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그의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 하나만 읽은 것 같다. (그의 단편집은 영문학 시간에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위대한 개츠비』는 수업 시간에 읽었던 터라 원서로 봤는데, 아무래도 수업 교재다 보니 한 줄 한 줄 작가의 의도나 캐릭터 분석을 하면서 읽었다. 그래서 무척 재미있었고, 사실 기억에도 많이 남는다. 개츠비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나는 당시 개츠비가 항상 강 건너 한 점의 초록불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보다, 개츠비가 '과거에 머물러 있고, 과거를 잡고 싶어 하고, 허상을 쫓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묘사한 피츠제럴드의 표현력이 좋았다.
이 책은 작년 여름에 읽은 책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집을 하루키가 엮은 책이다. 엮었다는 게 번역을 했다고 보이는데, 피츠제럴드의 책을 하루키가 번역하고, 그걸 다시 한국말로 번역한 게 아닌가 싶다. 하루키가 어떻게 섬세하게 이 글들을 번역했는지 일어 원서를 읽지 않는 한 내가 알리는 없고, 단지 이 책을 읽으며 '그래, 역시 피츠제럴드다. 내가 좋아한 피츠제럴드다.'라는 말만 나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가 소설보다 좋았다. 어딘가 모르게 그의 소설과 에세이는 피츠제럴드의 삶을 닮아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외로운 삶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맨 뒤 하루키가 '엮은이의 글'을 썼는데, 그도 비슷한 말을 한다.
피츠제럴드는 일상생활에서 체험한 일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해 부풀려 쓰는 타입의 작가이므로, 실생활이 기세를 잃고 시들면 작품 역시 그에 맞춰 빛을 잃는 경향이 있었다. 『어느 작가의 오후』, p358~9
하루키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평소 좋아했던 분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문구를 몇 자 적는다. 개인적으로 피츠제럴드의 생각과 처지를 잘 나타내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나는 단지 왜 슬픔에 대해서 슬픈 태도를 취했을까, 왜 우울에 대해서 우울한 태도를 취했을까, 왜 비극에 대해서 비극적인 태도를 취했을까, 나는 왜 나의 두려움과 연민의 대상에 나 자신을 동화시켰을까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기 위해 완벽하리만큼 조용한 곳을 원했을 뿐이다. 『어느 작가의 오후』, '취급주의', p333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이를 통해 젊음을 유지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돈이라는 주요 목표가 당연시되고 흔들리는 명성이 그 매력을 잃었을 때, 나는 영원한 '해변의 카니발'을 찾아 꽤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어느 작가의 오후』, '젊은 날의 성공', p3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