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혐오, 그리고 폭발하는 계급 갈등 - 영화 <기생충>을 보고
※ 개인 사정으로 새롭게 쓴 글들은 있지만, 다듬고 손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침 뉴스에서 뉴욕타임즈에서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1위로 선정했다는 기사를 보고, 어설프지만 학기 중 과제로 제출했던 영화 <기생충>의 비평을 나누어 올려봅니다.
최근 대한민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깊은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이고 대표적인 요인으로 ‘계급 갈등’을 꼽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현대사회에 무슨 계급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인류 역사 속 계급의 분화는 끊임없이 형태만을 달리해 지속되어 왔다. 예컨대, 전통적 사회에서의 계급은 혈통이나 출신 배경, 세습된 직업 등 신분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었다면(예: 조선의 양반-상민-천민 구조), 현대사회에서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제시한 '문화자본'과 '경제자본' 같은 요소를 중심으로 계급이 구성된다. 즉, 오늘날의 계급은 재산 수준, 주거지, 소비 양식, 교육 수준, 언어 습관 등의 종합적 문화적 요소에 의해 나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 분석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계급 구분과 갈등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하고 참신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특히 높은 계급에서 낮은 계급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상징적 장면들로 예리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기생충> 속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계급 간 차별, 착취, 그리고 폭력의 원인과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핵심어 : 냄새, 선, 계급, 계단, 기생, 폭력
장면별 분석
1. 위치와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 구조 - ‘반지하’와 ‘지하실’, ‘계단’의 은유
영화 초반, 주인공 기택(송강호)의 집에서 아들 기우(최우식)와 딸 기정(박소담)이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이하게도 변기는 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반지하 구조상 역류 방지를 위한 조치지만, 이 가족의 생활 공간이 변기보다 낮다는 점은 상징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집은 반지하의 특성상 거리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며, 창밖으로는 취객의 노상방뇨 장면이 반복된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불안정한 환경이며, 가장 원초적인 배설 욕구의 공간보다 낮은 위치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미장센이다.
영화 중반, 문광(이정은)에 의해 드러나는 저택의 지하실은 또 하나의 상징적 공간이다. 부엌에 딸린 문을 지나 더 깊이 내려가야 하는 비밀 공간에는 문광의 남편 근세(박명훈)가 4년 넘게 숨어 살아왔다.
기택은 그를 보고 연민과 충격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어떻게... 이게 살면 또 살아지나? 이런 데서도?” 이에 근세는 “아니, 뭐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반지하까지 치면 더 많지”라고 담담히 응수한다.
충격적인 건 근세의 존재보다, 변기보다도 낮은 공간에 사는 기택이 그보다 더 ‘밑’에 있는 근세를 무의식적으로 구분하며 위계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같은 하층 계급에 속하면서도 기택은 본능적으로 근세를 타자화하고, 자신보다 낮은 존재를 설정하며 처지를 정당화한다. 이는 기택이 계급 구조 속 박 사장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그 시선을 타인에게 재생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택과 근세 모두 박 사장의 집에 ‘기생’하지만, 기택은 계급 내부에 또 다른 분할선을 긋는다.
또한 이 영화가 가진 특징 중 하나는 ‘계급 서사’에서 흔히 기대되는 ‘공동 행동’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를 계급 서사의 실패로 볼 수도 있지만, 기택이 차별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음을 통해 하층 계급 내부의 계급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 장면은 계급 혁명이나 연대가 심리적·구조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예이며, 영화는 단순한 계급 대항이 아닌, 현실의 계급 연대가 얼마나 와해되고 있는지를 체감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비슷한 맥락의 상징적 장면으로는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계단’을 들 수 있다. 박 사장의 저택에서 대문부터 거실까지 이어지는 계단은 신분 상승 욕망에 사로잡힌 기택 가족의 심리를 반영한다.
특히 비 오는 날, 박 사장의 귀가 소식을 듣고 몰래 빠져나온 기택 가족이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잠시 맛본 ‘상위 계급’의 환상이 무너지고 현실로 추락하는 하강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