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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Dec 10. 2020

예쁘지 않아도, 착하지 않아도, 똑똑하지 않아도 돼

성별 구분 상관 말고, 너의 취향대로 선택하길

가 많이 커서, 옷, 양말, 신발 등을 사야 할 시기가 됐다. 사용하던 중고 거래 앱에 장바구니 기능이 없어지니 불편해앱을 삭제하고 쇼핑몰을 뒤적였다. 핑은 정말이지 너무 귀찮다. 게다가 옷 스타일이 아닌, 성별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너무 별로다. 옷뿐만 아니라, 장난감, 교육 교재 등 성별로 나뉜 것이 너무 많다. 혹자는 성별에 따른 아이들의 선호에 따라 구분한 것이라고 하지만, 판매자가 그렇게 구성하니, '그런가 보다'라며 사는 양육자(양육자의 지인인, 선물 구매자)가 더 많을 것이고, 그러다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1940년대에 미국에서 사업적 전략으로 성별에 따라 색을 구분한 것이 시작이기도 하고.


아이가 뛰어놀 때 치마는 너무 걸리적거린다. 내 딸도 치마를 입으면 한 바퀴 돌면서 공주님 같다고 좋아하지만, 5분도 안 가서 벗겠다고 한다. 편하게 입어 버릇해서 그런지, 놀 때는 편하게 입 싶어 한다. 뛰어노느라 바쁜데 당연하지.


쇼핑이 더 귀찮은 이유 중 하나는, 성별로 구분된 카테고리 때문이다. 치마, 바지, 맨투맨, 트레이닝복 등으로 구분하고 그 후에 성별로 찾고 싶은 사람이 찾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았는데 설명에 "남자, 남아"라고 명시되어 있으면 괜히 사기 꺼려진다. 게다가 여자아이 옷은 옅은 분홍은 기본에, 왜 이리 반짝이와 레이스가 많고 허리라인이 들어간 게 많은지. 편하게 놀기에 적합하지 않은 옷 스타일이 너무 많다. 가만히 앉아서 놀라는 건가.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어느 학습지의 서평단 모집 광고를 봤다. 교재나 서평에 관심이 많아서 해볼까 싶어 살펴봤는데, 너무 황당했다. 외출 활동 부분에서 남아는 BLUE "곤충 채집", 여아는 PINK "공주옷 입기"로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평단에 남아, 여아를 구분해서 신청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싶어서 혼란스러웠다. 이런 부분에 대해 언급한 기사의 댓글에서 "원래 그런 거다."라는 댓글을 보면 더 혼란스러워진다.


학습지에 남아용, 여아용 구분이라니. 게다가 남아는 파랑, 여아는 분홍. ⓒ고상(고양이상자)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의 취향은 양육자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가 때부터 사줬던 장난감과  입혔던 옷 스타일을 살펴보길. 아이들은 경험했던 것, 익숙했던 것에 친근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양육자와 자신을 동일시(양육자가 좋아하는 것 = 내가 좋아하는 것)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는 동물을 좋아한다. 특히, 고양잇과 동물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니 아이 용품을 사도 고양이 캐릭터가 있는 것을 사고, 내 취향을 아는 지인들도 그런 선물을 주니 아이가 아가 때부터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영향으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서 다른 것들도 접하게 하고 있지만, 공주나 외모 가꾸는 것이 주요 내용인 것은 멀리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그런 것에 접하게 되니, 관심이 생기고 있긴 하다. 아이가 백설공주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놀랐던지.


얼마 전에 문구점에 들렀는데 아이가 작은 공을 골랐다. 사고 싶은 것을 한 번에 하나씩만 고르게 하는 것도 연습했기 때문에 마트를 가도 아이와의 실랑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판매자 때문에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다. 판매자는 또래 아이 중에 하나만 고르는 아이는 처음 봤다며 아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잔데 왜 공을 골라."라고 하면서 머리핀이나 화장놀이 쪽을 우리에게 안내하려 했다. 난 판매자의 그런 상황이 너무 불편하다. 이것도 예쁘다며 보여주는 건 괜찮다. 그러나 꼭 성별로 구분하는 것이 정말이지 별로다. 옷을 사러 가도 마찬가지다. 공룡 그림이 그려져 있는 옷 앞에 있는 아이를, 굳이 여자 옷은 여기 있다며 샤랄라 원피스 쪽으로 데려가려 하니까.


한 번은 아이와 동네 키즈카페에 갔는데 탁자에서 그림 그리는 아이가 있었다. 가족한 명씩 그 후, 아이가  엄마한테 보여주며 설명하는데,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아빤데 왜 분홍색 옷을 입었어. 엄마가 아닌데."라고. 이런 상황이 반복될 텐데 아이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타고난 성별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아가 분홍을, 남아가 파랑을 고집하는 것이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완구점의 성별 구분. 아직 한글을 모르는 딸은 여아 완구는 둘러보기만 하고, 좋아하는 것(동물, 자동차, 공룡 등)이 있는 남아 완구 쪽에서만 계속 놀았다. ⓒ고상(고양이상자)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앞서 본 학습지 광고도 그렇지만, 어린이용 학습 교재에 성별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가 유일하게 접하는 학습지인 어린이집 활동지만 봐도, 성별 구분 그림이나 잘못된 성역할 그림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2020년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엄마는 앞치마(머릿수건까지!!), 아빠는 넥타이,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로 표현하는 삽화가 여기저기에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딸의 어린이집 교재 일부. 특히, 빵 먹는 삽화는 식당 종업원과 손님인 줄. 같이 앉아서 먹든지. 그러니 아직도 엄마놀이 장난감이 나오지. ⓒ고상(고양이상자)


내가 딸에게 자주 하는(앞으로도 자주 할) 말은, "예쁘지 않아도, 착하지 않아도, 똑똑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다. 그런데 학습지에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묘사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놀리고 때리고 울리는 사고뭉치 장난꾸러기로, 여자아이는 '집안일하는' 엄마를 돕고 '신문 보는' 아빠에게 안마를 하는 착한 아이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여러 그림을 삽입할 것이면, 성별을 바꿔서 묘사해도 되잖아. 때리는 아이를 남자아이로 그렸으면, 물건 던지는 아이는 여자아이로 그려도 되잖아. 엄마와 요리하는 아이를 여자아이로 그렸으면, 아빠와 빨래하는 아이는 남자아이로 그려도 되잖아. 게다가 엄마와는 함께 일하는데, 왜 아빠와는 함께 하지 않고 아이 혼자 일하는 걸까? 안마해주고, 구두 닦아주고. 참 답답하다.


그리고 남자아이가 다 나쁘고, 여자아이가 다 착한 건 아니잖아. 저런 그림 때문에 "남자아이는 다 그래", "착한 여자아이가 참아야지.", "너 좋아해서 그런 거야."라는 X소리가 나오는 거다.


딸의 어린이집 교재 일부. 남자아이는 사고뭉치, 여자아이는 착한 아이로 묘사되는 것이 흔하디 흔하다. ⓒ고상(고양이상자)


장난감이 들어있는 초콜릿이 있다. 개인적으로 장난감이 랜덤으로 나온다는 재미가 있을 뿐, 잠깐 놀다 버리게 되는 일회성 장난감이라서 내 돈 들여 사주지는 않는데, 얼마 전에 지인이 여아용으로 몇 개 사주셨다. 아이는 신나서 초콜릿을 먹 장난감을 열었다. 나비 머리핀이 나왔다. 나비라면서 몇 번 가지고 놀다가 쳐다보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고양이가 나왔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고양이가 아니라, 긴 속눈썹을 가진 화장한 고양이다. 계속 그런 식이었다. 


다음에 마트에서 보고 사달라고 하길래, 그때 열어본 장난감 가지고 놀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았다며 한참 이야기했다. 그리고 결국 장난감 없는 초콜릿만 사줬다. 남아용을 사주면 좋아하는 것이 나올까 봐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색깔과 한글로 성별 구분한 물품. 속옷은 기능 차이가 있다고 쳐도(그래도 분홍 파랑 구분을 벗어나지 못함), 초콜릿과 샴푸는 대체 왜 성별 구분이 필요한 걸까. ⓒ고상(고양이상자)


아이와 함께 종이접기 하려고 책 알아보다가 황당. ⓒ고상(고양이상자)


크레파스, 색연필, 스케치북 등의 학용품도 색으로 성별을 구분하고 있다. ⓒ고상(고양이상자)


아이와 함께 놀기 위해 무엇인가를 사려할 때면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나중에 한글을 알게 되어도, 남아와 여아로 구분된 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대로 모든 것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상품을 성별로 구분해서 기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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