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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Mar 31. 2021

운전을 해야 할까

20대 초반에 남들처럼(살다보니 이것이 제일 어렵다.)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중이라 시간도 돈도 없을 때였기 때문에 비싼 학원을 다닐 수는 없었다. 고민하다가 일단 1종 필기를 봤다. 한 번에 붙길래 용기가 생겨서 기능과 도로주행을 한두 번 도와준다는 저렴한 학원에 등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겁도 없이 간 거다. 분위기 완전 살벌하고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다.


기능 배우러 간 첫날, 자동차 오락기 같은 것에 앉으라고 하더니 해보랜다. 한번 보고 기능 시험을 봤다. 한 번에 붙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운전 천재인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 도로주행 연습을 했다. 일을 마친 밤에만 시간이 되니 깜깜한 곳에서 강사 한 분과 몇 번 타 본 게 전부다. 그리고 토요일에 시험장에 갔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다. 4인승 트럭에 시험 볼 사람 3명과 경찰이 타고 출발. 처음에 엑셀 밟았다가 "내리세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연습한 트럭에 비해 시험용 트럭이 너무 신형이라 조금만 밟았는데도 트럭이 붕 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양해를 구하고 평일에 보면 더 나았을 거다. 그런데 워낙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도로에 자동차 많은 토요일에만 시험을 봤다. 그러다가  운전에 오만정이 다 떨어지고 자신감은 끝도 없이 하락했다. 도로는 내가 나올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나 빵빵대는지, 그런 배려 없는 차가 가득한 도로에는 겁 많은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운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아이를 키우고 거주지가 수도권으로 옮겨졌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많은 업으로 변경하고 나니 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운전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하기는 싫은 그런 상태.



술을 좋아하니까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한다. 가끔 밖에서 한 잔 할 때면, 운전해야 하니 술을 못 마신다는 남편을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누군가는 남편 술 마시게 나에게 운전 배우라고 하기도 하지만, 술은 남편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 술 한창 마실 때 운전했으면 음주운전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적도 있다. 음주운전은 살인(미수)나 마찬가지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겁이 많으니까

겁이 많아서 잘 놀란다. 공포물은커녕, 조금만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상도 못 본다. 크게 놀라는 편이라, 옆에 있던 사람까지 덩달아 놀랄 때도 있다. 이런 내가 도로에 나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주변에선 처음엔 다 겁먹고 습관 되면 괜찮다는 용기를 주지만, 내가 나를 못 믿겠다. 괜히 나 때문에 운전 잘하는 여자들까지 싸잡아서 욕먹을까 봐 우려되기도 한다.


아이를 봐야 하니까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운전하는 엄마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안 보이는 게 불안해서 업지도 못한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임신 상태로 운전하는 분들은 더 대단하다. 임신했을 때 출퇴근하며 대중교통 이용하면서도 가끔 띵한 빈혈기가 느껴져서 힘들었는데  운전이라니. 특히, 내 딸은 차에 타에 타면 자기 때문에 머리가 이리저리 움직여서 불안하다. 목베개나 인형 등으로 고정하는 것도 잠이 든 후에 하니, 운전 전에 세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여성 운전자 대상 범죄가 무서우니까

예전에 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남자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차를 사게 되면 너무 아기자기하게 꾸미지 말라고, 차에 휴대폰 번호를 남길 때 남자 가족이나 지인의 번호를 남기라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 차주가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이유가 많기 때문이란다. 그때는 그 조언이 꿀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내 차를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어딘가에 가려면 왕복 서너 시간은 잡아야 하니, 운전하면 생활이 좀 편할 것 같아서 생각 중이다. 서울처럼 복잡한 도로 상황이 아니니까, 슬슬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남편은 적극 찬성하며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니까 괜히 하기 싫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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