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특별한 시기인 임신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임신으로 인한 육체적 스트레스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그것들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선, D사이트에 비공개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서 그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몰랐던 정보를 정리하며 학습하던 어느 날,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개할 매체를 살펴봤다. 먼저, 육아 블로그 몇 곳을 살펴보니 홍보 관련 글이 너무 많아서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SNS인 얼굴책도 고려해봤다. 그곳은 글이 누적될수록 예전 글을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자료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불편하고, 나에게는 자료 축적의 공간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다음으로, 시민기자로서 글을 쓰는 매체를 생각해봤지만 기자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웠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브런치를 선택했다. 작가 신청을 통과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그동안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글의 출처가 브런치였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블로그의 카테고리처럼 매거진을 만들어서 관련 글을 묶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무엇보다 글 작성이 중심인 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레이아웃이 좋았다.
매체를 결정한 후 글을 올리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실명과 필명 중에 결정하기, 써놨던 글 다듬기, 폰트 종류와 대표 색깔 정하기, 이미지 고르기, 그래픽과 이미지에 삽입할 로고 정비하기 등. 그래서 글을 쓴 시점과 올린 시점이 불일치했다. 그것은 각 글의 부제에 작성일을 적는 것으로 갈음했고, 글 썼을 때의 감정을 존중해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거나 썼던 내용을 삭제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임신, 출산, 육아. 모르는 것이 많은 채로 인생에서 정말 큰 변화를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아니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한 편씩 썼다. 예민한 시기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더니 구성에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글을 쓰고 정보를 정리하면서, 막연했던 '엄마'라는 단어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졌고, 댓글로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그동안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 첫 번째 매거진 :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부제 : 임신부터 출산까지)
임신이란 것을 알았을 때, 마냥 행복하고 기쁘지만은 않았다. 내 몸에 생명이 자란다는 첫 경험은 나에게 설렘보다 두려움을 줬다. 모르는 것이 많으니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온전히 혼자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각종 정보, 내게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 몸 변화에 따른 걱정, 출산에 대한 무서움, 경력단절 등. 임신을 하고 나서 (혼자만의) 고민이 너무 많아졌다.
이 매거진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글은, 글 올린 지 3일째 되던 날의 '임신해서 힘든 점과 좋은 점'이었다. 써놨던 글을 올리는 것이라서 첫날에 글 3개를 연달아 올리고, 두 번째 날부터 글 1개씩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 번째 날에 5번째 글을 올렸다. 이틀 동안 하루 조회수는 약 100이었는데 3일째에 조회수 알람이 계속 울리다가 약 3만의 조회수로 마감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약 2만의 조회수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6일째에 약 7만의 조회수가 기록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좋았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그래서 올리려던 글도 올리지 못했고 댓글도 못 봤다. 통계를 살펴봐도 어디에 공유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더 겁이 났다. 그 후에 조회수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 새 글을 다시 올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못 보던 댓글을 보면서 대댓글을 달 수 있었다. 그렇게 심한 댓글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나의 소심함을 다시 한번 느낀 경험이었다. 이후 가끔씩 크고 작은 매체에서 내 글을 가져가도 되는지 문의가 오곤 하는데, 그곳에 달리는 댓글도 여전히 못 보고 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기록이지만, 출산에 대한 비중은 적다. 출산이란 것은 알아볼수록 더 무서웠기 때문에 정리하면서 되새길 엄두가 나지 않은 주제였고, 출산을 하고 나면 몸을 추스르면서 아가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라 예상되어 쉬는 기간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매거진의 마지막 글은 '출산 전후에 할 일'을 정리한 것이었다.
| 두 번째 매거진 : 귀여우니까 견딘다(부제 : 육아휴직 - 출산 후, 1년의 시간)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가 아가라는 실체를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한 불안함으로 쓴 글이라면, [귀여우니까 견딘다]는 아가를 만난 후 초보 엄마로서의 부족함으로 쓴 글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할 일이 훨씬 많았던 육아는, 양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내게 독박육아를 선사했다. 내가 힘들면서도 독박육아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가가 귀여웠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잘하는 방식(분석 및 정리)을 찾아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육아는 한 가지 미션을 완료하고 나서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또 다른 미션이 생성된다. 게다가 그 수많은 육아용품 중에 우리 아가에게 알맞은 용품을 선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상의 용품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블로그 홍보글보다는 쇼핑몰에서 비교해보고 사는 게 훨씬 만족도가 높았고 중고 거래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만, (결혼 준비할 때부터 느꼈지만) 육아를 하면서 친정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마음이 안 좋았다. 내 몸이 아플 때 마음 편히 아가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가와 관련된 행사를 할 때면 그 부재가 더 크게 다가왔다. 가정에 양가 부모가 모두 있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여러행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백일과 돌, 모두 간소하게 치렀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이유식. 두려워했던 만큼 이 매거진에서 많은 비중(매거진의 1/3)을 차지했다. 요리 잘하는 사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잘 해냈다고 생각하는 뿌듯한 작업이었다. 다른 글에 비해 조회수가 낮은 편이라서 아쉽기도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작업을 최선을 다해 해낸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토닥토닥.
여러 걱정 중의 최고는 역시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닐 아가였다. 고맙게도 아가가 어린이집을 좋아하고 잘 적응해줘서 다행이지만, 아가가 아플 때 엄마나 아빠가 바로 달려갈 수 없고, 집에 먼저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속상해할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아가는 너무나 잘해줬다. 결국, 육아는 부모만 잘하면 된다.
|먼 미래보다 지금의 행복을
모든 결정에 아가를 최우선으로 두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동안의 사회경험을 기반으로 강사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먼 미래보다 지금의 행복을 택했고, 그로 인해 손해도 봤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더 바빠졌다는 건 안 비밀. 맨 땅에 헤딩하며 스킬업 중이다.
실무 강사와 브런치 작가라는 두 가지 역할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