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남들처럼(살다보니 이것이 제일 어렵다.)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중이라 시간도 돈도 없을 때였기 때문에 비싼 학원을 다닐 수는 없었다. 고민하다가 일단 1종 필기를 봤다. 한 번에 붙길래 용기가 생겨서 기능과 도로주행을 한두 번 도와준다는 저렴한 학원에 등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겁도 없이 간 거다. 분위기 완전 살벌하고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다.
기능 배우러 간 첫날, 자동차 오락기 같은 것에 앉으라고 하더니 해보랜다. 한번 해보고 기능 시험을 봤다. 한 번에 붙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운전 천재인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 도로주행 연습을 했다. 일을 마친 밤에만 시간이 되니 깜깜한 곳에서 강사 한 분과 몇 번 타 본 게 전부다. 그리고 토요일에 시험장에 갔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다. 4인승 트럭에 시험 볼 사람 3명과 경찰이 타고 출발. 처음에 엑셀 밟았다가 "내리세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연습한 트럭에 비해 시험용 트럭이 너무 신형이라 조금만 밟았는데도 트럭이 붕 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양해를 구하고 평일에 보면 더 나았을 거다. 그런데 워낙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도로에 자동차 많은 토요일에만 시험을 봤다. 그러다가 운전에 오만정이 다 떨어지고 자신감은 끝도 없이 하락했다. 도로는 내가 나올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빵빵대는지, 그런 배려 없는 차가 가득한 도로에는 겁 많은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운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아이를 키우고 거주지가 수도권으로 옮겨졌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많은 업으로 변경하고 나니 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운전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하기는 싫은 그런 상태.
술을 좋아하니까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한다. 가끔 밖에서 한 잔 할 때면, 운전해야 하니 술을 못 마신다는 남편을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누군가는 남편 술 마시게 나에게 운전 배우라고 하기도 하지만, 술은 남편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 술 한창 마실 때 운전했으면 음주운전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적도 있다. 음주운전은 살인(미수)이나 마찬가지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겁이 많으니까
겁이 많아서 잘 놀란다. 공포물은커녕, 조금만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상도 못 본다. 크게 놀라는 편이라, 옆에 있던 사람까지 덩달아 놀랄 때도 있다. 이런 내가 도로에 나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선 처음엔 다 겁먹고 습관 되면 괜찮다는 용기를 주지만, 내가 나를 못 믿겠다. 괜히 나 때문에 운전 잘하는 여자들까지 싸잡아서 욕먹을까 봐 우려되기도 한다.
아이를 봐야 하니까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운전하는 엄마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안 보이는 게 불안해서 업지도 못한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임신 상태로 운전하는 분들은 더 대단하다. 임신했을 때 출퇴근하며 대중교통 이용하면서도 가끔 띵한 빈혈기가 느껴져서 힘들었는데 운전이라니. 특히, 내 딸은 차에 타에 타면 자기 때문에 머리가 이리저리 움직여서 불안하다. 목베개나 인형 등으로 고정하는 것도 잠이 든 후에 하니, 운전 전에 세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여성 운전자 대상 범죄가 무서우니까
예전에 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남자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차를 사게 되면 너무 아기자기하게 꾸미지 말라고, 차에 휴대폰 번호를 남길 때 남자 가족이나 지인의 번호를 남기라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 차주가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이유가 많기 때문이란다. 그때는 그 조언이 꿀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내 차를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어딘가에 가려면 왕복 서너 시간은 잡아야 하니, 운전하면 생활이 좀 편할 것 같아서 생각 중이다. 서울처럼 복잡한 도로 상황이 아니니까, 슬슬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남편은 적극 찬성하며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니까 괜히 하기 싫어지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