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무 정보 없이 접했던 책인데, 생각보다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상황에 매몰되지 않은 작가의 담담한 말투와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 기록들이 독자인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평소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작가 날 것의 감정이 잘 전해지는 책은 본 적이 없는데, 읽는 내내 내 마음도 뭔가 침잠해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작가는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형을 돌보며, 암에 걸린 아버지까지 돌본다. 나이가 든 어머니는 오랜 세월의 간병에 힘에 부친다. 언제 병원에서 연락이 올지 몰라 밥도 늘 급하게 먹고, 자기만의 여유시간도 없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순간의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며 살고자 노력한다.
어느 부분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으나, 책 중에서 작가가 빗소리를 듣기 위해 비 오는 날 꼭 우비를 입고 나간다 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했나. 아니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했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대목이 특히 흥미로워 나 역시 우비를 입고 쏟아지는 비를 맞아봤다.
귓가에 울리는 빗소리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실 '울리는'이라는 단어보다 귀를 '후려치는' 빗소리가 더 적합했다. 귀를 후려치는 빗소리 때문에 생각에 잠기기는 어려웠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충만해졌다. 누군가가 번뇌로 힘들어할 때, 이 방법을 한 번쯤 추천해 보고 싶다.
나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기 시작했다. (...) 나는 이런 것들에 강하게 집착했고, 이런 집착은 시간에 대한 내 관점을 바꿨다. 하루는 아침에 눈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대략 16시간 정도의 시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이제 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하루의 가능성』, p38
언제부터인가 나는 삶 전반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 대신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있다. 『하루의 가능성』, p53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짧은 시간 동안 이 글을 쓰기 위해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마음속 성냥은 무한정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개수가 정해져 있을까? 개수가 정해져 있다면 지금 내게 몇 개가 남아 있을까? 매일 많은 성냥을 태우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닐까. 모든 성냥을 태우고 나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내 삶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루의 가능성』, p92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다. 세상이 변해도 우리는 오늘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어제보다 인격적으로 조금이라도 성숙할 수 있고,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 (...) 그래서 시간이 주어진 사람들은 반드시 믿어야 할 가능성이다. 『하루의 가능성』, p198
10권의 책을 읽는다면, '아, 좋았다!'라고 느끼는 책은 5~6권 남짓이다. 나머지는 끝까지 다 읽어도 '이게 뭔 소리고?'라는 것도 있고, 책도 취향이라 중간에 드랍하는 책도 있다. 『하루의 가능성』은 '와, 좋다!' 부류의 책은 아니다. 조금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에 씁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뭔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진다.
평소 나는 책을 다 읽고 '괜찮은데?'싶은 책은 작가를 찾아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작가에 대해 찾아보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으며 그린 그 이미지대로 간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