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증후군, 감독으로서 균형감각을 키워야 할 시기
인간미는 무슨, 더욱더 차갑게 대해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개성은 중요하다. 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성이다. 매력은 검증된 영역이고 개성은 검증되지 못한 영역이다.
나는 이번 영화에서 배우들의 개성을 보려 애썼다. 매력을 바라볼 이유가 없었다. 이곳은 '영화판의 언더그라운드'고 매력이 있다면 그들이 독립영화판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때문에 나는 개성을 봤다.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가 무엇일까 상상하며, 캐릭터를 뽑았다. 물론 그렇다고 캐릭터가 확연하게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연출의 능력이라는 것이 이 곳의 룰이다.
개성을 끌어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 어느 사이에 배우들에 대한 집착이 생기더라.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배우들이 어떻게든 내가 생각한 캐릭터가 되길 바랬다. 영화 속 캐릭터가 되지 못하면 나는 이번 영화를 찍을 이유가 없어진다.
정말 나는 이 느낌이 역겨웠다. 배우에게 집착하는 내가 싫었다. 배우는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약간의 오차가 있는 것 같다. 배우는 만들어지고 닦여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집착이란 단어가 주는 역겨움은 달리 해소할 길이 없다. 거장이란 타이틀이라면 집착이 '케어'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배우 입장에선 더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위치는 거장의 위치가 아니다. 보푸라기 정도랄까. 이게 현실이다.
최근 2주 동안 배우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넣어줘야 한다며 연락 횟수가 점점 늘어났었다. 나 스스로 역겨워하면서 연락 횟수를 늘렸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맞는 캐릭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방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젠 안 하련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사람은 집착해선 안 되는 존재다. 사람은 공감대를 가지고서 서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존재다. 또한 내가 그들의 시간을 다 갖고 있을 수도 없으니 '집착'이란 것 자체가 양아치스러울 수밖에 없다.
해결책을 찾아보고 있다. 일단 차가워지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서만 그들에게 요구하려고 한다. 부가적인 내용이 많을수록 그동안 쌓아왔던 관계 또한 부패돼 버릴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더 정확하게 주문할 것이다. 손가락 몇 마디가 더 구부러졌으면 하는지를 말할 것이다.
P.S: 흔히 영화쟁이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란 말을 하곤 한다. 개소리다. 좋은 영화란 존재할 수 없다. 얼마만큼 중독성 있게 영화를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의 문제다. 그게 내가 지금 영화감독으로서 체험하고 겪으며 느낀 부분이다. 좋은 영화란 건 없다. 변태적이고 음흉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절대 아름다운 행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