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와 책을 한아름 들고, 만원 지하철에 탔다. 백팩 준비하지 않은 나를 탓하며 기둥 잡고 섰다. 내 앞에는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분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아주머니가 타더니 그 여성에게, "무릎 수술을 해서 서 있을 수가 없어요. 양보 좀 해줘요."라고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 당사자는 물론, 주변인도 어색해지게 된다.
그 젊은 여성(이하, 'A')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짧은 정적.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이하 'B')이 자리를 양보했다. 그 아주머니는 자리를 양보해준 B에게 계속 감사를 표했다. 여기까진 훈훈.
그런데 아주머니가 옆 자리에 앉아 있는 A를 흘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B에게 감사를 표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사 표시인 줄 알았는데 계속 반복하는 걸 보니, A에게 들으라고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A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B가 내린 후, 아주머니 앞에 서 있던 학생의 점퍼 끝자락이 아주머니 가방에 닿았다. 아주머니는 그것을 거칠게 밀쳐냈다.
몇 정거장 지나서 A도 일어났다. 그 아주머니는 갑자기 "일찍 내리면서!!"라고 하더니, 옆 자리 아주머니에게,
"요즘 젊은것들은 너무 예의가 없어서 문제예요."
"예절교육을 받아야 해요."
"내가 무릎이 안 좋다고 양보해달라고 했는데 쳐다보기만 하더라고요."
등등. 험한 말을 와다다다 쏟아냈다. 황당. A가 자신도 무릎이 아프다고 했더니, 그 아주머니는 "아줌마세요? 아이고, 할머니?"라며 비아냥댔다. 웬만하면 안 끼는데 앞에서 계속 본 상태라 한 마디 했다.
"다른 분께 양보받으셨는데 그만하세요. 양보는 강요하는 게 아니잖아요. 모두 피곤한 퇴근 시간이고요."
당연히 왜 끼어드냐는 말을 들었고, 수술한 부분을 보여줘야겠냐며, 양보 안 한 저 '아줌마'가 예의 없고 잘못한 거라며, 또 큰 소리.
순간, 아주머니 말을 멈추고 싶어서 '임신했다고 할까?'라는 안 좋은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임신했다고 해도 위화감 없는 몸매라서 괜찮았겠지만, 그분은 진짜 임신한 사람한테도 험한 말을 했을 거다.
A에게 그냥 넘기고 가라고 다독였고, 그분은 어이없다고 하면서 내렸다. 주변 사람에게 구시렁대다가 잠잠하던 그 아주머니는, 내가 내리자마자 뒤에서 험한 말을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서 한 마디 할까 했지만 관뒀다. 욕먹었으니 내 생명이 연장됐겠군.
너무 짙어 번져버린 눈 화장이 인상적이었던 그 아주머니 덕분에 다시 되새긴다. 고운 할머니가 되어야지!! 얍!!
예의란 무엇인가.
양보란 무엇인가.
어른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