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계급'이란 단어를 하나 만들어 써보려 한다
'돈도 써본 놈이 안다'는 말이 있듯이 호의 또한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호의'라는 단어는 좋을 호와 뜻 의가 뭉친 한자어다. 기계적으로 해석하자면 '좋은 뜻'을 가진 단어란 소리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도 꽤나 유명하다. 남에게 잘 대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을 가리킨다.
호의는 공짜가 아니다. 일종의 투자이자 당돌한 고백이다.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갖고 싶어 내비치는 감정선이다.
그런데 호의를 간과하는 이들이 있다. 호의를 눈치채지 못하는 이들이 첫 번째요. 호의를 당연한 줄로 아는 이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가르쳐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두 번째는 조금 벅차다. 아르고 달래야 하지만 열정이 쉽게 생기진 않는다. 그러니 무시할 뿐이다.
정서적 계급이란 단어를 하나 만들어 써보려 한다. 질적으로 부족한 계급과 질적으로 천한 계급 그리고 정도를 아는 자와 자신의 교양을 뛰어넘는 자 등 총 4가지 정도가 있겠다.
호의를 잘 발휘하기 위해선 정도를 아는 자와 자신의 교양을 뛰어넘는 자 사이의 만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사의 관계는 정해진 대로 이뤄지지 않기에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학 공식처럼 해석되길 바란다.
호의가 부서지는 순간은 질적으로 천한 부류의 사람과 대적했을 때다. 이들은 동물적인 판단이 급선무인 자들이다. 개가 밥그릇을 보면 침을 질질 흘리듯, 본능적인 감성에 치중해 온화한 '호의'의 감정선을 느끼지 못한다. 불쌍한 일이다. 난처한 일이기도 하다. 치유될 수 없는 영역이니까. 최악인 것은 이런 계급은 나이와 전혀 무관하다. 환갑이 지나든 중학생이든 판단의 기준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호의'를 지키기 위해 나는 상대방을 존대한다. 특별히 웃음 짓거나 애도를 삼간다. 그것이 무슨 병신 같은 소리일까 생각할 수 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자기방어기제다. 존대를 통해 그 사람을 살핀다. 과연 나를 '호구'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나를 귀하게 여기는지 정도로 판단할 때까지 존대한다.
그러다 결국 결론에 이르면 나는 판단을 내린다. 전자의 경우는 극존칭을 쓰며 멀리한다. 마치 천한 백정이 임금님을 처음 알현한다고 생각할 만큼 상대를 높인다. 후자의 경우는 감정선을 드러낸다. 이모티콘도 쓰면서 나를 드러낸다. 꽤나 효과적이다. 사람을 구분하는 처세술로 나쁘진 않다는 게 내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