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나마나

누굴 위한 디지털인가?

by 고로케


"이리 와봐. 아줌마가 뭘 깔으라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뭘 깔으라는데?"

"무슨 앱을 깔으라는데? 그거 안 깔면 우리 1+1이나 50% 할인받을 수 없데."


엄마와 오랜만에 장을 보러 갔다. 엄마는 '오늘 한우가 50% 세일이라니 한우만 사고 오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막상 가보니 한우는 품절됐다는 딱지만 큼지막하게 써져 있어서 한우 꼬리털조차 볼 수 없었다. 기왕 온 김에 한우 대신 미국 소고기도 사고 엄마가 다른 곳을 보는 사이 '맛있는 계란 장'이라는 노란색의 귀여운 간장을 카트에 몰래 담기도 했다.

즐거운 장 보기를 마치고 늘 그렇듯 계산대로 갔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면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2인 1조로 움직이는데, 주로 엄마는 계산대 밖에 서있고 내가 물건을 계산대에 하나씩 올려놓곤 한다. 그리고 늘 그렇듯 계산이 끝난 물건은 카드에 마구 담아 박스 담는 쪽으로 가서 다시 장바구니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고, '앱을 깔아야만 50%, 1+1 제품들을 할인받아 구매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마트를 방문했던 시간대가 오후 3시였고, 50% 할인 및 1+1 제품이 많아 사람들이 계산대에 꽤 있었다. 가뜩이나 날도 덥고 방독면 마스크를 쓴 바람에 나는 얼굴에 열이 잔뜩 올라 있었는데, 계산대 옆에서 앱을 다운받고 가입하고, 심지어 가입하려니 이미 가입했다는 알럿이 떠서 비밀번호 찾기를 누르고 난리 부르스를 춰야 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앱을 다운받고 겨우 회원 바코드를 찍은 찰나 엄마는 지갑에서 포인트 카드를 꺼내며 직원분에게 물었다.

"저는 원래 이 포인트 카드를 사용했었어요."

"아, 이제부터 저희는 포인트 카드 안 받아요. 이제 이 앱으로만 적립, 할인 가능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소고기를 못 샀음에 한탄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있어서 앱도 신속하게 깔고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만일 혼자 마트에 왔다면 앱을 설치하지 못해(설치는 했을 텐데 가입과 비밀번호 찾기에서 막혔을 거라 추측한다) 아마 할인 대상인 물건은 못 사고 왔을 거라고도 했다. 더불어 지금 마트에 노인이 잔뜩 있던데 그 사람들은 앱 설치 못해서 어쩌냐고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열이 가득 찬 마스크 속에서 나는 작년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디지털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가 일상화되었다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언택트는 진행되고 있었다. 햄버거 집이나 식당에서도 키오스크를 통한 주문이 일상화가 되어, 내 앞에 서있던 어머니들의 주문을 몇 번 대신해준 적이 있었다. 요새는 커피숍이나 버블티 상점에서도 대면 주문은 받지 않고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받는다. 키오스크가 주는 편안함도 있지만, 키오스크 앞에서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불편하다.


오늘 있었던 '앱 설치'만 해도 그렇다. 광고는 대형 찌라시와 LMS로 하면서, 할인은 '설치된 앱에 있는 바코드 인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찌라시와 LMS 광고를 하면서 타깃으로 한 건 5-70대였을 거다. 이미 젊은 주부는 배달 구매에 익숙해져 있고, 그들을 대상으로 할 거면 포털사이트에 배너광고를 띄우거나 앱푸시 광고를 했겠지. 실제로 내가 마트에서 본 사람들은 5-70대가 주를 이었고, 그들의 손에는 찌라시가 우글우글 접힌 채로 쥐여져 있었으니까. 그래놓고는 '앱이 없으면 할인이 안돼'라는 태도가 참 모순적으로 느껴졌고, 적어도 기존 포인트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카드로도 적립 및 할인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바코드를 통한 회원정보 인식은 같을 테니까 말이다.


디지털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화될 거다. 2월 중순, 코로나19 대규모 발발 시 마스크 전쟁 때도 디지털 사각지대에 있던 노년층은 '어디서, 어떻게, 얼마를 주고'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디지털이 손에 익은 젊은 엄마, 청년들은 '핫딜 떴다. 어느 사이트가 싸다. 그래도 이 정도 가격이면 합리적이다.' 등 디지털 상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마스크를 구매하기 바빴지만, 디지털이라는 공간 자체가 낯선 이들은 정보의 불평등함 속에서 그렇게 소외되고 있었다.


나도 디지털 광고가 업이지만, 가끔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이 시대가 야속하기만 하다. 지금 젊은 사람의 입장에서 디지털 사각지대는 마치 남일처럼 느껴지지만, 나도 나이가 들면서 어느 날 문득 디지털 사각지대에 발 한쪽 걸쳐놓은 사람이 충분히 될 수 있으니까. 세상은 원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우리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고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발전해야 한다 생각한다. 가령 오랜 고객의 손때묻은 포인트 카드는 거부하고 반드시 '앱을 설치해야' 할인이 가능하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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