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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우라 고리유 Jul 07. 2017

제26화, 미술 작품이 주는 특별한 '위로'

사람이 주는 위로의 느낌이 아니었다. 선정적이면서 외설적인 위로랄까.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작품 중 하나(레이몽 드파르동 작품)
글이 너무 쓰고 싶은 날이다. 위로가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선택에 대한 의구심이 가장 커져가는 요즘 날이다. 




<브런치>에 최근에 내가 썼던 글 3편을 살펴봤다. 두서없는 모양새다. 철자법, 띄어쓰기 모두 잘못된 곳이 많았다. '그땐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난해한 내용들을 썼을 까' 싶은 구절도 더럿 있었다.


7월은 정말 괴로운 월(月)인 것 같다.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행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력을 해봤지만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진 않았다. 내 눈 앞엔 아직  매듭지지 못한 영화 제작 문제와 사람 문제 그리고 진로에 대한 고민들이 들어서있다.


지금은 생각을 정리할 단계인 것이 분명하다. 난 항상 무언가를 결정할 때가 되면, 생체리듬을 최대한 늘려놓는다. 멀뚱히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쳇 베이커의 노래 한 구절구절을 음미해보며 몽상(夢想)하곤 했다.


이번에 선택한 것은 '미술관'이었다. 사색을 위해 새로운 채널을 발견한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나는 오롯이 '나'를 생각했다. 내가 있는 현재의 위치와 상황들을 그려냈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작품 중 하나(레이몽 드파르동 작품)


그러다 가끔씩 작품을 보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요새 내 마음은 꽤나 '공허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던 작품들은 대부분이 폐허 혹은 부서지고 남은 부스러기들이었다. 어찌나 흠뻑 빠졌던지, 혼자 그림을 보며 상상하기도 했다. '작품에 나온 공간을 실제로 바라보면 기분이 어떨까?' '왜 작가는 이런 공허한 사진을 내걸었을까?' 등과 같은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내가 작품을 '봐야지만' 위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에게선 도저히 얻을 수 없

는 위로가 존재한다는 점을 느낀 것 같다.  차마 부끄러워 입에 담기도 힘든 내 이야기를 마치 작품이 알고 있다는 듯 뽐내는 것 같았다. 작품들은 깔끔한 하얀 캔버스 벽에 걸린 맞춤식 액자 속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2017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상치보다 감당할 수 없던 상황들이 더러 보여, 놀라울 정도다. 특히, 사람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다음 글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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