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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May 14. 2018

독박육아의 시작

육아휴직 - 출산 후, 1년의 시간 (2017.05.22. 작성)

|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도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20대 초반부터 자취를 시작해서 결혼 전까지 혼자 살아왔다. 고양이와 비슷한 성향이라 그런지, 누군가가 내 영역에 함께 있는 결혼 생활이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살림이 내 자취 시절 살림이라 더 했다. 그러다 아가가 생겨서 아가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2주 간의 산후조리원은 천국(모유수유를 강요하는 것만 빼고)이었다. 누군가 온전히 날 위해서 해주는 밥, 빨래, 청소 등. 이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산후조리원의 첫날은 기분이 이상해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회복 중이었고 아가를 돌보는 방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에 온전한 휴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편안하게 있을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며칠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할 때, 대부분의 산모는 너무나 당연히 친정으로 간다. 내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비교하지 않는 편이라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부러웠고 마음 한쪽이 쓰렸다. 그 후에는 산후조리를 친정에서 하면서도, 일이 생겼을 때 친정에 아가를 맡길 수 있으면서도,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더 쓰렸다. 물론, 나름의 힘듦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댈 곳이 아예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울 뿐이니까.


육아는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라 생각하고 그를 지원하기 위해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가를 믿고 맡겨서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힘들다는 투정을 부릴 수 있는) 곳이 있는 사람이 문득 부러워질 때가 있다. 성인이 되면 당연히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했을 때도,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 문득 부러웠던 것처럼.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이 가진 것에 감사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빨강, 파랑, 노랑 크레파스를 가진 사람이 파랑 크레파스만 가진 사람에게, '왜 파란색만 칠해? 빨간색도 칠하고 노란색도 칠하는 게 더 좋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게 세 가지 색이 있으니 다른 사람도 당연히 세 가지 색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대부분은 무척이나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서 당연히 친정이 있다는 전제하에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없다고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괜히 말해서 분위기가 안 좋아지거나, 나를 안됐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싫어서, 그냥 듣기만 할 때가 많다.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내게 이런 결핍이 있어서 그렇다며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받아 독박육아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그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어도 혼자서 꿋꿋하게 잘해왔다고 자부해왔지만, 육아의 어려움을 마음 편히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건 또 다른 서러움이었다.



|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다는 것


얼마 전, 예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의 교육 공고문을 봤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닌 상황이어도 듣고 싶었다. 교육을 들으면서 독박육아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퇴근 시간 전부터 시작하는 교육이어서 아가를 맡길 곳이 없으니, 많은 고민 끝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 교육 공고문을 볼 수 있는 앱을 삭제했다. 마음 편히 맡길 곳이 있었다면 아가를 부탁하고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물론, 내 사정을 딱히 여기는 친척 어른들이나 지인들이 가끔 도움을 주신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분들도 자녀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친정에 하듯이 편하게 대할 수도 없고, 힘들고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다. 생신 때 식사 대접이라도 해드리고 싶어도 그분들의 자녀가 불편할 것이라는 것을, 딸처럼 대해주려 하시지만 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싫기 때문에 아가가 더 크기 전에 조금씩 거리를 두려 한다. 그 시점을 언제로 할지 고민 중이다. 아가한테 외가가 없다는 것이 미안해도 어쩔 수 없다. 나중에 더 큰 박탈감을 주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부모님이 가끔 아가를 보면서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실 때가 있다. 그러면 재미있게 듣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저리다. 내 이야기를 그렇게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예전에 들었던 말을 어렴풋이 되새겨야 하니까.  



| 나를 안아 주는 '귀여운' 아가


최대한 덤덤하게 쓰고 싶었고 별로 쓴 내용도 없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글도 두서없지만 이번 글은 유난히 더 두서없다.

내가 엄마인지도 모르는(언제 알까?) 신생아 딸을 조심스레 꼭 안고, '네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될게.'라고 말하는 내가 안쓰러우면서도, 작디작은 아가의 따뜻한 체온으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아가를 안고 있지만, 아가에게 안긴 느낌이 드는 것인가 보다.


독박육아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다. 그래도 아가가 귀여우니까 견딜 수 있는 힘이 조금이나마  생기는 게 아닐까. 잘 견뎌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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