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우라 고리유 May 14. 2017

제22화, 찌질이는 '책임' 지지 않는다(上)

찌질이는 '책임'을 멀리한다. 감정에 민감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겁'을 잘 내기에 특별하게 존재하기 힘들다.

위험한 발상이다. 개인적인 정의이기도 하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인간군상을 만나며 겪은 경험을 기준으로 이 같이 갈겨쓴다.


지난 시간들을 다시 돌이켜보면 내 주위엔 나를 포함해 찌질이가 참 많았다. 단지 내가 그렇게 정의하지 않았고, 찌질이로 평하지 않았다. 


동년배 나이대의 사람들은 당연하거니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의 경우에도 찌질이는 매우 흔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살가죽이 점점 쳐지면서, 동시에 농익은 고급 와인처럼 삶의 풍미가 깊어지고 있

는 지 착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들을 겪고 접하는 것이 크게 특별함이 없어진다. 생존의 기술이 다를 뿐, 결국엔 비슷한 유형의 인간들이 내 주위를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그래서 책을 읽을 때마다 가끔씩 놀랐던 이유가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특별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일수록 말이다.


찌질이의 유형들을 보면 모두 제각 기다. 생김새와 신체구조에 따라 참으로 다양하다. 폭력으로 자신을 감추거나, 균형 잡힌 비소로 자신을 감추거나, 미소로 상황을 짓눌러버린다. 그들은 정확하게 대답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극단 적인 경우에는 '호불호'에 대한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책임을 지어야 하는 순간은 웬만해선 피하고 싶어서다.


나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종종 발견하면 크게 잘 새겨듣지 않는다. 서술 어미에 "없지 않아 있어요" , "그런 경향이 있어요", "그럴지도 몰라요.", "한 것 같아요" 등의 장치 걸어 잠그는 순간이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류의 사람들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해당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꽤나 감정에 민감하다. 마치 육식동물을 피해 다니려 하는 미어캣 마냥 촉이 곤두섰다. 혹여나 누군가 자신엑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대해 확실한 답을 요구할 때 종종 발휘되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제21화, 호의를 당연시하는 '병신'들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