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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un 02. 2023

배추도 사, 무도 사


생일을 챙기는 일에는 흥미가 없는 탓에  조용히 보내곤 하는데, 얼마 전에 다시 한번 생일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먹게 되는 바람에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고 싶어 졌을 리는 없는데도 웬일인지 한국 슈퍼마켓에 가보고 싶었다. 한국 슈퍼에는  년에 네댓  꼴로 들르기에 그렇게 자주 찾는 장소라고는   없다. 만일 생존 능력에도 수치 같은  있다면, 10 가장 강한 생존력이라 했을  나는 6-7 정도에 있지 않을까 한다. (아마 신체적 조건에서 많이 까먹었을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게 무엇이든 없으면 없는 대로  살기 때문이다.


한국 식재료 역시 마찬가지다. 나물이 먹고 싶으면 가까운 곳에서 구할  있는 시금치나 양배추,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데쳐서 참기름과 소금에 버무려 깨를 갈아 뿌려내면 그런대로 나물 맛이 난다. 굳이 멀리 있는 한국 슈퍼에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동네 마트에서 쉽게 참기름과 간장 따위를 구할  있는데, 어느 정도 간장과 참기름의 맛이 들어가면 한식 느낌이 나기 때문에 부족할 것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사는 탓에 김치를 먹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물론 이유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르기 때문인데, 이유라면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도 있으니, 그건 반찬을 여러 개 두고 먹지 않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김치 담그는 일은 말 그대로 남의 집 일이었는데, 한국 슈퍼마켓에 다녀온 그날, 때마다 김치를 만드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정말 한 살 더 먹어서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 테고……, 그것은 분명히 배추 때문이었다.


김치를 만들지 않으니 뉴질랜드에서 배추와 무가 언제 나는지 알 리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가을이 됐으니 제철 채소를 먹어야겠는데 뭘 먹을까 생각하던 중, 문득 머릿속에 ‘가을 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가을 무가 뭐 어쨌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던 것 같고……, 보약보다 좋은 거라고 했나, 아무튼 무가 가을에 인간에게 주어지는 이유는 모르긴 몰라도 가을에 먹으면 좋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래서 가을 무를 구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려 왕복 한 시간 거리의 한국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작은 냉장 야채 코너에는 바구니 가득 무가 담겨 있었고, 옆 바구니에는 배추도 있었다. 제대로 때를 맞춰 온 것인지 싱싱했다. 하얀 무를 내려다보다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세 개 집었다. 배추도 하나 담았다. 오래된 기억 속의 무와 배추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였지만 그래도 둘이 먹기에 많은 양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는데 그 정도는 먹어봐야 할 것 같았다. 바구니가 금세 무거워졌다.


무를 가지고는 간장에 조린 무조림을 만들어 먹었는데, 먹으면서 든 생각은 어렸을 때 왜 무를 싫어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한 살씩 먹을 때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이왕이면 ‘이렇게 좋은 걸 왜’ 라거나, ‘이렇게 맛있는 걸 왜’ 같은 말들이 따라붙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냉장고 야채칸을 가득 채웠던 무는 무밥이 되기도 하고, 뭇국이 되기도 했다. 무나물을 만들고 나니 하나 남은 무는 말려서 덖어 차로 만들어 두었다. 말리니까 한 줌 밖에 안 됐지만 무를 우려낸 차도 단 맛이 좋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배추. 배추로는 만들어 본 음식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만만하지만 언제 먹어도 만족스러운 된장국을 끓여 먹을까 하다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심지어는 먹어본 적도 없는 배추전을 만들기로 계획을 바꾸다니, 정말 한 살 더 먹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야심 차게 배춧잎을 여섯 장 뜯어 부침옷을 얇게 입히고 팬에 굽기 시작했다. 한 장 한 장 뒤집어가며 노릇하게 익히는 일은 생각보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지막 잎 한 장은 포기하고 냉장고로 돌려보냈다. (열심히 부치다가 먹기도 전에 질려버리면 정작 먹을 때 맛이 없으므로 적절한 시점에 포기하는 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나머지 다섯 장의 배춧잎은 바삭한 옷을 입은 배추전이 되었다. 길게 쭉 찢어 간장 양념에 찍어 한 입 넣자마자, 아니 이런 맛이 다 있어! 그동안 이 맛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배추전으로 서른다섯의 생을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할 지경이었다. 아마 서른여섯이 되기 전에 배추전보다 맛있는 건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머나먼 타국에서도 때마다 김치를 담그는 이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누가 배추와 무를 이렇게 정성 들여 기를 것이란 말인가. 그 덕에 김치를 담그지 않는 사람들도 달디 단 배추와 무 맛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셈이니, 우리는 모두가 연결된 채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걸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상상하건대 배추와 무 농사를 지은 분들은 사랑을 담아 그들을 길러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조림 한 입에서, 배추전 쭉 짖어 간장에 콕 찍은 것에서 그런 황홀한 맛이 날 수 있었을까. 사랑받고 자란 배추와 무는 내 몸에 들어가서 그들이 받은 사랑을 나에게 전해주고, 나는 이제 배추와 무에게 받은 사랑을 세상과 나눠야 한다. 과연 내가 배추와 무만큼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의 제목을 뭐라고 정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한 살 더 먹은 기념으로 평소라면 안 하던 짓을 해볼까 하여 ‘배추도 사, 무도 사’라고 써봤다. 썼다가 유머 (이것도 유머라면)는 아무래도 더 갈고닦아야 할 것 같아서 서른여섯 이후에 도전하기로 미뤄둘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정말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예전엔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라면, 나는 내년 즈음엔 예전엔 왜 그렇게 심각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갑자기 엄청나게 유머러스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건 다 천리 길을 위한 한 걸음인 셈이다. 짧은 가을이 지나가기 전에 한국 슈퍼에 다시 가서 배추도 사고 무도 사야겠다. 그래서 배추전도 한 번 더 해 먹고, 무도 나란히 채 썰어 말려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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