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상자 Jul 09. 2018

고열과의 전쟁

육아휴직 - 출산 후, 1년의 시간 (2018.05.14. 작성)

우리 아가는 예방접종을 했을 때도 감기에 걸렸을 때도 38도를 넘은 적이 없어서(최고 높았던 체온은 37.9도였다) 해열제를 먹어본 적이 없다. 병원에서는 38도가 넘었을 때 해열제를 먹이라고 처방하기 때문이다. 열이 날 때는 미지근한 물을 수건에 적셔서 온몸을 닦아주다가 얇은 실내복을 입혀서 재우면, 땀이 쭉 나고 난 후 체온이 내려갔기 때문에 하룻밤 정도만 고생하면 됐었다.

그런데 최근 한 달 정도, 3~4일 미열이 있는 상태였다가 괜찮아지고 또다시 3~4일 미열이 있다가 괜찮아지는 상황이 반복돼서 아가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38도가 넘어가더니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 1일 차. 처음으로 본 38도, 해열제 찾아 삼만리


아가가 감기에 걸렸다. 콧물 흘리면서 칭얼대고 자꾸 안겨서 안아주고 있었는데 몸이 너무 뜨겁길래 체온을 쟀다. 체온계의 알림창이 빨간색으로 변하면서 38.3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항상 초록색 알림창만 봤었기 때문에, 38도가 넘으면 알림창이 빨간색으로 변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38이라는 숫자도, 빨간 알림창도 처음 봐서 너무 놀랐지만, 잘못 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몇 번이나 다시 쟀다. 결과는 비슷했다.


원래 하던 대로 옷을 벗겼다. 그러고 나서 미지근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냈다. 순간적으로 열이 내려갔지만 다시 38도 이상으로 올랐다. 온몸을 닦아 내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얇은 실내복을 입혀 땀을 냈다. 얼마 동안 괜찮았지만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해열제를 먹이기로 했다.


해열제를 먹이는 것이 처음이라 너무 떨렸다. 돌 전에 먹여야 했던 엄마들은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을까. 그나마 아가가 돌이 지난 다음이라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해열제를 가지러 갔다. 그런데 내가 해열제를 넣어둔 상자가 없었다. 여기저기 찾다가 혹시나 해서 남편에게 연락해보니 그곳에 있는 물건을 치우면서 옮겼는데 어디로 옮겼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동안 쓸 일이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가 물건을 넣어둔 상자이니 옮길 때 나에게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어디 있는지 모르는 해열제를 찾느니 약국에 다녀오는 게 낫겠다며 아가와 외출 준비를 하려던 찰나, 현관 가까이에 있는 책장 구석에서 해열제가 든 상자를 찾았다.



| 2일 차. 괜찮아지던 아가


해열제를 먹이고 나서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주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몇 시간은 안정되었다가 다시 열이 올랐다. 38도를 넘기지 않으려고 거의 쉬지 않고 닦아냈다.


그리고 방수 패드 위에 수건을 깔고 기저귀까지 모두 벗겨 눕혔다. 물수건으로 계속 닦아내야 했기 때문에 얇은 실내복을 입히지 않고 얇은 이불을 덮어줬다. 시원했는지 방긋방긋 웃는 아가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기저귀의 답답함과 찜찜함은 한 달에 4~5일 동안 생리대를 차는 여성만 이해할 수 있다. 남성이  몇 시간이라도 생리 체험 프로그램을 필수로 받는다면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열이 조금 내렸기 때문에 아가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 가벼운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가가 집에 들어와서도 잘 먹고 잘 놀아서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다.



| 3일 차. 남편과의 싸움


하루 종일 37도 중반으로 유지되던 아가의 체온은 저녁이 되자마자 40도 가까이 올랐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동안 했던 방법을 반복하면서 아가를 돌봤다. 병원으로 옮기는 중에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열이 내려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집에 있기로 했다.


물수건으로 아가를 계속 닦아주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옆에 있던 남편에게 아가를 맡겼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남편은 40도가 넘는 아가를 안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가가 그렇게 열이 나는데 뭐 하고 있냐고 뭐라 했다. 남편은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지 10분도 안 되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기냐며 반문했고, 나는 급변하는 아가의 상황에 무신경한 남편에게 화가 났다.  


내가 이틀 동안 몇 시간 못 자고 아가를 간호했기 때문에 예민한 상태였기도 하지만, 남편이 아가를 간호하는 것은 내 몫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평일이라서 별말 안 하고 내가 도맡아 했더니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뭘 해야 하는지 일일이 말해야 하는 것도 지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게 그리 어려울까. 아가가 그렇게 뜨거운데 어떻게 속 편히 휴대폰을 볼 수 있는 걸까(육아의 1%만 해도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



| 4일 차. 전쟁의 끝, 또 다른 걱정의 시작


아침에 일어난 아가의 표정이 평온했다. 체온을 재보니, 37.1도. 3일 전쟁의 끝이 보였다. 그리고 얼굴에 빨갛고 오돌토돌한 것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다른 곳도 살펴보니, 온몸에 전체적으로 퍼져 있었다. 3일간의 고열은 돌 발진이었고 돌 발진이 사라진 후에 아가의 체온은 드디어 37도 이하로 안정됐다. 다행이다. 큰 병이 아니어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금이야 휴직 중이니 바로 대처할 수 있지만, 복직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와줄 어른이 없는 맞벌이 부부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부부(거의 엄마)가 동분서주해야 하는 것일까. 아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런 상황에 부모가 달려오지 않아도 챙겨줄 수 있는, 그런 육아 지원 정책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이전 23화 육아의 1%만 해도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