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우라 고리유 May 10. 2017

제17화, 창작자가 될 것인가 or 평론가가 될 것인가

표현욕이 비판욕보다 앞서야 한다

출처: 'Gosha Rubchinskiy' 컬렉션 중
날 선 것들이 모든 정답을 말해주진 않는다.




 날을 세운 상태일수록 간파당하기 쉽다. 얼마나 덜떨어졌는지 알기 쉬운 심리상태다. 


창작자는 날을 바깥으로 세워선 안된다. 평론가와는 다른 점이다. 예전부터 짖어대던 말이 있었는데, 여기에 적어보겠다.


"창작자는 창작자로서 깝죽거려야지 평론가가 되선 안된다."


표현욕이 비판욕보다 앞서야 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혹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가 먼저 앞서야 한다. 그것이 창작의 기준점이 돼야 한다.


이 기준점이 없다면 창작을 멈춰야 한다. 흔들리기 쉬운 종이배가 될지도 모른다. 그대의 창작물은 누군가의 아류작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물론 누군가의 비판이 있기에 그렇게 판단되는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는 알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자신의 작품이 독특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부분에선 철저한 자기 고민이 필요하다.


영화 제작 얘기를 하다 보니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것이 '테크닉'적인 비평이다. 개인적으론 왜 그런 기술력에 꽂혀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들어도 작품을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건 '소꿉놀이' 정도일 뿐이다.


테크닉에만 몰입해 있는 자의 목소리는 눈에 보이고, 귀로 듣고,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영화라기에 날뛰는 망나니의 발정 난 울음소리일 뿐이다.


불행한 것은 본인이 이러한 구분 조차 짓지 못하는 경우다. 불운아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제16화, 불가능을 바라보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