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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Feb 11. 2021

청소 잘할게

집안일을 모두 싫어하지만, 그중에 가장 싫어하는 게 청소다. 책이나 파일 등 업무와 관련된 정리는 그래도 잘하는 편인데, 청소는 잘 못한다. 그래서 결혼할 때 청소는 남편의 몫으로 정했지만, 남편도 평일엔 야근하느라 주말엔 아이와 시간을 보내느라 제대로 못하니, 그냥 어질러놓고 조금씩 치우며 살고 있다.


내 인생에서 그나마 청소와 소독을 했던 때는 산후조리원(나의 유일한 산후조리 기간) 퇴소 후, 집으로 와서 신생아와 둘이서 생활할 때였다. 두 돌까지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다른 곳은 못해도 아가의 공간만은 정말 열심히 쓸고 닦았다. 잠도 부족하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도, 몸 구석구석이 아파도,  양육자로서의 책임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게 했다.


아이의 놀이 습관도, 한 가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정리 후에 다른 것을 가지고 와서 놀게 해야 한다는데, 그냥 섞어서 놀게 하고 있다. 미니 자동차들이 병원에 가는 식으로, 나무 퍼즐로 요리를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놀잇감을 구분하여 노는 것도 좋지만, 여러 가지를 섞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청소하기 싫다는 핑계이고 합리화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수선한 책상은 어수선한 정신을 가지게 한다는 말에, "그럼 빈 책상은?"이라고 되물었다던 아인슈타인을 애써 떠올려 본다. 무질서 안에서도 그만의 질서가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물론, 아인슈타인이니까 용납되는 발언이겠지만.

  

그런데 얼마 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청소를 했다. 널브러진 장난감을 치우고, 쓸고 닦고. 구석구석 한 건 아니고, 정말 급해 보인 공동 공간(거실, 주방 등)만 했다. 나도 남편도 서로의 공간은 침범하지 않기 때문에 내 책상엔 여전히 이것저것 쌓여 있다.


아무튼, 아이는 하원 할 때 가끔 만나는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곤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친구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을뿐더러, 그 친구 가족의 일정도 있고, 집을 오갈 정도로 친분이 있는 건 아니라서 '코로나 끝나면 놀자.'라면서 말을 돌리는데, 그날은 유난히 계속 그러는 거다. 부모들은 모두 뻘쭘한 상황에서 아이의 한 마디.


우리 집 되게 깨끗해요.



응?? 아이는 몇 번을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 집 되게 깨끗하니까 놀러 오라고. 그동안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 친구 초대를 못했나 보다. 그리고 곧 지저분해질 테니, 깨끗할 때 초대를 해야 했나 보다.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청소할 마음이 생길지는 몰랐다.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함께 청소 잘하자고 다짐했다. 아이의 한 마디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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