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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취합하고 정리하는 게 취미인 나도, 뭔가 새로운 것을 준비할 때면 서류 준비하다가 지친다(빡친다). 기관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다르니, 기관별로 다른 형식의 지원서(이력서, 자기소개서 등)를 작성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임용이 결정된 후 인정 서류를 준비할 때가 더 지친다. 기간 내에 발급한 서류만 인정한다고 하면, 그 이전에 받은 서류가 있어도 재발급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과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뭐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경력증명서다. 간혹 경력을 부풀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경력증명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퇴직한 직장에 직접 가서 직인 찍힌 원본을 받아 제출해야 하는 시스템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IT강국 아닌가. 지금까지 요청했을 때 발급받지 못한 경험은 없지만,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싫고, 구직이나 이직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상황을 오픈하다는 것도 별로다.
아주 오래전에, 경력증명서 발급 때문에 전화한 경험이 있다. 전화받은 사람은 그곳에서 근무할 때 정말 별로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일은 안 하고 사내 정치만 하던 사람, 윗사람에게만 잘하던 사람. 단지, 서류 하나 발급해달라고 한 건데, 사생활을 시시콜콜 묻는 그 사람이 너무 불편했다. 원본이 필요해서 우편으로 부탁했더니(우편료 포함, 커피값 정도를 계좌이체하겠다고 했다), 원래 직접 와야 하는 건데 특별히 보내주겠다며 으스대는 통에, 바쁘신 것 같은데 급한 것이 아니라 괜찮다며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까짓 경력 인정 안 받고 말지 뭐. 나야 그 한 번이었지만, 이런 경험이 비일비재한 근로자가 적지 않을 거다.
근로기준법 제39조(사용설명서)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후라도 사용 기간, 업무 종류, 지위와 임금, 그 밖에 필요한 사항에 관한 증명서를 청구하면 사실대로 적은 증명서를 즉시 내주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제42조(계약 서류의 보존)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자 명부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근로계약에 관한 중요한 서류를 3년간 보존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어서, 사용자는 퇴직한 지 3년이 경과한 경력증명서를 발급할 의무가 없다. 전 직장에서 발급을 거부하면 경력을 증명할 수가 없으니 근로자에게 불리한 법이다. 법을 만든 사람이 사용자 입장인 경우가 많으니, 대부분의 법이 사용자에게 유리하긴 하지만. 탄탄대로만 걸어오신 분들이 소시민의 불편을 알 턱이 있나.
어느 국회의원은 증명서 발급기간을 3년에서 10년으로 늘리자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경력증명서 발급이 일상인 계약직 근로자나,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위해서 발급의 법적 기한을 충분히 보장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학력증명서처럼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발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지, 보존기간을 늘리는 게 요점이 아니다. 10년 안에 전 직장이 폐업할 수도 있지 않은가.
현재 4대 보험 가입내역으로 근무기간을 확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임용일부터 바로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으면, 가입 기간과 실제 근무 기간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인 경우가 생긴다. 또한, 가입내역에는 업무나 직위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경력증명으로는 다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다음은 현재 민원24에서 근로 관련 경력증명서 발급이 가능한 항목의 일부다. 우편은 바라지도 않는다. 주민센터 등에서 방문 수령이라도 되면 정말 좋겠다. 대학 시간강사는 발급이 가능한데 왜 대학 교직원은 발급되지 않는 것인가.
내용을 자세히 모르지만, 기술자는 경력 신고 항목도 있더라. 처리기관을 지방노동청으로 하고, 소관기관을 고용노동부로 해서 기술자가 아닌 일반 경력자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겠다. 퇴직하기 전에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아서 그 원본을 근거로 신고하면, 원본을 계속 발급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가장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경력증명도 자격증명처럼 발급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이미 구축되어 있는 4대 보험 가입내역 발급 서비스에 몇 가지 항목(직무 등)만 추가해서 경력증명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용자가 입력해야 할 항목이 늘어나면 협조를 구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제 근무기간과 보험 가입기간에 차이 있을 수도 있고,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에 경력증명을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평생 직장보다 평생 직업이 중요해지는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다. 안정기를 살아본 적 없이, 언제나 과도기를 살아간다. 많은 고민 끝에, 내 인생 하반기에는 한 기관에 속하지 않기로 했다. 시기마다 이렇게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남편이 야근 많은 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평일에는 나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한 기관에 속해 풀타임으로 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교통도 안 좋은 곳에 사는데, 풀타임으로 일하면 평일에는 내 몸과 정신이 견딜 수 없을 테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할 테니, 아이와 바깥 활동을 하는 것조차 사치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사회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앞날은 모르지만 지금은 이렇게 결정했다.
이런 상황이니, 여러 기관에 경력증명서를 내야 할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물론, 경력증명서 원본을 제출할 일이 생긴다는 것에 감사한 일이지만, 준비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공공기관처럼 민간기관도 경력증명서를 발급하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모든 국민이 공무원이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가족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웠는데, 경력증명서 때문에 또 공무원을 부러워해야 하나 싶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맨날 지는 것도 지겹다.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디지털 이주민이지만, 서류 더미와 싸우고 있는 현실. 그래도 싸워야지. 크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