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가 남긴 고요한 질문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한 남자의 인생에 우리는 왜 주목하게 되는 걸까? 작가가 말하는 것은 그 남자의 ‘사랑법’이다. 그가 어떻게 아내를, 딸을, 친구와 부모를, 기혼의 몸으로 사랑에 빠진 여제자를, 그리고 영문학과 인생을 사랑하는 지 보여준다. '기억에도 남지 않는 한 남자'라는 설정은 결국 이 작품을 읽는 독자, 우리 모두와의 공통분모를 마련해 둔 것으로 보인다.
『스토너』는 한 남자의 일생이 서사의 중심축이다. 나는 감히 이 작품을 체호프의 명단편 「대주교」의 장편 에디션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주인공 스토너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영문학과 교수가 되고 결혼하고 딸을 낳고, 살다가 죽는다. 그의 일생이 어느 것 하나 별난 것 없다. 우리 주변의 여느 사람들의 일생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작품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크게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는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대학교를 간 것도 그의 아버지의 권유 또는 지시였다. 그는 자신이 머무는 농장 일을 도우면서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언제나 잠 잘 시간이 모자랐다. 2학년이 되어 교양수업에서 영문학 개론을 듣던 중, 그는 책상을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었다. 교수 슬론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영문학과로 전과를 했다. 학생들에게 깐깐하기로 유명한 슬론 교수는 대학생 스토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그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농부인 아버지의 일을 돕는 것 밖에 몰랐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하숙하는 집의 농장 일을 돕고, 공부하는 것 외엔 몰랐다. 대학원생이 되어서 그는 같은 박사과정에 있는 데이비드 매스터스, 고든 핀치 두 명과 친해졌다. 그는 이전까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기에 ‘자기들의 관계가 무엇인지 의아할 때가 많았다’. 매스터스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매스터스는 스토너의 인생에 스며든 헤밍웨이 같았다. 매스터스라는 인간의 탈을 쓴 헤밍웨이. 그는 스토너에게 ‘환자, 몽상가, 광인’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미쳤다고도 했다. 그는 헤밍웨이처럼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전사했다. 매스터스의 죽음을 접한 스토너는 난생 처음 충격을 받았다. 영문학과의 사랑에 빠진 것과는 다른 유형의 충격이었다.
매스터스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스토너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하던 죽음을 말이다. 매스터스의 죽음은 스토너의 마음속에 ‘씁쓸함’을 심어놓았다. 스토너는 ‘매스터스의 죽음도 또 다른 종류의 귀양살이, 그가 알던 것보다 더 기묘하고 영원한 귀양살이 같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교 직원들이 모이는 리셉션에서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을 보았다. 그는 곧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청혼했다. 곧이어 결혼했고, ‘한 달도 안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부모님의 죽음과 딸 그레이스를 출산하면서도 이디스의 병적인 신경증은 심해졌다. 그레이스에 대해 스토너는 무한한 애정을 느꼈지만, 이디스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스토너는 날이 갈수록 첫사랑, 영문학에 매달렸다.
마흔 셋의 스토너는 자신의 수업을 듣던 캐서린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졌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됐다. 오래 가진 못했다. 교수와 학생의 연애를 사람들은 좋게 봐주진 않았다. 융통성 없는 스토너의 성격도 한몫 했다. 스토너와 캐서린은 헤어졌다. 서로의 마음은 알았지만, 현실과 절연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매스터스가 던지고 간 ‘허망함’이 자신의 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딸 그레이스가 대학생이 되면서 임신을 했고, 진주만 폭격 닷새 후에 결혼했다. 그레이스의 남편은 결혼 두 달 뒤 군에 입대했고, 6개월도 되지 않아 전사했다. 그레이스는 아이를 낳았다. 스토너는 딸의 임신과 결혼, 남편과의 사별, 출산, 이 일련의 과정들을 마치 예상했다는 듯 그저 덤덤히 받아들였다. 이디스의 신경증은 그레이스가 자라는 내내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는 그레이스를 어떻게든 이디스로부터 구하려고 했었다. 이디스는 그럴 때마다 스토너를 압박해 왔다. 그레이스는 스토너가 투영된, 가장 아픈 손가락인 또 하나의 허무였다.
정년이 된 스토너는 연장 옵션을 이용하기 위해 학장 로맥스와 신경전을 벌이던 중, 암 진단을 받았다. 쇠약해진 스토너 앞에서 그레이스는 자책했다. 이디스는 그를 간호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아도 후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매스터스가 떠오르고, 캐서린이 스쳐갔다. 그는 자신에게 되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자신이 해 온 일들을 회상했다. 그러다가 점차 가늘어지는 생명의 끈을 느꼈다. 그리고 점점 힘이 빠지고 의식이 희미해져갔다. 쌓여있는 책들. 책장을 넘기며 마지막으로 느끼는 생의 감각. 그의 팔에 힘이 빠지면서 책은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이미 많은 분들에 의해서 『스토너』는 회자되고 리뷰되었지만, 짧게라도 나의 감상을 기록하고 싶어 이렇게 사족을 하나 더 달았다. 본문에서 따옴표로 표시된 부분은 『스토너』(에이치알코리아, 2020, 김승옥 옮김)의 원문을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