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을 잘하는 편이다. 비교 대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우연히 또래 부모를 만나면 "말을 너무 잘해서 부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얼마 전 어린이집 상담 때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어린이집에서 하는 활동 이외에 별다른 학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환경은 이런 게 아니었나 싶어서 정리해봤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육아는 케바케이고 아이에게 잘 맞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을 테니, 참고만 하시길.
나는 20대 초반부터 여러 사정상 자취를 시작했다. 친구가 집에 남는 TV를 준 적이 있는데, 잘 안 보다가 너무 오랜만에 틀었는지 터져버려서 그 이후로 TV를 마련하지 않았다. TV에 불편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오기도 했고, 아르바이트하며 학교에 다니느라,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잤기 때문이다.
TV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해서 결혼할 때도 마련하지 않았다. 남편은 결혼 전 본가에 있을 때면 항상 TV를 켜 놨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 후에 남편이 힘들어했다. 지금도 남편 본가에 가면 그렇긴 하지만, 남편 역시 보고 싶은 것만 찾아서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으니 이제 불편함은 거의 없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신혼 때 남편의 습관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나는 냉장고처럼 계속 돌아가야 하는 가전제품만 아니면, 안 쓰는 전원은 모두 끄고, 가스 밸브도 쓸 때만 연다. 하지만 자취를 안 해봐서 그런지, 남편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꺼있는 것을 켜면 끌 줄 몰랐다. 얼마나 차이 난다고 그러냐던 남편이 나중에 공과금 지로를 보면서 '이렇게 적게 나온다고?'라며 놀랐던 게 기억난다. 지금도 남편이 혼자 야식 먹을 때 킨 전자렌지 전원을 아침에 내가 끄는 일이 종종 있지만, 그래도 초반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진 거다.
다시 TV 이야기로 돌아와서...
TV가 없기 때문에 TV 시청 시간에 아이와 함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어린이집에서 여러 캐릭터에 눈 뜨면서 보고 싶어 하는 영상이 늘긴 했지만, 아이가 말한 것 중에서 괜찮다고 판단하는 것만 찾아서 보여주고 있다. 장난감과 과하게 연계되거나 잘못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서 판단하는 게 쉽지 않지만, <시ㅋㄹㅈㅈ>나 <콩ㅅㅇ>같은 건 앞으로도 보여주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은 PC로 보여주거나, PC와 연결된 빔 프로젝트로 연결해 보여주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터치가 되는 기기로 보게 되면, 아이가 쉽게 터치하다가 좋지 않은 콘텐츠를 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습득력은 엄청나다. 괜히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영상을 틀어준 채로 부모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같이 보면서 캐릭터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알고리즘의 추천은 부모의 영향 밖이기 때문이다. 나는 꼭 옆에서 같이 본다.
TV가 없다는 것은 단점도 있다. TV가 있는 곳에 가면 아이가 계속 TV를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항상 불편하다. 대기 장소에 아이가 못 보던 프로그램이 나오니, 아이가 그것에 눈을 떼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남편 본가에 가면 시부모님이 아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계속 틀어주신다는 거다. 아이 입장을 생각해보면, 집에서 보고 싶은 대로 못 보니 그렇게 해소하는 날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 본가에 다녀오면 일주일 정도는 그 후유증(영상 보여달라는 아이의 요구)에 시달리기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진다.
이건 TV가 없는 것과 연결된다. TV가 없으니, 이야기하면서 식사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다. 호기심이 많은 아가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어 해서 너무 힘들었던 적도 많다. 하지만 절대 쫓아다니면서 먹이지 않고, 식사 자리에 왔을 때만 밥을 먹였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물론, 초반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아이의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말하는 내용이 더 많아졌고, 나는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시작했다.
집에서 이런 습관을 들이면, 외식을 할 때도 스마트폰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이들은 부모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아이를 맡기고 어른들끼리 편하고 빨리 식사하기보다는, 조금 더디더라도 아이와 함께 대화하며 식사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뭔가를 보여주면서 먹이면 잘 씹지도 않는다. 먹을 땐 먹고, 놀 땐 놀고, 볼 땐 보도록, 한 가지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식사 중에 부모가 스마트폰을 보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식사 시간에는 부모부터 스마트폰을 내려놓아야 한다. 부모가 보는 것을 아이도 보고 싶어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어느 분이 내게 그런 말을 해주셨다. "아이가 너무 예쁘게 말하던데, 엄마가 아이한테 그렇게 말하는구나."라고. 살면서 들은 칭찬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다. 아이를 찍은 영상을 보면 목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내 반응이 격하다. 원래 하이톤이지만, 더 하이톤이다. 아가일 때는 더 그랬다. 많이 안고,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노래하고, 많이 질문하고, 많이 호응하고.. 그런 생활을 반복했다. 아이가 너무 잘 따라줬고, 그 덕분에 그런 칭찬도 받게 된 듯하다.
두 돌 무렵, 아이는 자기 이름을 발음하는 게 어려웠는지 자기 스스로 부르기 쉬운 별칭을 붙였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에 새로 온 친구인 줄 알았는데, 자기를 말하는 거더라.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그렇게 불렀다. 어느 순간 자기 이름을 잘 발음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별칭으로 불리길 원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그것을 잘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알맞게 대답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린이집에서는 한 달 동안 학습한 교재교구를 집으로 보내준다. 집에 와서 아이와 복습(?)하는데 어린이집에서 했던 것이니 내게 설명해달라고 하면 신나서 쫑알쫑알한다. 요즘 교재에는 QR코드가 있어서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있는데, 가끔 그것도 연결해서 보기도 한다. 유아에게 학습지 경험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내가 산 책은 얼마 없다. 신생아 때 본 초점책은 산후조리원에서 만든 게, 천으로 만들어진 촉감책은 물려받은 게 전부다. 동네에 중고서점이 있었는데 육아 휴직했을 때 그곳에서 고양이 관련 동화책을 몇 권 샀고, 북스타트에서 책도 받았다. 그 책들을 반복해서 읽어줬다. 글을 몰라도 책 제목을 정확히 알고, 문장도 거의 비슷하게 말할 정도로 집에 있는 책들은 아이에게 익숙해졌다. 아이가 내게 책 한 권을 다 읽어(?) 준 적도 있다.
코로나 전에는 주말에 여는 동네 도서관에 자주 갔다. 그곳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오가는 산책 시간도 꽤 즐거웠다. 도서관에서 아가가 꺼낸 책을 읽어줬고, 다 읽으면 새로운 책을 가져오게 했다. 아이가 유난히 관심 가지는 책은 표지를 찍어서 집에 왔다. 며칠 후에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다시 보고 싶다고 하는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사기도 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내 영향인지, 등장인물에 고양이가 있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장난감에 역할을 부여해서 여러 상황을 꾸미며 노는 것이다. 엄마도 했다가, 아빠도 했다가, 선생님도 했다가, 의사도 했다가 바쁘다. 그 역할에 맞게 목소리도 다르게 낸다. 아이가 역할을 선택하고 나서, 내게 역할을 주는데, 아이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기가 원하는 대사(?)를 하지 않으면, 바로 지적을 하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그래도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역할놀이의 좋은 점은, 아이가 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본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칭찬해주면서 함께 하곤 한다.
물론, 놀이를 하면서 지적이나 칭찬을 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목욕을 하기 싫어하는 날에는 목욕하기 싫다는 인형에게 이유를 묻는다. 그럼 아이는 인형의 마음이나 생각을 이야기한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기 두려워하니까) 말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형을 통해 샤워기가 무서웠다는 속마음을 듣고 욕조에 물을 담아 바가지로 물을 떠서 씻겨주기도 했다.
결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대화하며 노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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