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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un 25. 2023

그런 날도 괜찮고 안 그런 날도 괜찮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말끔한 날이 있다. 어제가 꼭 그런 날이었다. ‘오늘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서 가장 수영을 잘하는 날이 될 거야.’ 전 날 하루 종일 수영 생각만 하다가 잠든 뇌가 깨자마자 쏟아낸 생각이었다. 오늘이 가장 수영을 잘하는 날이라는 말은 앞으로 나의 인생은 수영을 잘하게 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생각만이 아닌 것이, 생각해 보면 수영 수업 첫날에는 수업을 신청하기 전보다 잘하게 되었으며, 두 번째 수업 날은 첫 수업 때보다 잘했고, 이전 수업 때보다 늘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수영을 잘하게 될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삶에는 항상 이런 생각만 드는 날만 있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이란  그런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중간에서 균형을 잡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말은 누구의 삶에나 그런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지 않은 날에도 우린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균형 잡는 법을 익혀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지 않은 날을 만드는 것일까. 어떤 날은 분명히 아무것도  하고 싶은데.  봐야 의미가 없는  같은데. 아마도 그건 조바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자유형을 배우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측면 호흡을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물을 먹으며 노력했는데, 이젠  돼야 하는  아니야?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삶에는 흐름이 있다. 흐름이 있다는 말은 때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삶의 흐름을 타야 우리는 서퍼들처럼 파도 위를 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흐름을 타지 못한다면 물만 먹고 여기저기 멍만 들고 고생만 하다가 지치는 셈인데, 그랬을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낫다. 적어도 고생은 안 할 테니까. 그 시기에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면서 다음 물결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뤄야 할 일이 있는데 그저 마음 편히 손 놓고 있으라는 뜻이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생각해 보자. 충분히 충전을 하지 않고 노력의 시간만 보낸다면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지쳤을 때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지치면 뭔가를 하고 싶은가? 의욕이 들던가? 다 필요 없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는 결과라면 차라리 지치기 전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이나 노력했는데! 같은 마음이 들면 억울함에 에너지를 더 낭비하게 되고 만다. 내가 그만큼 노력하든 말든 지금 당장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건 내가 소질이 없는 탓도 아니고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저 지금 안 되는 것 그뿐, 내일은 될 수도 있고, 내일도 아니라면 다음 주에는 될 수 있는 일이다. 당장은 안 되더라도 재미있으면 계속하는 거고 그러다 보면 안 되던 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삶에서 조바심은 그다지 도움 되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조바심은 오히려 분명한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방해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어느 섬 마을의 샤먼이 뜨겁게 달군 돌 위를 맨발로 걷는다거나, 무당이 작두를 탄다거나 하는 일들 같은 것. 뜨거운 돌바닥을 걷기 위해 연습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수영장 물 먹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끔찍해 보이는데, 그들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해내는 걸까. <<Urban Shaman>>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쓴 서지 카힐리 킹 Serge Kahili King 은 하와이의 샤먼이다. 책에서 그는 타히티에 가서 그곳의 샤먼과 함께 뜨거운 화산석 위를 맨발로 걸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발바닥 하나 데지 않고 다리의 터럭 하나 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킹은 스트레스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생기고, 신체 활동이나 감정 상태, 먹는 음식으로도 스트레스가 생긴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퇴고를 하느라 글을 읽는 동안 스트레스가 생겨나는 걸 분명히 느꼈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왜냐면 삶에는 흐름이 있는데, 그 흐름이라는 것은 스트레스 (stress) - 긴장 (tension) - 표출 (release) - 안정 (relaxation)의 과정을 거치며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 때 생긴다. 킹은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


스트레스 - 긴장 - 표출 - 안정 -           (자연스러운 흐름)

스트레스 - 긴장 - 표출 - 안ㅈ -           (안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

스트레스 - 긴장 - 표ㅊ -                       (그러다가 표출마저 이루어지지 않음)

스트레스 - 긴장 - 스트레스                   (그런 흐름은 스트레스와 긴장의 무한 반복)

                                                                                     * (      ) 안의 내용은 내가 붙인 설명이다.


킹의 이론을 자유형을 배우는 과정에 대입해 보면 이런 식이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답답하다 (스트레스), 내내 허우적거리다가 답답함이 쌓일 대로 쌓이다 (긴장), 안 해! 하고 집에 오다 (표출), 집에 오니 편하고 수영한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안정), 그리고 다시 수영할 힘이 생기면서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걸 다른 말로는 연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면 측면 호흡을 익힐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표출과 안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열심히 종일 허우적거리기만 한다면 나는 스트레스와 긴장과 스트레스와 긴장 그리고 다시 스트레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어 열심히 고통만 끌어 모으고 있는 모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킹은 샤먼들이 뜨거운 돌 위를 걸을 수 있는 건 스트레스가 안정에 이르는 과정을 아주 빠른 속도로 순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뜨거운 돌 위로 발을 올렸을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다음 발걸음을 채 내딛기 전에 긴장과 표출의 과정을 거쳐 안정의 상태로 돌아온다. 그래서 새로 발을 디딜 때 생기는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건 실수와 배움을 반복하는 시간의 연속이기도 하다. 거기에 필요한 건 단 하나, 인내심뿐이다. 지혜라는 건 그동안 저지른 실수가 모인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은 지혜는 인내심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을 떠올릴 때 성격이 급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인내심을 가질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인내심이란 어떤 상황에서든 꾹 참고 될 때까지 노력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건 다그침에 더 가까운 일이다.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는 마음, 자꾸만 생기는 실수에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히 흐름을 따르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인내심이다.


그런 날만 있으면 좋겠지만 삶이란 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해가 밝은 날 씨앗을 마음에 심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발아한 싹은 그렇지 않은 날 들여다보면 어마어마한 힘이 되어줄 테니. 새싹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면 그런 날도 있다는 걸 기억하면 된다.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알면 충분하다. 인내심을 가지고 충전하고 있다 보면 다시 흐름을 타고 그런 날이 돌아올 것이다. 그럼 그날 나는 힘을 내서 내 몫을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더 나아질 거라는 건 이제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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