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굳이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근데 할 수 있겠어?
뜻하지 않은 조언을 듣다 보면 가끔씩 의도치 않은 질무을 듣게 된다. 누군가는 내게 '할 수 있겠냐?'며 의문을 던지곤 했다.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이 위기다. 물론 호기롭게 대답할 순 있다. 하지만 판타지를 쓰긴 싫다. 말 한마디에 대한 무게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섣부르게 말하긴 싫었다.
어떤 신문에서 봤던 내용인데, 성공하는 사람은 '불가능'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단다. 나는 이 점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이라 믿는 순간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아닌가. 지금 내 상황에 필요한 기준점이다.
현재 영화 제작 상황을 바라보자. 일단 흔히 연영과나 영화 아카데미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성골 출신 영화쟁이가 아니다. 그러니 순도 100% 내 돈으로 이번 영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끔씩 피를 쏟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제작팀을 온전히 꾸릴 수가 없다. 연출팀에는 조연출이 한 명이 있는 것이 전부다. 스크립터는 없다. 촬영팀 또한 카메라 감독과 조명을 맡은 인원이 세 명 정도다. 제작팀 따윈 없다. 로케이션을 헌팅할 인원은 없다. 미술감독과 음악감독도 없다. 현실적으로 막장이 따로 없다. 제대로 갖춰진 것이 하나도 없다.
확실한 점은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뿐이다. 그래서일까. 모든 악조건을 이겨 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흔히 말하는 열악한 환경은 영화 제작 내내 나를 괴롭혀왔다. 그렇지만 크게 흔들리진 않는다. 나는 영화를 만들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눈에 보이는 딜레마들을 하나씩 하나씩 소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실현시킬 수 없는 연출은 과감히 없앴다. 하지만 스토리는 충분히 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니 신기하게도 시나리오가 점점 단단해지는 효과가 있더라. 또한 제작팀에게도 내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추상적인 내 희망사항은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치환됐다.
돌이켜보면 불가능한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단, 내가 그렇게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각본이 90%가 완성됐다. 곧 있으면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