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혐오, 그리고 폭발하는 계급 갈등 - 영화 <기생충>을 보고.
※ <기생충> 속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계급 간 차별, 착취, 그리고 폭력의 원인과 양상을 살펴보던 중, 지난번에 ‘반지하’와 ‘지하실’, ‘계단’의 은유를 살펴보았다.
2. 진정한 기생충은 과연 누구인가? - 기생과 공생의 줄다리기, 희생으로 이루어진 빛
기정과 기우의 계략으로 쫓겨난 문광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박 사장 가족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 집을 다시 찾아온다. 그녀는 두고 간 물건이 있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곧 지하실, 더 나아가 숨겨진 공간으로 향해 남편을 찾는다. 앞서 등장했던 지하 계단 장면과 연결되듯, 이곳은 단순한 비밀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계급의 단면을 보여주는 심연이다.
문광의 남편 근세는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박 사장 집 지하에서 숨어 살며, 말 그대로 ‘기생 아닌 기생’을 해왔다. 이는 생존을 위해 상위 계급에 의존해야만 하는 하위 계급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기택의 가족 역시 각기 다른 역할로 박 사장 가족에 기생하고 있는 상황. 결국 이들은 서로의 ‘기생’을 발견한 뒤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이 장면은 단순한 블랙 코미디적 요소를 넘어, 기생하여 살아남으려는 하위 계급 간의 처절한 투쟁을 그린다.
그러나 반대로, 박 사장 가족 역시 이들 ‘기생자’들에게 일정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이 살아가는 단독주택은 실제로 가지지 못한 자들에 의해 유지·관리되며, 정작 박 사장 부부는 집의 구조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기생충』은 계급 간 기생의 관계가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즉 상위 계급 또한 하위 계급에게 ‘기생’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역학을 드러내며, 계급 구조 속 상호의존성과 그 모순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생존을 짓밟으려 드는 모습은, 현실 사회에서 하위 계급이 연대하지 못하고 각자도생에 매몰된 현실을 반영한다. 하나로 뭉쳐 목소리를 내기보다, 당장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서로를 배척하는 아이러니가, 오히려 진짜 ‘기생’보다 더 절망적인 구조를 드러낸다.
지하에서 근세가, 박 사장의 걸음 소리에 맞춰 계단의 조명을 점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 또한 봉준호 감독의 재치 넘치면서도 신랄한 은유가 돋보인다. 계단을 올라오는 박 사장, 동익의 머리 위로 마치 센서등처럼 조명이 점등되는 장면은, 한편으로는 근세가 기생하는 생활이 몸에 배어-자신이 말하는 박 사장을 ‘리스펙트’하는 마음에서-‘밥값’이라도 하기 위해 숨어서 불을 켜고 있다는 것을 희화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의적으로 생존을 위해 상위계급에 기생하고 있는 하위계급의 숨은 노동과 희생을 상당히 냉소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심지어 근세는 나중에 머리로 스위치를 툭툭치며 불을 켜고 끈다. 상위 계급을 위한 아낌없는 희생인 것이다. 게다가 ‘조명을 밝힌다’라는 것은 결국은 상위 계급의 길을 밝히기 위한 하위 계급의 숨은 희생으로 까지 여겨질 수 있다.
3. 계급 상승을 향한 욕망과 집착 – 비울 수 없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욕망의 늪
영화 초반, 기우가 박 사장 가족에게 기생하게 되는 계기는 친구 민혁(박서준 분)의 방문에서 비롯된다. 민혁은 기우와 돈독한 사이지만, 그 배경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박 사장의 딸 다혜(정지소 분)의 과외를 맡고 있다가, 외국 유학을 앞두고 그 자리를 기우에게 넘긴다. 이때 민혁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기우를 좋게 봤다며 '수석'을 선물로 건넨다. 이 수석은 겉보기엔 행운과 번영을 상징하는 선물 같지만, 실상은 기우의 집안이나 삶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영화에서 이 수석은 기우의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기우네 가족이 사는 반지하의 좁고 눅눅한 공간엔 수석 하나 놓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기우와 기택은 신주단지 모시듯 수석을 아끼며 집 안에 둔다. 이것은 단지 수석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들이 소유할 수 없는 계급의 상징이자 허망한 희망을 붙잡으려는 열망의 표현이다. 수석은 그 자체로 하위 계급이 갈망하는 상류의 삶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이후 폭우로 인해 반지하가 침수되었을 때, 이미 물이 가슴께까지 찬 상황에서도 기우는 다른 물건보다 수석을 먼저 챙긴다. 특히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수석이 물에 '떠올라' 있는 것을 기우가 건져낸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돌은 물에 뜨지 않으며, '부석(浮石)'이라는 특수한 돌이 아닌 이상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이는 민혁의 선물이 실상은 ‘가짜 수석’이었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기우 가족에게 어울리지도 않고, 진정한 가치도 없는 수석은 결국 그들의 욕망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를 상징한다.
이때 기우는 수석을 품에 안고 나오는 장면에서
얘가 자꾸 나한테 달라붙는 거예요
얘가 자꾸 날 따라와요
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농담처럼 보이는 이 대사는, 그가 수석—즉,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을 결코 쉽게 놓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수석은 떠오르며 기우를 따라오고, 기우는 다시 그것을 품에 안는다. 이 짧은 대사는 ‘욕망이란 자신이 붙잡는 동시에 자신에게 들러붙는 것’임을 암시하며, 이들의 관계를 더 깊이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기우는 수석을 품에 안고 다닐 정도로 집착하게 되고, 결국 그 수석에 의해 큰 부상을 입는다. 이는 헛된 욕망과 집착이 낳는 비극적 결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계급 상승의 꿈이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역설적인 비극을 드러낸다.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