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대체 언제 끝나냐고 엄마가 물었다. 저녁을 먹고 있던 나는 2022년 봄과 여름이 되면 모쪼록 정리될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엄마는 '2021년도 아니고 2022년인 기준이 뭐냐'라고 물었다. 그냥 뉴스 기사를 듣고 읽고 생각해보니 접종 가능한 백신은 내년 중순에야 나올 것 같고, 우리가 접종하기까지는 2021년 늦겨울, 항체가 생기는 건 그 뒤로 한 달 정도는 걸리기에 한 말이었다.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다. 집이 고층이라 야경이 보여서 좋다. 이사 오기 전에는 2층에 살아 호캉스를 가도 초고층만 찾아다녔는데 이제 '고층 야경'에 대한 갈증은 많이 사라졌다. 누워있다 일어나 창밖을 봤다. 요즘 내 취미 중 하나다. 뒷산은 까맣고 그 옆 도로는 밝다. 넋 놓고 앉아있다 기도를 했다. 생각해보니 코로나 전과 후의 내 기도 범위는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나와 가족 중심의 기도였다면 코로나가 터진 이후부터는 나와 가족과 교회와 회사와 나라와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한다. 아니 해야 한다. 이 뒤틀려진 세상이 다시 홀로서기를 하려면 전 세계가 안녕해야 한다.
재택과 출근을 반복한 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그리고 수도권 지역으로 코로나가 퍼진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사실 이상했던 거다. 우리 모두 지하철을, 버스를, 카페를, 식당을 그렇게 다니는데 수도권만 정상일 리가 없었다. 도미노가 하나씩 무너지듯 차례가 온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불안했던 마음이 그나마 안정되었다. 마음은 끊임없이 불편하고 무겁지만 모두가 그러니 내색조차 편하게 할 수 없다.
최근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만 해도 그랬다. '그래, 그렇구나. 코로나 블루가 아닐까? 걱정 마'라고 대답은 상냥하게 했지만 정작 본인은 꿈자리가 사나워 새벽 5시에 일어난 적도 많다. 멀쩡하게 일하다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져 바깥으로 나간 적도 있다. 뉴스만 봐도 공포심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기사가 다분했다. 경제 폭락, 빚더미에 앉은 나라, 폭등하는 집값,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아동학대, 살인사건 등... 코로나로 인해 마음 밭이 뭉개진 상태에서 자극적인 기사는 독약과도 같았다.
장기화되는 경제 악화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곪을 대로 곪아 세상에 드러난 민낯은 너무나도 추악했다. 남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당하는 페미사이드(Femicide)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와 봉쇄정치로 인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은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길 가던 16세 여성을 남성 세 명이 때려죽이는 일도 발생했는데 이런 범죄 현상을 보고도 멕시코 정부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예방 예산을 줄이기로 해 이슈가 되고 있다.
선진국인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퓰리처 상까지 받은 역대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격노>(rage)라는 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이전인 2월부터 이미 그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라는 내용을 폭로했다. 코로나로 인한 미국 사망자가 약 2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미리 막을 수도 있었던 사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늘 그렇듯 트럼프는 '나는 대중적인 공포를 조장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얼버무리지만,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와 이 세계에서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얼마나 많은 정보가 감춰져 있는지, 그 불평등 아래 생명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는다.
이런저런 상황을 보며, 특히나 업무 때문에 더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의 우울감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 이제는 산등성이가 될 정도다. 기력도 없고 뭘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생각해보면 이전 글에서 '웹툰'에 중독됐다는 글을 썼는데, 이전에 보지도 않던 웹툰을 보는 이유도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만화로 푸는 거 아닌가 싶다. 모든 게 씁쓸하다. 물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건강이 있고, 실제로 내 곁에 있는 여러 가지 감사함은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마음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건 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