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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Feb 13. 2021

내게 영향 끼치는, 아이의 한 마디

고맙게도 아이는 엄마가 가장 예쁘다고 항상 말해줬다. 결혼식 사진을 보더니, 엄마도 역시 공주였다며 최고라고 해주던 아이(옆에 있는 아저씨는 누구냐며). 폐백 사진을 보더니 자기도 엄마처럼 예쁜 한국 공주가 될 거라던 아이.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예쁘지 않아.



이제야 현실을 안 건가. 미의 기준이 자리 잡힌 건가. 아이가 실망할 만한 일이 있었던가. 그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영혼 없는 "예쁘다"는 말과 다르게 진심이 느껴졌던 딸의 "예쁘다"라는 말을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건가 싶어서 씁쓸하고 서운했던 그때,


엄마는 아름다워.



"아름답다"는 말을 알게 됐다는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엄마는 예쁜 게 아니고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했단다. 모르는 사람이 준 걸 먹은 백설공주는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로 '안전 제일, 현실 중심'인 아이에게 들은 말이라서 더 희한한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 참하다는 말과 함께, 예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지 않는 예쁨을 요구받는 것에 지치고, 사회에 찌들며 사람에게 치이면서 까칠하고 독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독함이 없었다면 지금만큼도 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성격도 소중한 나의 일부분이지만, 아이가 예쁘다고 해줄 때면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아름답다는 말까지 듣다니.


아이의 말 한마디에 마음속이 말랑말랑해졌다. 독함이 아예 없어지진 않을 테고, 없앨 생각도 없지만, 확실한 건 아이에게 치유받으며 배워가고 있다는 거다. 아이는 정말이지 내겐 너무 고마운 존재다. 그 말을 남기고 아이는 금방 잠들었지만, 나는 괜히 설레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언제나 예쁜 말과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혼낼 일이 간혹 생기는데 생각하지 못한 아이의 말과 행동에 웃음이 나와 훈육이 어려울 때가 많다. 며칠 전에는 자기 싫다며 잠투정을 부리던 아이가 인형을 막 던졌던 일이 있었다. 일단, 울고 불면서 떼쓰는 아이를 꽉 잡고 진정시켰다. 아이가 좀 진정한 후,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죄송해요. 일부러 그랬어요. 나도 모르게 그만.



응?? 무슨 말이지? 다시 말해보라고 하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또래에 비해 말을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으려 혼낼 생각이 사라진다. 아이는 너무나 심각하고 진지한데,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정신없다. 정신 차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다시 물었다. 잘못한 것을 알고 있냐고. 알고 있다며 다신 안 그러겠다는 아이에게 "아는데 그런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러게요.



순간 웃어버릴 뻔했다. 꾹 참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너무나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강조하면서, 뉘우치는 아이를 안아주고 자리에 누웠다. 내 품에서 훌쩍이다가 잠든 아이는, 다음 날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서 말했다.


엄마 눈 아니야. 아빠 눈이야.
인형 던져서 벌 받았나 봐.


전날 너무 많이 울었고, 울다 잠들어서 눈이 팅팅 부었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벌을 받아 눈이 작아졌다고 생각했나 보다(남편 미안). 아이를 놀려주고 싶었는데, 이미 울먹이고 있어서 더 울까 봐 달래줬다.


그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잠들 시간이 되자, 알아서 침대로 가는 아이. 오늘 인형 안 던졌다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내일 아침엔 엄마 눈일 거야.



아이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요즘, 아이와 대화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행동 교정이 쉽지 않은데 노력해준 아이에게 감사하다. 나 역시, 실수한 것은 인정하고 다시 실수하지 않게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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