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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Oct 08. 2020

<007 폭소판 살사리 몰랐지?> 한국판 007!

1960년, 한국에도 007이 있었다

이 영화는 <오발탄> 등과 같은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추천하기엔 주저되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고사리' 브런치에서 소개하는 이유는 이 영화 소재의 희소성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세계를 뒤흔들던 007 시리즈를 한국식 코미디로 해석해서 개봉한 1966년 작품이라는 것. 이 영화의 주연은 당시 유명했던 코미디언 서영춘이 맡았다. 또한, 고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배우일 수밖에 없는 천의 얼굴을 가지 두 배우, 도금봉과 허장강이 출연함으로써 다소 허술한 플롯의 007 영화에 긴장감과 재미의 빛을 발해준다. -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아니 이 일을 어쩌지? 핸드백을 깜쪽 같이 찢고서.......
[출처]  <007 폭소판 살살이 요건 몰랐지?> 한국영상기록원

이 이야기는 보석상 점원인 광식(서영춘 분)이 사기꾼 선자(도금봉 분)에게 당시 엄청난 가격인 95만 원 상당의 보석들을  깜쪽같이 사기를 당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그런데 이 사기의 방식이 독특하고 재미있게 흘러간다. 선자는 보석상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척하면서 마치 도둑이라도 맞은냥 찢어진 핸드백을 보여준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나타나 보석상에는 자신의 집이라고 속인 한약방으로 보석을 배달해주면 돈을 준다고 하고 한약방에는 돈을 달라는 정신이 나간 가족이 올터이니 자신의 친정아버지 역할을 해달라며 침을 놔달라고 한다.  즉, 선자는 보석상과 한약방을 동시에 속임으로써 가운데서 보석을 훔쳐내는 것이다. 



못 가? 흥! 내 이 구두 끝을 보고 얘길 하시지. 놀랬지?
[출처]  <007 폭소판 살사리 요건 몰랐지?> 한국영상기록원

사기를 당한 후, 기차 추격으로 사기꾼 선자를 대구역에서 잡은 광식. "내 이 구두 끝을 보고 얘길 하시지." 하며 순수히 따라가지 않는 선자를 위협한 것은 바로 구두 끝에 달리 작은 칼. 이 칼을 보고 선자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광식의 뜻에 따라 택시에 올라타는데, 선자 못지않게 영화를 보는 나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실소를 자아냈다. 스파이 첩보물 007을 따라 만든 영화 치고는 너무나 열악한 무기가 아니던가. (물론 때에 따라서 위협적인 무기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극 중에서 광식의 초콜릿 총에 이어 비중 있게 나오는 무기이고 극 중 배우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무기이기 때문에 웃음을 참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부산까지는 틀림없이 데려다주는데 부산 가서는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해.
[출처]  <007 폭소판 살사리 요건 몰랐지?> 한국영상기록원

대구에서의 추격전 끝에 다시 선자를 놓친 광식은 우연히 명자(주연 분)를 만나고 언니를 찾으려 하는 명자와 함께 부산으로 향한다. 이후 광식은 여장남자 행세를 하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말랐던 서영춘은 정말 여자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여장에 있어 어색함이 없다.



어머 얘는 정말 정신을 어디 팔고 다니니? 너 국민학교 4학년 때 나 몰라?
[ 출처]  <007 폭소판 살사리 요건 몰랐지?> 한국영상기록원

부산에 와서 여장을 한 채 카바레 댄서에 지망하는 광식. 지배인 만순(허장강 분)과 선자가 대화를 하는 중에 면접을 보게 된 광식은 낯을 익어하는 선자에게 국민학교 동창인 양 너스레를 떨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웃겼을 만담과 춤(!)을 춘다. 그야말로 코미디언 특유의 몸을 이용한 개그이다. 이렇게 테스트에 통과한 광식은 카바레에 댄서로 취업하게 된다. 



너희들은 사십 계단에서 일을 끝마치는 대로...... 잠복하고 있거라. 
[출처]  <007 폭소판 살사리 요건 몰랐지?> 한국영상기록원

카바레 지배인 만수는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내다바리패 두목이다. 내다바리패에 속해있던 사기꾼 선자는 광식과 함께 대구에서 부산으로 동행한 명자의 언니. 만수는 조직원들과 함께 내일 새벽 손을 털고 떠날 준비를 하고 조직원들에게 선자를 사십 계단에서 해치우라고 몰래 이야기 한다. 선자가 사십 계단에 갈 것을 알게된 광식은 그 소식을 명자에게 알린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허장강. 어떤 역을 맡아도 주연만큼 빛나는 허장강은 코미디언 서영춘만으로는 부족한 이 영화에서 중심을 잘 잡아내며 극의 흐름을 주도한다. 만약  허장강이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허술함에서 허술함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명자야 용서해라. 니 학비를 마련해서 너한테 간다는 것이...... 
[출처]  <007 폭소판 살사리 요건 몰랐지?> 한국영상기록원

사십 계단에서 만난 자매, 선자와 명자. 그동안 선자는 동생을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선자는 명자에게 그동안 모은 돈을 주며 떠나보내고 그녀를 노리고 있던 내다바리패 조직원에게 총상을 입고 사망한다. 허장강과 함께 한국 고정 영화의 주, 조연 세계를 이끌며 명실공히 최고의 배우인 도봉금. 도봉금 또한 허장강과 함께 극의 흐름을 주도하며 사기꾼부터 절절한 눈물이 넘치는 언니 역을 깃털처럼 가볍게 소화해낸다. 



어이, 지배인. 살사리가 나타날 줄 몰랐지.
[ 출처]  <007 폭소판 살사리 요건 몰랐지?> 한국영상기록원

보트를 통해 도망가는 두목, 만수를 잡으며 결국 내다바리패를 소탕한 007살사리 광식은 명자와 함께 금의환향을 한다. 보석을 찾게 된 보석상 주인 (양훈 분)과 그 덕에 한시름 놓게 된 한약방 주인(김희갑 분)이 마중 나와 있고 007살사리는 명자와 커플이 되며 행복한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 허술한 장치와 플롯으로 인해 코미디라 치더라도 스파이 첩보영화라고 볼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반백 년도 전이 60년 전에 전 세계를 휩쓸던 007 영화를 열악한 영화 제작 환경 속에서 코미디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은 그 희소성으로서도 가치가 있겠으며, 당시로써는 상당히 재밌고 잘 만든 영화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특히 첩보영화답게 스릴러 넘치는 음악이 영화와 잘 어우러져 있어 적절하게 극의 긴장감을 유도한다.


영화 자체와는 별개로 배우 허장강과 도금봉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가치가 있다. 또한 이 영화에는 당시 서울 독립문, 대구 대구역, 부산 영도다리, 부산 극장 거리 등이 대거 등장하며 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권투 장면에서의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 


만약 지금의 기준이 아닌 옛 시대의 코미디 스파이 첩보물(!)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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