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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Jan 13. 2019

거리의 잡초 인생은 나까지만

| 너무나 바빴던 알바 인생


나의 20대는 "알바(아르바이트) 인생"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시간만 맞다면 어떤 일이든 했다. 일을 고를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 연애는 사치였지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가끔 있어서 좋은 사람을 사귄 적도 있다. 평범한 집안에서 너무나 올바르게 자란 사람. 나와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사귄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그 사람의 따뜻함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알바하지 말고, 용돈 아끼면서 장학금을 받아 봐.


나의 사정에 대해 모르는 어른이 하던 말,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말을, 남자 친구에게 듣는다는 건 너무 힘들었다. 어쩔 수 없 한계가 있었다. 용돈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걸. 여러 이유로 결국 헤어졌지만, 내 기억에는 받기만 하고 해 준 것이 없는 미안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 와중에 성적 장학 대상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 학기에 등록해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등록금이 부족해서 다음 학기는 휴학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전액이 아니었던 그 장학금은 포기해야 했다. 그때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휴학하고 나서 할 알바를 찾으려 애쓰면서 문득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났을 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와서 인지 알바생을 볼 때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각자 원하는 바가 있어서 일하고 있겠지만,  예전의 내 모습이 겹쳐져서 그런가 보다.



| 화초의 투정이 부러운 잡초


영화 "설국열차"에서 충격받은 장면이 있다. 교실에서  쏘던 임산부 교사도, 양갱의 실체도 그 정도로 충격받는 것은 아니었다. 열차의 꼬리칸 사람들이 머리칸을 향해 나아가면서 온실처럼 꾸며져 있는 따뜻한 칸을 지나칠 때, 그곳에서 뜨개질하던 여인의 표정을 봤을 때였다. 피투성이의 사람이 자기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한 그녀의 표정. 자신은 그런 고통을 당할 일이 없다는 듯 무심한 그 표정이 충격이었다.


한 편으로는 피투성이의 사람에게 다가와 따뜻한 말을 하면서 "힘내"라고 하는 사람보다, 그렇게 무심한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까. 악의 없는 선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받은 상처가, 악인에게 받은 상처보다 더 깊게 오래 간 경험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


한 번은 서빙 알바하던 레스토랑에 대학 동기가 가족들과 온 적이 있다. 그 테이블 담당은 다른 사람이어서 몰랐는데 그 친구가 나를 불러서 알았다. 인사 정도만 하는 동기가 내 알바 장소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의아했지만, 애써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웠다. 가족들과 인사하고 자리를 뜰 때, 그의 부모가 내게 이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일하면 얼마나 버니?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어.


딱히 내게 뭐라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그 테이블 주변을 피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나를 굳이 불러서 힘내라고 말하고 간 그의 '화목한' 가족.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친구라서 못된 사람은 아닐 텐데 그 이후부터 그가 너무 불편했다. 특히, 자기는 가기 싫은데 부모의 권유로 어학연수를 가야 한다고 투정 부릴 때는, 부러우면서 화나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런 비슷한 경험이 많다. 유난히 따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주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에게 그런 상처를 받는다. 이제는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경험을 한다. 특히, 내가 휴학을 반복하면서 알바하느라 늦어진 시기만큼, 부모의 지원으로 공백 없이 대학을 졸업해서 나보다 자리를 먼저 잡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피해 의식일 수도 있다. 온실 속 화초가 너무 부러운 거리의 잡초라서.  



| 필요한 아르바이트만


우리 아가는 생존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꿀 시간이 없어지니까. 물론,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생활비까지 벌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남편이 정신 바짝 차리고 건강 챙기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지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가의 물품에 많은 돈을 쓰고 있지 않다. 가끔은 이것저것 사주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아가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을 위해 참고 있다. 돈이 없...


무엇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하고 싶을 것을 하는 친구를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행히 나처럼 소심하고 속 좁은 성격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까.


나 자신의 삶보다 엄마로서의 삶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는 요즘.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내 소신을 지키면서 아가를 지키면서 그렇게 나이 들고 싶은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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