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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Feb 10. 2021

조금만 천천히 커줘

2021년이 되면서 아이는 만 3세, 우리나라 나이로 5세가 됐다. 한 손을 쫙 피며 이만큼 컸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자기도 기가 컸다는  느껴지나 보다. 두 돌 무렵부터 '아가 아니고 언니(누나)'고 하기는 했지만 요즘 더 신나 한다. 


혼자 양말을 신거나, 엘리베이터 층수를 맞게 누르거나, 노래를 완창 하는 등 뭔가 완료하고 나면 잘했다고 칭찬해주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아가 때는 못했어요?



"그럼, 지금처럼 하진 못했지. 아가였잖아."라고 말하며 다시 칭찬해주면 뿌듯한 표정을 짓곤 한다. 자기가 그만큼 컸다는 어필인가 보다. 아가 때는 못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는 기쁨? 만족? 대견함?


못하는 말이 없는 지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단어도 아나?'싶어서 놀랄 때가 있는데 그때도 어김없이,


아가 때는 몰랐어요?



라고 묻는다. "그럼, 아가 때는 '응애'만 했지."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칭찬해준다. 그럼 또 신나서 쫑알쫑알. 완전 답정너.


재미있는 건, 고집도 늘고 떼쓰는 것도 늘어서 가끔 혼날 일이 생길 때면,


응애!



라며 아가인 척한다는 거다. 아가라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럴 때면 단호하게 혼내다가도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만다. 벌써 세상사는 법을 아나 보다.


아이가 훌쩍 커버린 것 같은 요즘, 오동통 짧디 짧았던 팔다리가 가끔 그리워진다. 어서 커서 맥주 한 잔 같이 하고 싶다가도, 천천히 커서 지금처럼 나를 많이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한 건,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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