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상자 Dec 14. 2019

디지털 네이티브와 공생할 준비

컴퓨터 활용 교육에서 디지털 활용 교육으로

※해당글은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ㅍㅍㅅㅅ에도 게시되었습니다. 


아가의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목소리와 모습이 담겨 있는 영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아빠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남편과 딸에게 보여줄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은 아빠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사진과 영상 촬영이 되는 디지털카메라를 샀을 때도 많이 아쉬웠다. 당시에 아빠 휴대폰 번호도 지우지 못했을 때라서 더 그랬을 거다.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새삼 자료와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체험한 세대다. 없는 돈을 긁어 모아 샀던 워크맨과 CD 플레이어는 내 보물 1호였다. 음원을 다운받기 편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음악을 들다. 친구들끼리 테이프와 CD를 서로 빌려주고 받으면서 들었고, 서로 녹음해준 도 꽤 많다. 라디오를 듣고 있다가 좋아하는 노래 나오면 바로 녹음하려고 공테이프는 항시 준비해놨었는데, DJ가 음악 전주나 간주 마무리에 멘트를 넣으면 어찌나 짜증 났었는지 모른다.


소풍이나 MT에 다녀오면 전지에 빼곡히 붙은 사진을 보면서 인화할 사진 밑에 이름을 썼다. 한번 찍으면 지울 수 없으니 순간 포착된 재미있는 사진도 많았다. 자기가 없는 사진을 신청한 친구의 이름을 보면, '이 사진 속에 누군가를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필름에 신청한 수만큼 숫자를 쓰고 인화소에 맡기고 나서 신청자에게 사진을 나눠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잔돈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 게 귀찮긴 했지만.


지금은 음악도 휴대폰으로 듣고, 사진이나 영상도 휴대폰으로 촬영한다. 너무 편해졌고 그만큼 다운받아놓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는 자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과 정리는 중요하다.



| 디지털 활용에 따른 대 구분


아날로그(Analogue) 세대


우리의 부모 세대다. 형제자매 많아서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울 수 없었던 세대. 특히, 여성은 더 했다. 여자형제가 일해서 본 돈으로 남자형제(특히, 장남)가 공부하는 집이 많았으니까. 이 세대는 인터넷 뱅킹보다 은행에 직접 가는 것을 선호하고, 인터넷 쇼핑보다 물건을 직접 보고 사는 것을 선호하는 등,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다고 할 수 있고, 좋지 않게 말하면 의심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음식점이나 매표소에서 기계로 주문하는 것이 많아졌다. 가끔 기계 앞에서 서성이는 어르신 때면, 생활의 편리함도 좋지만, 너무 젊은 세대 중심으로만 사회가 변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인건비 비중이 크긴 해도 서비스 차원에서 공존하면 안 될까?


누구나 나이 든다. 의학의 발달로 생명이 연장되었다고 하나, 노년기가 늘어나는 것뿐이다. 사회 발전이 조금은 더디기를,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기를 바란다. 문득, 아빠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는 법을 가르쳐드렸던 기억이 나서 뭔가 씁쓸하다.


▲ 2000년대 초반 휴대폰 광고. 디지털을 돼지털로 알아 들으신 할머니. (출처 : youtube)


아날로그+디지털(디지털 이주민; Digital Immigrants) 세대


나는 디지털 이주민 세대에 속해 있다. 개인적으로 아날로그의 감성과 디지털의 편리함을 모두 경험한, 축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즉, 아날로그를 추억하면서 디지털을 활용하는 세대로, 디지털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은 은빛 찬란한 사이버 시대로, 어디든 테크노 음악이 가득했다. 대학 시절 학과 응원단 활동을 했었는데 당시 인트로는 거의 테크노 음악을 사용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왜들 그리 비장한지. 누군가에겐 흑역사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두가 사이버 전사였던 리운 시대다.


▲ 세기말과 세기초에 활동했던 인기 연예인들의 광고 출연 모습. (출처 : 구글 검색)


대학 새내기 시절에 이메일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수강신청은 PC통신으로 했다(내 나이가...). 과제가 있으면, 도서실에서 자료를 찾아 복사했고, 작성과 출력은 학교 전산실이나 PC방에서 했다.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PC방은 정말 급할 때만 이용했다. 그때만 해도 삐삐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과방이나 동방에 전화기가 한 대씩 있었다. 삐삐에 8282(빨리빨리)가 찍히면 급하게 공중전화를 찾았고, 1212(홀짝홀짝)이 찍히면 기분 좋게 한잔했던 기억도 난다. 중한 추억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휴대폰 화면은 흑백에서 칼라로, 크기는 점차 작고 얇아졌다. 그러다가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커지고 있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가 첫 휴대폰이었던 내게, 란 동그란 창이 있던 듀얼폴더는 정말 신세계였지. 곤소곤.)


몇 년 전부터는 캘리그라피라는 이름으로 손글씨가 유행하고 있다. 컴퓨터 폰트가 아닌 손글씨는 촌스럽게 여겨졌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노래방이 생기면서 노래 가사를 외우게 되지 않은 것처럼, 거의 모든 작업을 컴퓨터로 하다 보니, 내 손글씨도 점점 어색해졌다. 그래서 가끔씩 화선지를 펼쳐놓고 글씨를 쓰기도 한다. 종이가 아깝기도 해서 디지털로 편하게 작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묵향 좋아서 가끔 쓴다.


참고로, 시공간의 제약없이 자유롭게 원격으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디지털 유목민; digital nomad)는 디지털 이주민과 다르다. 요즘 나를 표현하자면,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디지털 이주민?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 Digital Native) 세대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용어는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크 프렌스키(Marc Prensky)가 논문 「Digital Native, Digital Immigrants(2001)」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1980~9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 등이 확산할 때 성장기를 보낸 30세 미만의 세대를 의미한다. 즉, 나의 다음 세대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발전된 디지털 세상을 경험할 것이다. 술 발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털 세대 구분 간격이 좁혀지고 있으니, 우리 세대가 디지털 1세대라면 우리 아가는 디지털 5세대 정도 되지 않을까?


대학 동기가 군대 제대 후 복학했을 때,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적응하기 어렵다고 한탄했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사회 복귀 자체도 부담었지만, 약 2년 동안 디지털 분야의 변화가 너무 커서 그로 인한 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그 변화 속도는 앞으로 더 빠르고 변화 간격은 더 질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소프트웨어(이하, SW)는 일부 전문가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만들어진 SW를 용하기만 하지 않고, SW를 스스로 만들고 공유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대에 알맞은 교육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넘쳐나는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 지적재산권의 중요성 등 알려줘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아니, 그들보다 우리 세대도 잘 아야 한다.


요즘 모든 세대에게(특히, 어린이었던 어른이에게) 인기 급상승 중인 EBS 연습생 "펭수"가 타 방송국에서 촬영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튜버가 창궐하는 시대에 방송사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와중에 EBS가 진정한 교육 철학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교육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펭수는 펭수다. 우리 아가는 아직 뽀로로를 가장 좋아하지만, 펭수에게 점점 빠져가는 게 보인다. 펭TV 갈무리.



| 공교육 안으로 들어간, SW 교육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육 분야가 있다. 바로, SW 교육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분야, 하지만 잘 모르는 분야, 그게 바로 이 분야다.


이 교육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16년 교육부와 미래부에서 발표한 「SW 교육 활성화 기본계획(2016.12.2)」이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초등학교는 2019년부터 17시간, 중학교는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34시간 이상 SW 교육을 필수화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기존 교사의 직무연수 실시 등을 통한 교원 전문성 강화 계획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전공 교과목 이외에 SW도 가르쳐야 하는 교사 부담될 테니, SW 교육 내게 사교육을 양산 소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교육복지'와 '공교육의 역할'을 생각해보면(교육복지가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며), SW 교육이 공교육 안으로 들어간 것은 시대의 흐름이 생각 들었다.


컴퓨터 활용 교육을 너머, 디지털 활용 교육


그동안의 우리나라 컴퓨터 교육은 '컴퓨터 활용 교육' 위주로 이뤄져왔다. 말 그대로 컴퓨터 활용 능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으로, 워드/엑셀/파워포인트 등의 활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국가 자격증으로는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활용 능력, 사무자동화 산업기사 등이 있다. 하지만 이제 컴퓨터 교육은 어느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과정 탐색과 사고력 증진에 초점이 맞춰져야 기 때문에 교육보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컴퓨터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 활용하는 SW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해서 코딩하고, 그것을 작동시키면서 수정 보완해가며 SW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SW 교육의 대부분은 코딩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SW 교육과 코딩 교육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SW 교육이 곧, 코딩 교육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이 교육을 통해 배운 내용을 자신의 분야와 융합하여 활용할 수 있으면 된다. SW 교육은 코딩 기술 습득보다는 SW 기본 원리를 이해하면서 컴퓨팅 사고력*과 논리력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증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교육부와 미래부 보도자료, 2016.12.2). SW 교육이 급변하는 미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컴퓨터 활용 뿐 아니라, 디지털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컴퓨팅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 :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 곧, 컴퓨터처럼 효율적으로 문제해결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의미함.



가장 중요한 것은 협업


다양한 사람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협업(collaboration)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다. 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조금 더 어려워할 수 있다. 하지만, 협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행한다면 그 어떤 세대보다 멋진 세대가 될 것이다. 컴퓨팅 사고력을 활용해서 무엇인가를 추진하려면 협업이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SW 관련 업무는 혼자할 수 없어서 정해진 규칙을 서로 잘 지켜야 하며, 업무를 시작할 때부터 세세하게 소통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들 알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한 명이 규칙을 어겨 버리면, 에러가 발생할 수 있다. 그 에러보다 더 큰 문제는 규칙을 어긴 당사자가 없을 때 그 에러의 원인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협업 따위 하지 않고 혼자 하고 만다는 생각이 만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만 벌이고 수습하지 않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팀원이 있으면,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여러 명의 작업을 통합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프로젝트 완료까지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기획 단계를 간단히 거친 후, 각자 맡은 분야를 온라인으로 한 명에게 보내서 그 한 명이 합치기로 했다. 모두 협조를 잘해줘서 각자의 작업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합쳐진 파일을 보니 같은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로 나오는 등 여러 오류가 발생했다. 합친 사람이 함께 있었다면 바로 변경할 수 있었을 텐데 수정하는 날에 불가피하게 함께 하지 못해서 모든 팀원이 붙어도 그 오류 부분을 찾기가 어려웠다. 기획 단계에서 규칙을 제대로 정하지 않아 모두 고생했지만, 다행히 좋은 팀워크로 소통이 원활해 잘 마무리할 수 있다.


▲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는 토끼와 거북이 영상. youtube 영상 갈무리.


| 지털 교육을 누가 할 것인가


여기저기 SW 강사양성 과정이 많다. 국가차원에서 지원하는 것도 있고 사기업의 프로그램도 있다. 거의 모든 교육이 그렇듯, 취업까지 연결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취업되더라도 열악한 처우인 곳이 다반사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학교 방과후강사로 활동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정교사 자격이나  SW 전공 여부라는 것이다. 아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과정 이수를 해도, 저 두 가지 중에 한 가지가 없으면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물론, 서류 검토를 하는 입장에서는 객관적인 자료로 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저 기준이 SW 교육의 질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아쉽다.


게다가 지난 11월 초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교육대학원에 인공지능 융합교육 과정(인공지능과 빅데이터, SW 교육 중심)을 개설하여 2022년 연간 1천명 씩 향후 5년간 5천 명의 AI 교사를 양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은 좋다 쳐도, 이 교육의 대상은 초중등 교원이고 교육비의 50%는 교육청이 부담한다고 한다. 교사만 좋은 것. 그럼 기존에 양성된 SW 강사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


사실 잘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준비해야 할지. 너무 열심히 준비하다가 번아웃되면 나만 손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내가 아는 것부터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위주로,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준비해보려고 한다.


누구는 가르치고 누구는 배우던 시대는 지났다. 모두다 선생, 모두가 학생인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준비. 준비. 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