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란 자리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위기가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줄지 않고 발생하지만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위기는 누군가에겐 기회일 수 도 있다. 일단 내게는 '위기는 위기'다.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하려면 정말 강한 멘탈리티가 필요하다. 다음 수를 생각하면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도통 모르겠다.
감독이란 자리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괜히 엄한 사람을 모여두고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내가 짜증 났다. 집중력 있게 식구들을 모으는 게 싫다. 알게 모르게 계속 케어해야 한다는 것이 내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다.
나는 호불호가 매우 명확하다. 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면 안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감독으로선 이는 잘 지켜지지가 않는 것 같다. 일단 내 몸만 챙기는 것이 감독의 본분이 아니다. 식구들을 이끌고 목적지까지 이끌고 가야 한다. 일차원적으로 호불호를 나누기가 쉬운 구조가 아니었다. 마치 생명체처럼 꿈틀대는 것이 영화제작 전반에 흐른다.
남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고 남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는다지만 돌이켜보면 자꾸 괴롭힌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 위치는 수많은 요구를 하는 쪽이고 상대편은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쪽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내게 들여야 한다는 소리다.
해결책을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보수'외에는 없다. 하지만 독립영화판에서 두둑한 '보수'를 책임지는 감독이 있을까? 애초에 불가능한 해결책이다.
두 번째 동기로는 '수상 트로피'가 되겠다. 모든 감독들이 이를 보상심리로 여기고 작품 제작에 열중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것이 첫 번째 동기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막연한 신기루일 뿐이다.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 수상 영광을 감히 함부로 가판대에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 선택은 뭐냐고? 두 번째다. 사실 처음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 영화의 목표는 수상이 목표다. 나는 상업영화감독 혹은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고 출연진과 스태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스스로 모순된 이야기를 하는 이 같은 상황이 독자들에게 잘 적응이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선 이 영화를 끌고 갈 동력이 안 생긴다. 스태프들이 여기에 힘을 주며 에너지를 쏟을 이유도 사라진다. 그만큼 영화란 '마약'같은 존재다. 중독되면 무섭게 마냥 '이성'을 잃어버리나 보다.
PS: 약 빤 김에 하나 추가하겠다. 만약 단편 <도너츠와 커피>가 수상을 하게 된다면 정말 센세이셔널한 것이다. 내가 기록하고 있는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 등이 주목받게 될 것이다. 어떠한 마음으로 영화가 제작됐고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쓰게 됐는지 상세히 나타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일단 오늘의 환상 일기는 여기까지 쓰려한다. 나도 이런 마음은 되도록이면 자제해야 한다는 것 정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