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쉽지 않다와 이기적임에 대한 단상
단면-1
뉴스를 읽는 게 싫었다. 감정이입이 되기에 싫었다. 어떤 문장을 읽든 기자로서의 감정이 반영되더라.
기자 시절엔 내 나름대로의 힐링을 위해 '보그병신체'를 읽었다. 잡지를 읽어가며 부드러운 표현에 내 시선을 가져가곤 했다.
기자가 아닌 오늘. 기사는 정말 재밌는 콘텐츠다. 조선일보의 사건사고 기사는 참으로 재밌다. 디테일의 끝이랄까. 다른 일간지 사건팀 기사보다 더 알차고 치밀하다. 중앙이나 한국을 챙겨보는 편인데, 두 매체가 쏟는 사건사고 기사는 특별한 메리트는 없다. 중앙은 정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고, 한국은 소설체로 변화를 주려한다. 하지만 사실을 느끼기엔 각색된 부분이 많기에 한계점이 도드라져 보인다.
시시각각 변하는 해석이 현재의 내 감정을 반영해주는 것 같다. 무엇을 즐기기 시작하는지 혹은 무엇을 피곤해하는지 말이다.
단면-2
'쉽지 않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지금 내게 있어선 "편집이 쉽지 않다" "텝스가 쉽지 않다" 정도가 될 테다.
좀처럼 하도 쉬운 일이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쉽지 않다"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렵다"였다.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기적일 수 없는 세계와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의기소침해지거나 의지박약이 생기곤 한다. 흔히 말하는 '포기'라는 새싹이 점점 돋기 시작하는 것이다.
개소리 같지만 나름 의미가 있는 해석이라고 자부한다. 쉽지 않은 것을 당연히 받아들였던 시기가 끝난 것인가. 아니면 나는 미친 듯이 예민해져 버린 것인가. 감정에 무뎌지고 싶다. 특히나 '쉽지 않은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저 과정의 한 단계에 불과한 불쾌함일 뿐이다. 쉽게 받아들이고 쉽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단면-3
책을 읽는 행위는 꽤나 럭셔리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가장 이기적인 분야가 '독서'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따위는 읽지 않는다. 나는 그의 문체가 싫다. 너무 지루하다. 서사는 내 취향과 너무 다르다. (단, 그가 좋아하는 마라톤에 대한 책은 열심히 읽었다. 내가 공감할 만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있었다. 마라톤 또한 이기적이니까.)
반면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매우 챙겨본다. 그의 생각을 존중한다. 아니 사랑할지도 모른다. 나는 거침없이 갈겨대는 그의 문체가 좋다. 래퍼로 치자면 아마 캔드릭 마라(?) 정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불편한 것을 꽤나 맛깔나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무라카미 류와 캔드릭 라마를 비교했으니, 하루키 또한 비교대상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루키 같은 경우에는 칸예 웨스트 정도일 것 같다. 멋진 것들만 다 가져다 박아버린 듯한 맛. 특별하게 호불호가 생기기 힘든 그런 류다)
이기적인 것이 항상 네거티브여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기적인 것은 자아의 극상의 행복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소통하고 공유하는 상태도 물론 필요하지만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건강한 삶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그러기에 이기적임은 꽤나 중요한 존재다. 중요하게 자리 잡아야 하는데, 부정적 기운이 먼저 도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