시 조금 넘긴 시간이다. 배도 고프기에 쉬면서 밥 먹을 곳을 찾았다. 시원한 곳은 커피숍 밖에 없다. 도시의 커피숍은 에어컨이 있고 간단한 음식도 만든다. 나는 9일 동안 걸으며 에어컨이 있는 커피숍에 딱 한번 들어갔었다(깜퐁츠낭시의 커피숍). 길거리 식당에는 에어컨 있는 곳은 없다. 냉장고도 없고 대부분이 아이스박스다. 시원하게 쉴 공간이 없으니 잠깐 그늘에 있다가 다시 걷게 된다. 한국과 같이 에어컨이 있는 커피숍이 곳곳에 있다면 아마도 쉬고 싶은 유혹에 걷는 계획도 차질이 있었을 것이다. 캄보디아의 이런 환경은 나를 쉬지 않게 걷게 만들었으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에어컨이 들어오는 커피숍에서 쉬다 보니 정말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이게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안락한 휴식이라 다행이다.
나는 더 앉아 있고 싶은 욕망을 접고 다시 출발했다. 지금 나의 컨디션으로 보면 세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다. 프놈펜을 알리는 표지판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정말 내 두발로 걸었다 9일간을. 나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프놈펜을 알리는 표지판
한낮의 더위는 이제 상관이 없다. 나는 곧 프놈펜 왕궁에 도착하여 나만의 세리머니를 할 것이다. 번잡한 길이다. 고가 밑으로 지나면 왕궁으로 가는 길이다. 약 3km.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음미하며 걸었다. 두리번두리번거린다. 마치 프놈펜 처음 오는 시골뜨기처럼. 하지만 나는 프놈펜 2개월 교육 기간에 이 길을 여러 번 뛰어서 왔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저 멀리 프놈펜 시가지의 고층 빌딩이 보였다.
저 멀기 보이는 프놈펜 시가지 건물
드디어 나는 돈레삽 강가를 걷는다. 아주 천천히 걸었다. 환희가 밀려왔다. 잠시 제 자리에 서서 돈레삽강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이놈아" 어디선가 딸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아빠 최고!"
드디어 마주한 돈레삽 강
나는 천천히 강가를 걸으며 왕궁으로 향했다. 오후 두 시를 조금 넘긴 한낮 강가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승자가 되어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맘껏 걸었다. 2km 걸으면 결승선이다. 돈레삽강도 점점 더 크게 벌어지며 메콩강을 맞으러 가고 있었다. 나도 희망을 맞으러 걸었다.
희망을 향해 걷는 마지막 발걸음
왕궁 앞 돈레삽강은 메콩강과 만나 거대한 바다를 만들었다. 왕궁은 그 바다를 품고 캄보디아의 꿈을 얘기하고 있었다.
돈레삽 강과 메콩강의 만남
캄보디아 왕궁 (2019. 3. 9 현재 외관 공사 중)
나는 9일 동안 왜 걸었나? 돈레삽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드넓은 강을 보며 물었다. 돈레삽강은 캄보디아의 생명이며 메콩강을 만나 큰 바다를 이루며 더 나은 캄보디아를 만들고 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캄보디아 창조의 근원이며 생명줄이다. 돈레삽의 거대한 물줄기는캄보디아에게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9일간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꿈은 도전해야 가치가 있고 그 도전은 성공, 실패와 관계없이 아름답다. 나는 벅찬 가슴과 끓어오르는 희열로 미동도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돈레삽강과 메콩강이 합류하는 삼각주의 강물이 밑에서부터 용솟음치며 솟아올랐다. 나는 다음의 도전을 기약하며 천천히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