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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Mar 22. 2018

딸은 분홍색, 아들은 하늘색?

임신부터 출산까지 (2016.12.18. 작성)

임신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아가의 성별에 대한 것이다. 성별을 알아야 선물을 준비할 수 있다는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정작 나는 아가의 성별이 그리 궁금하지 다. 아가의 성별을 워낙 늦게 알려준다는 병원에 다니고 있기도 하고, 늦은 나이의 임신이라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예전에는 내게 자식이 생긴다면 아들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여자보다 남자를 대하는 게 편하기도 했고, 듬직한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면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딸은 왠지 자신 없었다. 하지만 아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가 조카가 대부분 아들이라서, 딸로 태어나면 이쁨을 많이 받아 그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으로서, 내가 겪었던 일을 딸도 겪을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이전에 겪었던 것을 제외하고 최근에 있었던 일만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일정을 잡고 인수인계 계획을 세우면서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과정(간접적으로 느낀 경력단절이랄까), 출산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맞벌이일지라도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는 육아와 살림 등. 물론, 아가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더 좋게 변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고, 아예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그렇다. 물론, 나와 다르게 살림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여성으로 자랄지도 모른다.  


능력만 되면, 아들이라면 딸을, 딸이라면 아들을 입양하고 싶기도 하다.


  

|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사회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에서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앞치마를 맨 엄마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는 모습, 엄마(또는 딸, 며느리, 누나, 여동생)가 밥상을 다 차리고 나면 자리에 앉기 시작하는 아빠(또는 아들, 사위, 오빠, 남동생)의 모습, 어린이 애니메이션에서 리더는 남자 캐릭터이고 보조 역할은 여자 캐릭터인 모습 등. 태교일기에 대해 쓰면서 잠깐 언급했지만(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최고의 태교), 성 역할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상품도 많다. 어린이가 쓰는 상품은 좀 더 신경 써서 디자인해야 어른이 되었을 때 성에 따라 역할을 구분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 한 쇼핑몰 사이트에서 검색해본 가족 머그잔들의 디자인. 아빠는 넥타이를, 엄마는 앞치마를 매고, 딸의 배경은 꽃, 아들의 배경은 자동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상(고양이상자)



| 어른의 고정관념이 아이의 고정관념으로


얼마 전에 지인의 출산 축하 선물을 사려고 아가 용품 가게에 갔다. 고양이 디자인이 있는 옷을 고르고 있었는데 직원이 와서, 선물할 아가의 성별을 물었다. 남자라고 대답하니, 그쪽은 여자 옷이라며 다른 곳을 안내했다. 내가 사려던 옷은 고양이가 그려진 귀여운 디자인이었는데 그 직원은 남자한테 고양이는 좀 그렇지 않냐며 자꾸 다른 디자인을 권했다. 아가한테 남녀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가는 귀여우면 된 거 아닌가?  


아가의 옷이나 장난감 등을 성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여자 것, 저것은 남자 것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첫째와 둘째의 성별이 다를 경우, 첫째의 옷이나 장난감을 둘째에게 물려 입히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새로 살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쇼핑몰 카테고리 구분을 보면, 장난감을 성별로 구분한 곳이 있으며, 남아 장난감에는 로봇, 자동차, 공구 놀이 등이, 여아 장난감에는 소꿉 놀이, 인형 놀이, 패션 놀이 등이 있다. 여아가 로봇을 가지고 놀고 싶을 수도 있고, 남아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을 수 있는 것인데, 어른들이 아이들의 경험을 제한하는 것이다.


▲ 7살 영국 소녀가 장난감 매장에서 "for boys"라고 쓰인 것을 들고 항의하는 모습.이후 해당 매장에서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한다.


쇼핑몰에 들어간 김에, 장난감 중에서 '역할놀이' 카테고리에 들어가 봤다. 주방 놀이 세트에 남녀 아이들을 모델로 쓰는 경우가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공구 놀이나 직업 놀이에는 남아 모델을, 인형 놀이나 패션 놀이에는 여아 모델을 쓰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웃겼던 건 역할 놀이 내에 있는 엄마 놀이 카테고리였는데 아이 돌보기, 요리하기, 청소하기 등의 집안일이 중심인 장난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안일은 엄마의 역할인 걸까?


▲ 온라인 쇼핑몰 카테고리에 있는 엄마놀이에는 집안일 관련 장난감이 있었다. 아빠놀이 카테고리(못 찾았다)가 있다면, 그곳에는 어떤 장난감이 들어갈까. ⓒ고상(고양이상자)


아이들이 커가면서 옷이나 장난감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구매하는 것은 부모나 부모의 지인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택을 하더라도 어른의 기준에 다른 성별의 장난감이라 여겨지면 사주지 않거나 성별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다른 선물을 권한다. 어른들에게 성별에 따라 다른 선물을 받게 되는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와도 이전에 거절받았던 장난감보다는 선물 받았던 장난감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다. 여아에게 여자다움을, 남아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하면서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어른이다.


아래 영상은 장난감 매장을 배경으로 한,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다. 광고는 여아용 장난감(분홍색 조명) 쪽에 있던 인형이 건너편의 남아용 장난감(하늘색 조명) 쪽에 관심을 보이면서 시작된다. 인형은 차를 선택해서 운전하면서, 운동하는 여자 인형과 차를 마시는 남자 인형을 본다. 신나게 운전하느라 매장이 오픈할 때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데, 그때 부모와 함께 장난감을 사러 온 남자아이의 눈에 띄게 된다. 아이는 부모에게 장난감을 보여주지만, 부모는 자동차에서 인형을 꺼내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마지막에는 남자아이가 자동차도 인형도 선택하는 훈훈한 마무리지만, 과연 계산까지 끝낼 수 있었을까?


▲ 어느 자동차 회사의 광고. 장난감이 성별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부터, 아이의 선택을 어른이 제한하는 것까지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youtube 영상 갈무리.
Audi Campaign: "Let's Change the Game"


예전에 어린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는데 어떤 남자아이가 숨은 그림에 분홍색을 칠하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여자 색을 남자가 쓰고 있다며 뭐라 하길래 분홍색은 여자 색이 아니라고 설명해줬었다. 쓰고 싶은 색을 쓰면 되는 거라고. 그런데 그 남자아이의 엄마에게 항의를 받았다. 자기 아들이 분홍색을 좋아해서 못 쓰게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다며 말을 안 듣는다고 했다. 그때 든 생각은,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성인의 고정관념이 없어야, 아이에게 올바른 성 역할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여아용 남아용 구분이 분홍색과 하늘색으로 되어 있는 기저귀. ⓒ고상(고양이상자)


우리 아가는, 딸이든 아들이든 고정된 성 역할대로 자라지 않기를, 남자와 여자 이전에 올바른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나부터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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