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터 출산까지 (2016.11.13. 작성)
임신은 힘들다. 특히 첫 임신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더 힘들다. 단순히 힘들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임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도 있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굳이 생각해봤다.
임신을 하게 되면 속이 안 좋다. 술을 엄청 마시고 난 다음 날처럼, 가시지 않는 숙취가 계속되는 기분이다. 입덧할 때가 최고이긴 하지만 평소에도 속이 좋지 않다. 아래 영상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랫배 쪽에 아가의 공간이 커질수록 내 장기들은 위로 올라가게 된다. 눌리고 눌리니 속이 좋을 수가 없다.
임신 중, 여성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
퉁퉁 붓는 손발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붓는 몸. 살이 찌는 것보다 붓는 기분이 더 별로다. 게다가 몸 전체가 무거워지니 그것을 지탱해야 하는 허리가 무척 아프다. 옆으로 누워 조금 펴주는 게 전부다. 엎드리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때 제일 중요한 남편의 역할은 아내가 말하지 않아도 팔다리 잘 주물러주는 것. 그것만 잘해도 남편이 너무 고맙다.
임신하고 나서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 '아가가 나라는 엄마를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내가 과연 하나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인가'에 대해 되묻곤 했다. 이런 막연한 불안감은 아마도 평생 계속될 것 같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10여 년간 일하면서, 사회에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일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왔다. 그러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이후에 복직한다 해도 그 전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휴직 상담을 하면서 느낀 불안함 때문에 진로에 대해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야속했다.
나는 힐 신는 것과 네일하는 것, 사람들과 한잔하는 것, 공연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임신을 알게 됨과 동시에 모두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여자로서 끝, 엄마로서 시작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쇼핑을 싫어한다. 가격 비교하는 것도 귀찮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사고 싶은 욕구가 별로 없다. 그런데 필요하다는 아가 용품은 왜 이리 많은 건지, 쇼핑에 할애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내가 생각할 때 임신해서 가장 좋은 점은 단연코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나처럼 약도 잘 챙겨 먹지 않고 병원에도 잘 가지 않는 사람이 건강에 신경 쓰게 되는 것도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 초음파로 임신을 확인한 후에도 특별한 느낌이 없었는데 심장 소리를 들은 이후에는 단순한 세포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임신했다는 실감이 났다. 그다음부터 건강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더라.
그동안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자궁 내 작은 근종들이 있었다. 물론 당시 검진했던 의사도 치료할 정도의 근종은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데 진료를 받으면서, 임신하게 되면 여성 호르몬이 증가해서 근종도 함께 커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덜컥 겁이 났다. 아가가 자리를 잘 잡아야 하는데 근종이 방해될까 봐 걱정된 것이다. 물론, 방해될 만큼 커지고 있지는 않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평소 화장을 잘 안 하고 다닌다. 요즘은 그런 사람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여자는 화장하는 것이 예의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임신하고 나면 그런 소리를 듣게 될 일이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런데 화장도 잘 안 하는 내가, 살트임 방지 오일을 바르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지만, 직장에서 좋게 봐주셔서 직원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길게 쉬어본 것은 졸업하고 나서 이직하기 위해서 쉰, 한 달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이 내가 처음으로 가져보는 긴 휴가다. 과연 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을 헛되게 쓰지 않도록 잘 준비하고 싶다.
드물긴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양보를 받는다. 드물어서 그런가. 모두 피곤한 출퇴근길에 양보를 받게 될 때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아가가 살아갈 세상은 더 좋길 바라게 되면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