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융통성이 없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원칙주의자고 나쁘게 말하면(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ㅎㅎㅎ), 아무튼, 몇 가지 원칙을 꼭 지키면서 육아를 해왔는데, 그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아가를 잘 키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편이고, 임신한 지인들이 육아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아가의 성향은 다양하니 육아에 정답은 없고, 아가의 협조 덕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다. 참고만 하시길.
이제 세 돌이 넘은 아가를 보면서, 내가 첫 돌까지 꼭 지켰던 5가지를 추려 봤다. 세부적으로 나누면 10가지 정도는 되지만, 크게 나눴다. 지금도 이유식을 제외하고는 계속 지키려 노력 중이다.
1. 이유식 만들어 먹이기
요리하는 걸 너무 싫어하는 내게, 가장 큰 고민이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유식이었다. 남편은 내가 당연히 사먹일지 알았다며 이유식 만드는 내내 신기해했고, 시어머니는 내가 이유식을 만들어 먹여서 아가가 뭐든 잘 먹는다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신다.
그게 뭐 별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유식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없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종류의 채소를 사본 적도 다듬어본 적도 없다. 그것도 유기농으로. 혹시 알러지 반응이 있는 식품이 있을까봐 새로운 것을 먹일 때면 엄청나게 긴장했고, 섞어서 먹일 때는 식품별 궁합도 살펴가며 만들었다. 고기도 꼭 덩어리로 사서 다져 먹였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 셀프 칭찬해.
내가 이유식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니 재료가 뭔지 확인된 걸 먹여야 한다는 양육자로서의 책임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유식 배달에 딸려오는 포장재를 보면서 느낀 죄책감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환경에 몸쓸 짓하는 것은 기저귀와 물티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첫돌까지는 진한 맛의 간식을 주지 않았다. 간식은 과일과 채소, 떡뻥(아가용 뻥튀기 과자), 플레인 요거트와 아가용 치즈가 전부였다. 어린이집 등에서 먹게 되면서 내가 아가에게 초콜릿 등의 과자류를 완전히 오픈한 것은 세돌 즈음부터였다.
2. 유튜브 등 영상 안 보여주기
너무 어릴 때부터 화려한 영상에 시선을 뺏기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TV도 없으니 육아휴직 중에 혼자 아가를 돌볼 때는 그게 가능했지만, 밖에 나가면 그 원칙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 힘들었다. 특히, 식당에 가면 아가에게 영상을 틀어주고 밥을 먹이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되는데, 아가에게 그쪽이 보이지 않게 앉히곤 했다.
무엇보다 맘마 먹을 때는 꼭 지정된 자리 앉아서 깔끔하게 먹게 했다. 맘마 먹는 것에 집중하기를, 만들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를 바라며, 맘마 시간에 가장 많이 이야기했다. 초반에는 아가도 맘마에 집중하지 못했고, 한창 걸음마 할 때는 돌아다니려고도 했다. 절대 쫓아다니며 먹이지 않고 맘마 자리에서만 먹였다. 너무 안 먹길래 그냥 영상 틀어주고 먹일까 했던 적도 많다. 하지만 그 시기를 견디면 영상 없이도 식탁에 앉아 집중해서 맘마 먹는 아가를 만날 수 있다.
가끔 음식을 손으로 만지면서 먹는 게 좋다는 사람을 본다. 그 역시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러나 아가도 아가지만, 식사 후에 치우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고, 식사와 놀이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촉감놀이는 식사 시간이 아니어도 할 수 있으니까.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영상에 눈을 뜨고 좋아하는 캐릭터도 생겼지만, 아직도 내가 급하게 마무리할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가가 뭔가 영상을 보고 싶을 때면, "엄마, 공부 안 해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아가도 습관이 됐는지, 평일 저녁에 함께 놀거나 책 읽을 때면 영상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주말에 남편이 누워 있거나 적극적으로 놀아주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해서인지 영상을 보여달라고 하고, 남편 본가에게 가면 너무나 당연히 TV 앞에 앉아 일어날 줄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보고 싶은 영상을 직접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날도 있어야지.
어차피 보는 거,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느니 교육 영상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 업체를 알아봤다. 그러나 유튜브 대체 영상을 찾다가, 오히려 매일 영상 학습을 하게 될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했다. 영상으로 퍼즐을 맞추는 것보다는 직접 퍼즐을 맞추는 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들고.
3. 고가의 아가 용품 사지 않기(중고거래 활용하기)
아가 용품은 쓰는 기간이 짧다. 그래서 선물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중고거래를 활용해서 아가 용품을 마련했다. 아가옷도 해당되는데 큰 옷도 미리 사놨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별 어려움없이 아이에게 맞는 옷을 입혔다. 그런데 이제 큰 옷이 다 맞는 상황이다. 섭섭할 정도로 쑥쑥 큰다.
용품이나 옷을 살 때의 내 원칙은 성별로 구분되는 것을 사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사는 건, 무조건 편한 진한색 옷. 또래 문화를 무시하지 못하니 요즘 공주 이야기를 가끔하는데, 아가가 한복 치마를 공주옷이라고 할 정도로 그런 옷이 없다. 나중에 자기 취향이 생기면 존중하겠지만, 아직은 그저 활동하기 편하게 입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가 물품 비용을 줄여서 나중에 뭔가 필요하다고 할 때 지원해주고 싶다.
4. 되도록 다정하게 말하고, 호응하며 지켜보기
요즘은 단호하게 말하는 편이지만, 첫 돌까지는 편안하게 다정하게 말했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한 템포 쉬고 화를 억누르며 아가에게는 따뜻하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덕분에 행복하고 고맙다는 말도 자주했다.
얼마 전에 이런 소리를 들었다. "아가가 너무 예쁘게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가한테 그렇게 말하는 군요."라는 말. 정말 기분 좋았다. 고집이 쎄서 떼쓰고 짜증을 내다가도 "예쁘게 말해."라고 하면, 누그러뜨리고 존댓말을 하는 아가. 그럴 때면 피식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말과 함께 가장 많이 신경썼던 것 중에 하나는, 스킨십을 자주하는 것이었다. 내 몸이 말이 아니었던 아가의 신생아 시절부터 많이 안았고, 잠잘 때면 꼭 자장가를 부르면서 토닥였다. 그래서인지 애착 형성이 잘 되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자주 불렀던 자장가를, 아가가 내게 불러주었을 때의 감동이란.
그리고 아가와 함께 놀 때는 박수도 많이 치고 목소리 톤도 한껏 올려서 격하게 반응했다.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시끄러울 정도다. 대신 노는 방법을 미리 알려주거나 내가 하는 방식을 따라하게 하진 않는다.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면 일단은 아이에게 탐색할 시간을 주고 그저 지켜본다. 그러면 아가만의 놀이 방법을 찾는다. 물론, 아가가 도움을 청할 때는 살짝 개입하기도 한다.
퍼즐에 재미가 생겨 막 시작한 아가가 네 종류의 퍼즐을 다 쏟아서 좀 짜증이 난 적도 있다. 짜증을 꾹꾹 누르며 함께 맞췄다. 한 부분씩 완성할 때마다 하이파이브하면서 하나씩 맞추자는 약속도 했다. 퍼즐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은 퍼즐이 익숙해져서 여러 개를 한꺼번에 섞어서 동시에 맞추기까지 한다.
5. 카시트에서 꼭 안전벨트하기
아가가 더 아가일 때 차에 태울 때면, 아가가 답답할 거라고 그냥 안고 타라는 어른들이 많았다. 내가 웬만하면 평화를 위해서 어른들 말씀에 토를 안다는 편인데, 꼭 해야한다고 고수했던 것 중에 하나가 안전벨트다.
아가가 좀 자란 후에도 유아차는 물론, 식당의 아가 의자에 있는 안전벨트도 꼭 했다. 아가가 버둥거려도 울어도, 꼭 했다. 강압적으로 한 건 아니다. 하기 전후로 꼭 안으면서 달래가며 했다. 그래서인지 이제 안해도 될만한 안전벨트도 꼭 한다. 유아차는 물론이고, 집이나 식당에 있는 맘마용 아가 의자에서조차도.
원칙은 어른들을 만날 때 깨지는 경우가 많다. 끊임없이 영상을 보여주시거나 내가 안 주는 강한 맛의 간식을 먹이기도 하신다. 가끔 있는 일이니 그런 것을 넘어가더라도 안전벨트는 꼭 사수했고,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잘 지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