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귀여우니까.."를 마치며 (2018.07.01. 작성)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3kg도 안 된 채 태어났던 아가는 10kg가 넘었고, 나는 복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에 복직 면담을 하면서 경영진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고 동료들한테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들 입장이 있을 테니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예전만큼 주인 의식과 동료애를 가지고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특별한 시기인 임신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기도 했다.
우선, 비공개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서 그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몰랐던 정보를 정리하며 학습하던 어느 날, 나 혼자 알기보다는 공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개할 매체를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글을 올리고 있던 블로그의 공개 여부를 살펴봤다. 하지만 운영 중인 육아 블로그 몇 곳을 살펴보니 홍보 관련 글이 많아서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페이스북을 고려해봤다. 그곳은 글이 밀리면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자료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을 주고, 글을 쓰는 나에게는 자료 축적의 공간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다음으로, 시민기자로서 글을 쓰는 매체를 생각해봤지만 기자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웠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브런치를 선택했다. 작가 신청을 통과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그동안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던 글의 출처가 브런치였던 것도 마음에 들었다. 블로그의 카테고리처럼 매거진을 만들어서 관련 글을 묶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매체를 결정한 후 글을 올리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실명으로 할지 필명으로 할지 결정하기, 써놨던 글 다듬기, 폰트 종류와 색깔 정하기, 대표 이미지 고르기, 그래픽과 이미지에 삽입할 로고를 정비하기 등. 그래서 글을 쓴 시점과 올린 시점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것은 각 글의 부제에 작성일을 적는 것으로 갈음했고, 글 썼을 때의 감정을 존중해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거나 썼던 내용을 삭제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임신, 출산, 육아. 모르는 것이 많은 채로 인생에서 정말 큰 변화를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아니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01. 인생 계획 7가지에 없었던 결혼
#02. 부족한 나에게 와준 아가
#03.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최고의 태교
#04. 무용지물 핑크 임산부 좌석
#05. 임신해서 힘든 점과 좋은 점
#06. 딸은 분홍색, 아들은 하늘색?
#07. 내가 기억하는 엄마
#08. 내 꿈 중의 하나, 보육원장
#09. 직장 여성을 위한 임신·출산·육아 관련 제도
#10. 저출산은 여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
#11. 임신·출산·육아는, 결국 돈돈돈
#12. 천차만별 산후조리원
#13. 모성애 부담① 자연분만vs제왕절개
#14. 임신 중에 하는 검사와 바우처
#15. 출산 전후에 할 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냥 행복하고 기쁘지만은 않았다. 내 몸에 생명이 자란다는 첫 경험은 나에게 설렘보다 두려움을 줬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지만 대부분 제대로 모르는 것이었다. 온전히 혼자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각종 정보, 내게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 몸 변화에 따른 걱정, 출산에 대한 무서움, 경력단절 등. 임신을 하고 나서 (혼자만의) 고민이 너무 많아졌다.
임신한 상태로 출퇴근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도 했고,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상담하면서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철저히 약자였다. 마음 편히 아가를 낳을 수 없는 상황으로, 출산을 하고 나면 복직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여성을 몰아넣으면서, 저출산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사회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다. 아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면서 모성애를 강요하는 동시에, 사회인으로서의 역할도 요구하는 아이러니.
임신했을 때, 명절에 찾아뵈었던 친척 어른의 한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잘못되면 혼날 줄 알아"라는 말. 웃으면서 농담으로 말씀하셨지만, 내 기분은 별로였다. 만약 잘못되면 가장 속상하고 미안한 건 엄마일 텐데 왜 혼낸다는 걸까, 왜 그 말을 부부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만 하는 걸까. 평소 같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말도, 임신 기간에는 흘리기 어려웠다. 아마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이 매거진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글은, 글을 올린 지 3일째 되던 날의 '임신해서 힘든 점과 좋은 점'이었다. 써놨던 글을 올리는 것이라서 첫날에 글 3개를 연달아 올리고, 두 번째 날부터 글 1개씩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 번째 날에 5번째 글을 올렸다. 이틀 동안 하루 조회수는 약 100이었는데 3일째에 조회수 알람이 계속 울리다가 약 3만의 조회수로 마감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약 2만의 조회수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6일째에 약 7만의 조회수가 기록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좋았다기보다는 무서웠다. 그래서 올리려던 글도 올리지 못하고 악플이 달렸을까 봐 댓글도 못 봤다. 난 정말 가슴이 콩알만 하다. 통계를 살펴봐도 어디에 공유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더 겁이 났다. 그 후에 조회수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 새 글을 다시 올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못 보던 댓글을 보면서 대댓글을 달 수 있었다. 그렇게 심한 댓글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나의 소심함을 다시 한번 느낀 경험이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기록이지만, 출산에 대한 비중은 적다. 출산이란 것은 알아볼수록 더 무서웠기 때문에 정리하면서 되새길 엄두가 나지 않은 주제였고, 출산을 하고 나면 몸을 추스르면서 아가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라 예상되어 쉬는 기간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매거진의 마지막 글은 '출산 전후에 할 일'을 정리해서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예민한 시기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더니 구성에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글을 쓰고 정보를 정리하면서, 막연했던 '엄마'라는 단어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졌고, 댓글로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01. 독박육아의 시작
#02. 예방접종 종류 및 일정 관리
#03. 육아의 1%만 해도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
#04. 아가와 고양이의 공통점 10가지
#05. 이유식 만들 마음의 준비
#06. 모성애 부담② 모유수유vs분유수유
#07. 육아용품 사용 경험, 그리고 중고 거래 진상들
#08. 초기 이유식(미음)
#09. 순한 아가라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야
#10. 중기 이유식(죽)과 간식
#11. 직접 만드는 이유식의 장단점
#12. 모성애 부담③ 워킹맘vs전업맘, 어린이집
#13. 고열과의 전쟁
#14. 동물원 나들이, 그리고 "아빠 금지" 수유실
#15. 이유식 실행 결과 분석 : 계획과 실제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가 아가라는 실체를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한 불안함으로 쓴 글이라면, [귀여우니까 견딘다]는 아가를 만난 후 초보 엄마로서의 부족함으로 쓴 글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할 일이 훨씬 많았던 육아는, 양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내게 독박육아를 선사했다.
내가 힘들면서도 독박육아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가가 귀여웠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잘하는 방식(분석 및 정리)을 찾아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육아는 한 가지 미션을 완료하고 나서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또 다른 미션이 생성된다. 게다가 그 수많은 육아용품 중에 우리 아가에게 알맞은 용품을 선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상의 용품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블로그 홍보글보다는 쇼핑몰에서 비교해보고 사는 게 훨씬 만족도가 높았고 중고 거래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다만, (결혼 준비할 때부터 느꼈지만) 육아를 하면서 친정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면 마음이 안 좋았다. 내 몸이 아플 때 마음 편히 아가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가와 관련된 행사를 할 때면 그 부재가 더 크게 다가왔다. 가정에 양가 부모가 모두 있는 게 당연한 것인지 관련 행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백일과 돌, 모두 간소하게 치렀다.
다른 직장에서 근무했을 때, 직원의 급여에서 일정 금액을 모아 직장 복리후생과 별도로 직원끼리 지원하는 경조사비가 있었다. 원래 양가 부모님이 환갑과 칠순이 되셨을 때 4분 중 1분만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양가에 한 분씩 지원하자는 의견이었다. 환갑과 칠순이 지난 분도 있을 테니 그 의견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직원이 양가 두 분씩 네 분 모두 지원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신 분도 있고 지원할 다른 항목도 많았기 때문에 한 항목에 많은 지출이 몰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반대 의견을 냈고, 회의 종료 후에 몇몇 동료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가끔 자신의 가족 구성을 '정상'이라 여기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 없이 쉽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씁쓸해진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이유식. 두려워했던 만큼 이 매거진에서 많은 비중(매거진의 1/3)을 차지했다. 요리 잘하는 사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잘 해냈다고 생각하는 뿌듯한 작업이었다. 다른 글에 비해 조회수가 낮은 편이라서 아쉽기도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작업을 최선을 다해 해낸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복직하고 나면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 학력이나 경력과 상관없는 일에 배정되어서 정신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맡은 일이니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고자 한다. 다만, 육아휴직 동안 했던 일에 직장일이 추가되는 것이니 시간은 더 부족하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도 피곤할 것 같아 걱정이다.
여러 걱정 중의 최고는 역시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닐 아가다. 고맙게도 아가가 어린이집을 좋아하고 잘 적응하고 있어서 신뢰하고 있지만, 아가가 아플 때 엄마나 아빠가 바로 달려갈 수 없고, 집에 먼저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속상해할까 봐 걱정된다. 그 적응 기간이 되도록 짧길 바라지만, 아마도 꽤 오래 걸리지 않을까. 아니, 아가는 잘 할 거다. 나랑 남편만 잘하면 된다.
우리 가족이 어느 정도 적응하면 두 매거진을 발행하면서 미뤄뒀던 글도 다시 써보고,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생활에 대한 글도 써볼까 한다. 매거진 제목도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