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글을 선생님이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난 김에 꼭 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알고리즘이 우리를 이끌어 줄거라 생각합니다.(웃음) 그리고 뭐라 호칭을 표현할 길이 없어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종이 위에서 울고 웃기』라는 책에서 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글 중에서 유독 선생님의 글에 눈이 많이 갔어요. 어쩌면 선생님이 겪었던 삶의 패턴이 저와 비슷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몇 년 전부터 불안이 계속 엄습했습니다. 이것을 '불안'이라고 표현한 건, 놀랍게도 선생님의 글을 읽은 이후부터입니다. 저는 이게 '불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이 감정이, 나이와 연관된 사회적 지위 격차가 가져다준 불균형에 의한 그런 감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글처럼 '나는 왜 차가 없지? 나는 왜 집이 없지? 나는 왜 연봉이 낮지? 나는 왜 돈을 못 모았지?' 등등 저 역시 무수히 많은 '나는 왜?' 시리즈를 갖고 삽니다. 누군가는 이걸 '열등감'이라 표현하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불안'이라 표하겠습니다.
2년 전, 서울에서 자취를 할 당시였어요. 저는 여느 날과 같이 회사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6시 뉴스를 틀어놓고 아침을 먹고 화장을 하던 중, 민방위 훈련 때나 듣던 공습경보를 들었고 북한이 침입했다는 재난문자도 받았습니다. 그날은 위험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제겐 특이한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저는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죽어도 본가에 가서 죽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제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뭐가 됐던 제가 태어나고 자란, 그 익숙한 동네에 가서 죽어야 한다. 가족을 봐야 한다. 기어가던, 뛰어가던, 뭐가 됐든 오늘 안에 본가까지 간다,였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 상황이 안정된 이후 팀 단톡방에 들어갔더니 저를 제외한 모두가 '살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을 몇 병 챙겨야 하며, 재난 가방을 어떻게 구성할지, 어떤 음식을 가져갈지, 어느 대피소로 가야할 지 등, 모두들 어떻게든 살 방식을 찾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종종 눈을 감고 싶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는 선생님의 문장은 저를 멈춰세웠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저 날의 해프닝을 통해 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거든요. 우리는 이제 '나는 왜?'시리즈를 놔주는 게 어떨까요.
선생님은 요즘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연습을 하는 거 같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남들의 칭찬을 양분삼아 자라나는 사람이 아닌 우리는, 스스로 격려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사람인 거 같습니다.
선생님은 잘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여유로운 어른이 되어서 나와 같은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좋습니다. 제 생각에 선생님이 저보다 어릴 것 같은데(웃음), 선생님은 제게 힘을 줬어요. 그러니 굳이 우리 굳이 '건강하고 여유로운 어른'이 되려는 목표를 세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줍시다.
저는 선생님의 얼굴도, 이름도, 글 이외에 자세한 이야기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을 믿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