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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May 22. 2018

육아의 1%만 해도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

육아휴직 - 출산 후, 1년의 시간 (2017.07.26. 작성)

※해당글은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ㅍㅍㅅㅅ에도 게시되었습니다. 


임신/출산/육아를 거치면서 "남자는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남자의 삶은 크게 변하지 지만 여자의 삶은 엄청나게 큰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게다가 1년 가까이 배속에 아가를 품고 출산하는 고통을 견딘 후, 독박육아를 하는 건 여잔데, 남자는 어쩌다 기저귀 한 번 갈고 어쩌다 수유 한 번 해도, 자상한 남편이면서 육아에 협조하는 아빠가 된다. 육아휴직까지 쓰면 한층 더 대단한 사람이 된다. 여자가 하는 것은 당연하고 남자가 하는 것은 특별하게 인식되는 것. 그게 육아더라.


엄마에게는 완벽을 요구하며 팍팍하게 구는 사회가, 아빠에게는 너무나 관대해서인지, 괜찮은 엄마라는 소리 듣기는 너무나 어렵지만(맘충이라는 소리 듣지 않으면 다행), 괜찮은 아빠라는 소리 듣기는 너무나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는 육아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에 반해, 대부분의 아빠는 나 정도면 잘 하고 있다고 '만족'하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 육아는 엄마의 일? 아빠는 돕는 사람?


나는 남편과 함께 있으면 남편에게 아가를 안겨 놓고 밀린 일을 한다. 아가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으니, 아빠가 있을 때만이라도 아빠와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익숙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불안하더라도 아가를 남편에게 자주 안겨야, 남편도 아가도 서로에게 적응할 수 있다. 즉, 아빠에게도 아가를 돌볼 기회가 있어야 한.


얼마 전, 어느 모임에 아가를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내가 탄 분유를 남편에게 주면서 아가에게 수유해달라고 했더니, 그 모습을 본 사람들 남편이 잘 '도와줘서 좋겠다'며 '남편에게 고맙겠다'라고 했다. 어떤 분유와 젖병이 좋을지 고민하고 비교하면서 구입한 것도 나고, 매번 젖병을 소독하는 것도 나고, 외출 준비물 챙긴 것도 나고, 분유를 타서 준 것도 나고, 수유한 후에 뒷정리를 할 사람도 나다. 남편은 준비한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서 아가에게 먹이는 것뿐인데, 내가 왜 좋고 고마워야 하는 걸까. 이렇게 모두 준비해줬으니 오히려 남편이 내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육아는 '당연히'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돕는' 것이라는 인식이 너무 싫으면서도, 육아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아빠가 얼마나 많으면 저런 인식이 팽배할까 씁쓸했다.


그리고 아가의 기저귀를 갈 때가 돼서 남편이 아가를 안고 화장실로 간 적이 있다. 화장실 벽에 불안하게 설치되어 있는 기저귀 갈이대는 지저분한 곳이 많기도 하고, 오픈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는 급하기도 했고 주변에 수유실이 없어서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남편이 돌아와서 한 말.


"남자 화장실엔 기저귀 갈이대가 없어."


처음 안 사실이다.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갈이대가 없구나. 아가의 기저귀를 가는 것도 엄마의 몫이구나. 주양육자가 남자인 아가들은 외출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심봉사가 젖동냥하러 다니던 것처럼, 주변 여자한테 부탁을 해야 하는 건가?


물론, 기저귀 갈이대가 있는 남자 화장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여자 화장실에는 있으면서 남자 화장실에는 없는 곳이 많았다. 결국은 여자인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책임감으로 하는 육아


신생아는 1~2시간 간격으로 울면서 깬다. 배고파서 깨고, 소리에 놀라서 깨고, 그냥 깬다. 덕분에 나도 그때마다 깬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가가 깨더라도 남편은 출근해야 하니 깨우지 말라고. 다른 방에서 자게 하라고. 회사에 가서 졸 수는 없으니까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새벽에 나 혼자 아가를 달래면서도, 아가의 우는 소리와 상관없이 잘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참 별로다. 그 새벽에 아가의 울음소리와 남편의 코골이 소리를 함께 듣는 기분이란.

나는 아가가 태어난 후 지금껏 늦잠을 자본적이 하루도 없다. 남편이 단 한 번도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가를 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바라지도 않는다. 주말 하루 정도는 자발적으로 교대할 만 한데 늦잠을 잔다. 말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니, 언제까지 이러나 지켜보고 있다.


▲ 남편아, 아내가 지켜보고 있다. 구글 이미지.


이런 상황에 주변에서는, 일하러 가는 남편은 푹 자게 해 주고 나는 아가 잘 때 같이 자라고 한다. 아가를 돌보는 일은 일이 아닌가 보다. 아가 잘 때야 할 수 있는, 매일 반복되는 일들을 대신해줄 것도 아니면서 쉽게 말한다. 내가 비몽사몽인 상태로 아가를 잘 돌보지 못하면 더 큰 문제일 텐데,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할 남편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있어도,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산후우울증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육아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과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내가 쏟아냈다. 그의 한 마디가 나를 너무나 화나게 했기 때문이다.


"여보가 잘하잖아."


내가 칭찬이나 격려받는 걸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전혀 좋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끓어 올라서 폭발했다. 반복해서 하는 일이니 익숙해진 것뿐인 걸. 교육학을 전공했고 아가를 좋아하는 성향이라 조금 나은 것뿐인 걸. 해야 하는 일이니 책임감으로 하는 것뿐인 걸. 아가를 재울 때 자장가를 부르다가 너무 슬퍼서, 아가랑 같이 펑펑 운 날이 얼마나 많은지, 네가 알리가 없지.


아빠가 처음인 것처럼 엄마도 처음이다. 남자는 원래 못하고 여자는 원래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부모가 함께 육아를 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여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숨 막힐 때가 많다. 엄마니까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여겨질 때마다 지치고, 아주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완전히 추락하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는 것은, 주양육자로서의 책임감이다.



| 육아 상품에 가득한 '엄마'라는 단어

                                    

육아하면서 구입해야 할 상품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상품을 고르면서 느끼는 것은, 엄마를 지칭하는 단어(맘, 마미, 마마, 마더, 맘스 등)가 포함된 상품명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아빠는 별로 없다. 열심히 찾아봐야 몇 개 보인다. 실제로 구입자 중에  엄마가 많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육아를 엄마의 역할로 국한하고 모성애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고 별로다.

▲ 온라인쇼핑몰에서 임신출산육아 용품 중, 엄마를 지칭하는 단어가 쓰인 상품명의 일부를 취합해봤다. ⓒ고상(고양이상자)


상품명이 그렇더라도 상품에 대한 설명만 하면 그나마 나은데, 상품 설명 문구(비슷한 내용은 조금 변형했음)를 몇 개만 살펴봐도 답답해진다. 굳이 "엄마"라는 단어를 넣어서 설명하는 상품이 너무 많다.


"나는 엄마다."

"가장 아름다운 이름, 엄마"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

"오로지 아기를 위한 엄마의 마음 그대로"

"아기의 건강과 가족의 행복을 위한 엄마의 마음"

"센스 있는 엄마라면 OO"

"엄마가 선택한 OO"

"엄마라면 꼭 알아야 할 OO"

"소중한 아이를 위한 엄마의 똑똑한 선택"

"엄마가 해주는 느낌"

"엄마의 정성이 가득"


여러 상품을 보고 답답하다가 어느 상품 설명을 보게 됐다. "엄마"만이 아닌, "엄마 아빠"가 함께 작성된 설명이었다. 그 한 문장에 마음이 움직여서 사려던 상품을 이 브랜드에서 구입했다. 육아 상품의 설명이 모두 이렇게 바뀌면 좋겠고, 육아 상품뿐 아니라 육아 정보를 안내하는 사이트나 앱도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


▲ 임신출산용품 업체인 M사의 상품 설명 갈무리. 다른 업체와 달리 "엄마 아빠"가 모두 표기되어 있다. ⓒ고상(고양이상자)



| 서로에게 명확하게 요구하기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많지 않다. 아가 사진이나 영상도 '알아서' 찍고, 기저귀 갈 때가 되면 '알아서' 갈고, 울면 '알아서' 안아주는, 내가 당연히 하고 있는 이런 것들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아내가 이런 심정일 것이다.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기는 개뿔. 마음이 문드러진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전적으로 육아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자잘한 일은 내가 해버리는 것이 나도 편하다. 어떤 일을 해달라고 할 때마다 설명하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하기 싫어서 일부러 못하는 척하는 남편도 있다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집안일 중에 몇 가지를 남편의 일이라고 확실하게 못 박았다. 어른 설거지와 청소다. 원래 남편이 맡았던 집안일이지만 지금까지는 쌓이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내가 종종하곤 했는데, 설거지에 물때가 끼든, 먼지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든 신경 안 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도 맡은 일을 예전보다 자주 하게 됐고, 식사를 할 때 식기를 최소한으로 꺼내게 됐다. 내가 복직하게 되면 나눠야 할 일이 더 많을 테니, 남편에게도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출산 후에 손목에 무리가 가는 경우가 있어서 더 많은 힘을 써야 하는 일(쓰레기 내놓기, 빨래 바구니 옮기기, 아가 목욕시키기 등)은 남편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다. 남편이 알아서 하면 정말 좋겠지만 알아서 하길 기다리다가는 나만 지치고, 그러다 내가 폭발하면 남편도 기분 좋지 않을 테니 명확하게 요구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우리 부부는 한 번 싸우면 열심히(?) 싸우기 때문에 화해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로 얼굴 보기도 싫고 말하기 싫어도 아가와 관련된 일은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화해한 적도 있다.


결론적으로, 부부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고 대화를 많이 해야 육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담당하고, 다른 한쪽이 돕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을 위해, 무엇보다 우리의 귀여운 아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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